2017년 마더스 데이를 기념하며: 내가 만난 첫 책 <들꽃향기>
전라남도 어느 시골, 엄마가 일하던 작은 보건진료소 탁자에 못 보던 분홍 책자가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들꽃향기>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때는 1999년. 대한간호협회 보건진료원회 광주, 전남지회에서 '보건진료소의 역할과 기능을 도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나아가 '농어촌의 발전'에 앞장서기 위해 '혼자 근무하는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진료소장들의 이야기를 한데 묶었다.
수십 개의 이야기 중에 엄마가 쓴 글이 있었다. 서점에서 파는 책도 아니고, 친구들한테 보여줘도 재미있어할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었지만, 그저 두쪽짜리 글 말머리에 엄마 이름 세 자와 엄마의 사진이 있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몇 번이나 책을 다시 펼쳐서, 읽고 있었던 글을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엄마의 글 속에 있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내가 아는 바로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라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당시 내가 하는 기록이라고는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일기가 전부였다. 날씨가 어떠했는지,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족과 주말에 어디를 다녀왔는지, 누군가 했던 말 때문에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정도를 적는 용도였다. 대신, 타인의 기록인 책을 통해서 내 삶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울법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만났다.
그런 나에게 <들꽃향기>는 내 생애 첫 책과 같았다. 피자를 먹으려면 차를 타고 시내를 나가야만 하고, 태어나는 아이들보다 돌아가시는 어르신의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작은 시골 동네 어린이였던 나에게, 책은 이야기를 넘어서 진짜 사람의 일생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첫 책이었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의 얼굴이 종이 위에 찍혀있고, 나의 동네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글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있으며, 두 귀로 들었던 누군가의 말이 따옴표와 함께 한 줄의 문장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책은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들꽃향기>를 처음 집어 든 순간 이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기록한 사람과, 이야기 안에 담긴 인물들과, 그들의 언어를 만난다는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손 끝에서 만나 눈에 머물다 마음 중심에 남는 만남이었다.
어떤 문장을 만나면 손 끝이 떨리고, 어떤 이야기는 눈의 한 모퉁이에 눈물이 차오르게 한다. 어디선가 꼭 본 적 있는 듯한 소설 속 주인공이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예상치 못했던 엔딩에서 마음에 구멍이 나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아마 우리가 책을 진짜로 만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2017년 엄마의 날 Mother's Day을 맞아 엄마의 글 오월의 호수를 다시 읽어본다. 이 글에는 엄마의 지난 삶과 우리 가족의 옛 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8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어제처럼 떠오르는 시골 동네와 그 동네를 우리의 고향으로 만들어준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처음 <들꽃향기>를 만났던 날, 엄마의 딸로 태어나 그 작은 시골 마을을 고향으로 여기면 자라온 '나'를 만났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보는 나로서의 나 자신과 내가 두 팔 두 다리로 직접 살아가는 나의 세상이 아니라, 엄마의 단어와 문장 속에서 살아가는 나와 기록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는 나의 세상을 만났던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거나 책을 만들고 싶다거나 하는 나의 소망들이 이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다. 눈으로 본 풍경과 귀로 들었던 이야기를 엄마의 기록을 통해 읽고 떠올린 경험은 내게 전에는 느껴본 적 없었던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다.
지금도 어떤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만남을 기대한다. 내가 무언가를 기록할 때에도 이 기록을 읽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자신의 세상을, 어떤 꿈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단어가 아닌 마음을 보고, 픽션이 아닌 논픽션을 만나게 해주는 글을 계속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흙으로 빚어져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육체를 가진 인간은 자연을 좋아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콘크리트 벽에 갇혀있던 도시인들은 휴일만 되면 산에 오르고 바다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틈만 나면 자연 속에 자리한 골프장으로, 그것도 부족해서 그 속에 별장을 짓고 휴식하러 간다.
이렇듯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자연 속에 파묻혀 산지 어언 십사 년.
십 년이면 변한다는 강산도 변하지 않고 하는 일도 변하지 않은 수 세월 동안 짝을 찾았고 그 사이에 알토란 같은 두 딸과 때늦은 아들까지 얻었으니 참으로 소중한 세월이었나 보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음미하지 못했던 분주한 시간 틀 속에서 빠져나와 문득 창 밖을 고즈넉이 바라보던 오월의 어느 날. 십 수년 동안 이맘때면 어김없이 있었을 작은 호수를 발견하고 작은 물결의 일렁임에 물살의 변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언제 생긴 호수일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곳에는 모가 심겨 있었다. 엊그제 동네 할아버지께서 논을 갈고 계시더니 모 심으시려고 물을 대 놓으신 거였다. 큰 논에 가득 넘친 물 때문에 작은 호수로 변한 그곳에도 머지않아 모가 꽂힐 것이다.
농부에게는 곡식으로 부를 주고, 바라보는 나에게는 위안으로 마음의 부를 주는 자연. 그 속에 있는 나. 창조주께 감사가 절로 나온다.
처녀시절, 시골생활이 지겹고 답답하다고 아버지께 불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이 건강을 돌보는 간호사란 직업이야말로 최고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낙후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농어촌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고 보람된 일이 될 것이다.”라고 하시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지내온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정부에서 진료비 나온다고 해도 항상 미안해하시는 영세민 할머니.
무료로 혈당 재 주어 고맙다고 부채 과자며 빵이며 사들고 오시는 할아버지.
이른 새벽 몸이 아파 오긴 왔는데 막상 깨우지는 못하시고 밖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계시던 아저씨. 아직 우리네 시골은 이런 분들이 있기에 순박하다.
딸만 둘이던 나에게 아들 낳아야 된다고 시어머니보다 더 잔소리하던 주민들. 그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 뒤늦게 아들을 낳았다. 분만 휴가 동안 우리 두 딸은 정거장에서 아들이냐? 딸이냐? 질문에 답하기 바빴고 휴가에서 돌아와 보니 온 동네 소문이 퍼져서 꼬마까지 다 알고 있었다.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고맙다.
오월이 되면 또 이 호수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련다.
나태해진 마음, 교만한 마음,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을 호수 위에 털어버리고 창조주 되신 그분의 사랑을 담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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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mage by David Aler
Caption Image by Yoon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