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그런 핑계를 대지 마
작년, '발행' 버튼을 처음 누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매주 적어도 한 번씩은 이렇게 좋은 글을 발행해야지,라고. 말로 하는 건 어쩜 이렇게 쉬울까. 언제나, 어디서나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지난 몇 달 동안, 글에 마음이 가고, 글이라는 주제에 어떤 때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글을 쓴다는 사실만큼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지키려는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 핑계를 만들기에 급급한 나의 뇌와 승부를 봐야만 한다고.
나의 뇌는 이러한 핑계들을 만든다:
너는 9시부터 5시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잖아. 너는 좋은 사람과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느라 바쁘잖아. 지금 당장 네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야.
주말에도 청소, 빨래, 시장보기, 친구들 만나기, 영화보기, 새로운 커피숍 가보기, 밀린 신문과 잡지 보기, 통장 정리, 요리, 목욕, 운동을 해야 하지?
대체 언제 어떻게 30분 짬을 내서 글을 쓸건대?
바쁘다는 이유는 하나도 새롭지 않다. 누군가 언젠가 어디에선가 꼭 한 번은 겪어봤을 바쁨. 그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대혼란이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몸과 마음은 여기저기를 재빠르게 돌아다닌다. 아무리 노력해도 글 쓸 30분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기만 하다.
이 상황이 절대적 사실이라면, 5분은 어떠한가? 아니면 1분은? 시간이 없다는 말은 대체로 아주 짧은 순간들이 남아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간을 큰 치즈 덩어리처럼 잘라 쓸 수 없다면, 작은 치즈 조각으로 대신하자.
바쁜 나에게 '양'은 결코 중요한 옵션이 아니다. 제일 중요한 건 행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이다. 시간이 있든 없든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하기 위해 어떤 양이든 매일 시간을 낸다는 것. 나의 인생은 뭐든 하기로 결정한 나의 편을 들어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너와는 결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지?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야. 넌 아무도 없는 고립된 곳에 갇혀있어. 세상 그 어떤 것도 너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아.
이런 생각이 들 때야말로 읽어야 할 때이다. 읽음은 동기를 잃어버리고 한 곳에 갇혀 있는 작가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 사용되지 않고 쳐 저 있던 작문의 근육이 꿈틀대기 시작하니까.
아무것도 쓸만한 것이 없다는 말은 어떤 것도 주제가 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나만의 경험이나 관찰. 지금은 가치 없어 보이는 문장일지라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그 문장들을 고치고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대학시절 문예창작 수업에서 연습했던 작문 방법이 있다. 새로운 공간에 가서 타인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다. 정말이다. 무엇이든 내가 보고, 듣고, 맡고, 느끼고, 맛보는 것은 어떤 것이든 종이 위에 기록될 수 있다.
너는 혼자 책상에 앉아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질려있어. 대체 언제까지 이토록 고독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답답하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서로에게 응원도 되고, 어렵다고 느껴지던 것마저 쉬워질 것 같은데.
지겹도록 외롭다고? 어서 관두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작가의 길은 외로워 보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는 혼자서 작업하는 환경이 좋은 이유도 있는데, 때때로는 이 무시무시한 싸움에 나 홀로 남겨져 있는 것 같은 외로운 기분도 들고, 너무 외롭기 때문에 낙담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람은 소통하는 존재다. 우리는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서로의 의견을 수렴한다. 타인과 생활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 인간이 혁신해온 방법이다. 작가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함께하기를 선택한다.
누군가와 함께 글을 쓴다는 것에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무조건 적으로 함께 글을 써야 한다는 조건은 붙지 않는다.
친구와 같은 글을 읽고 대화를 한다거나, 같은 작문 주제로 글을 쓰고 후에 서로의 글을 읽어본다거나, 각자의 작문 방법과 경험에 대해 묻고 답하며 배워볼 수도 있다. 씀은 근본적으로 혼자 하는 일이지만, 때로는 원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신나는 모험이 될 것이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네가 쓴 글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오늘은 왜 이런 거야? 쓰는 문장마다 뻔하고 모든 이야기는 다 지루해. 네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그냥 손만 갖다 대도 마음을 흔드는 글들이 쏟아지는 것만 같아.
역시 그들은 실력자고, 너는 실패자야. 왜 너에겐 그런 재능이 없는 걸까?
성공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기 마련이다. 어떤 산업과 직종이든, 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를 도발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과한 의심은 나의 꿈을 무너뜨리고 자존감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재단하는 방법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다. 나 자신의 재능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은 나 자신의 평가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내가 우러러보는 세상의 멋진 사람들도 인생에 어떤 순간에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와 능력을 한 번쯤은 의심했을 것이다. 감히 누가 누구를 재능이 있다 없다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아무도 인생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능이야 가질 수 있다면 가져야 할 좋은 것임은 분명하다. 모두가 원하는 위대한 것을 이룰 수도 있고, 인생이 한결 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도구는 아니다. 열정뿐만 아니라, 꾸준함과 결단력과 집중력, 시간과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거침없는 용기와 믿음, 이 외에도 많은 것들이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이 모든 속성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쓰는 것이 훨씬 행동하기 쉽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 갔다. 새로운 것을 배웠고, 연습했고, 반복했다. 왜 우리는 배우고 연습하고 반복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고,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고,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재능보다 더 위대한 건 행동이다. 우리는 오직 글을 쓸 때,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네 가지의 핑계를 잠재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자리에 앉는다. 밴쿠버 시간으로 매주 목요일, 일주일 동안 만났던 기사들을 한데 모으고, 나의 생각을 담아서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중고 책방에서 사 온 책들을 펼친다.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는다. 걷고, 달리고, 잠도 충분히 잔다.
하고 싶은 게 많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직 모르든, 아무리 찾아봐도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든, 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가족과 친구들과 어쩌다 이름만 알게 된 지인마저 충분한 이유들을 만들어주고 있다.
시간이 없으니까 더 써야 하고, 쓸거리가 없으니까 더 써야 하고, 혼자서 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 써야 하고, 재능이 없으니까 더 써야만 한다. 글을 써야 시간도 생기고, 글을 써야 쓸거리도 늘어나고, 글을 써야 외톨이가 아닌 함께가 되고, 글을 써야 재능도 생긴다.
동네 옷가게에 가서 셔츠를 이것저것 입어보고 계산을 하기 전에 잠시 들어간 뒷방에서 오래된 사전 하나를 발견했다. 마음에 글을 두었더니, 눈에 책이 밟히기 시작한 것이다.
거봐라. 뭐든 하기로 결정하면 세상은 하고자 하는 우리의 편을 들어준다.
일주일에 딱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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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image by Yoon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