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씀'을 멈추고 '기록'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
인터뷰 콘텐츠로 페이스북의 인터뷰 영상 판도를 뒤엎은 셀레브의 임상훈 대표는 본인을 ‘크리에이터’가 아닌 ‘기록자’로 칭합니다.
누구나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변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에게 주어진 장래희망에 대한 질문이 여전하듯, 모두가 꿈을 만들고 꿈을 좇습니다.
셀레브는 그 꿈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많은 대중이 셀레브가 전하는 ‘꿈’을 기억하고 그 꿈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기록은 뒤섞인 일을 정리하여 순서 있게 적음을 의미하는 ‘기’와 파서 새김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함을 의미하는 ‘록’으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저 써 내려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정리하고 다듬어서 세상에 보여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기록이 책이 되고 나아가 더 많은 작업을 가능하게 한 예로는 작가 최준영 님도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하고 재밌는 영상을 공유하는 데 사용되는 플랫폼 ‘페이스북’에 #최준영의 뚜벅뚜벅이라는 해쉬태그로 글을 연재하고, 거기에 쌓인 콘텐츠로 <동사의 삶>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의 글은 짧지만 강렬한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의 일상 속에 숨어있던, 잠잠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
유투버 선민님이 최근에 올린 영상도 기록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약 일 년 전 퇴사를 했고, 그 이후에 퇴사에 관한 단상을 나누었었지요. 일 년이 지난 지금, 옛 영상을 보면서 퇴사를 앞둔, 퇴사를 원하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도 쓰는 것을 넘어선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셀레브와 최준영 작가님 그리고 유튜버 선민님이 잘 해내고 있는 ‘기록’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남겼다가 지우기도 하는 ‘씀’은 대체 무엇이 다를까요?
8살이 되던 해부터 매 방학 때마다 나를 얄궂게 괴롭혀온 숙제, 일기 쓰기. 날씨는 어땠고, 일어나 무엇을 했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질리도록 써왔습니다. 일기가 밀리는 날에는 한 자리 잡고 앉아, 며칠 전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해내기 위해 머리카락 꽤나 잡아 뜯곤 했지요.
편지도 많이 썼습니다. 청소년기에는 제일 친한 친구와 서로의 펜팔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맨날 만나 맨날 수다를 떠는 사이인데도 어떻게나 할 말이 많은지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유치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했어요.
기록은 일기와 편지의 형식일 수는 있지만, 일기와 편지 자체는 아닙니다. 기록은 나와 친한 지인을 넘어서 모르는 사람 누구에게든 공유될 수 있는 콘텐츠를 가리킵니다. 차곡차곡 모아둔 일기와 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면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자라온 배경과 문화를 잘 나타내 주는 콘텐츠가 되어주겠지요. 책이나 전시로 탈바꿈될 수 있는 기록의 콘텐츠 말입니다.
‘쓴다’는 행위가 아주 큰 동그라미라면, ‘기록’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작은 동그라미라고 해두지요.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든 ‘기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상황 속에서, 씀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기록의 지속성입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개인마다 다양하므로 기록은 한 시간의 기록부터 10년의 기록까지 다를 수 있겠지요.
미디어 회사나 1인 크리에이터들의 경우 기록 자체가 업이기 때문에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창조합니다. 지속적 창조라는 틀 안에서 기획을 하고 회의를 하고 홍보를 하지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 한다면, 내가 지속할 수 있는 기록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에서 많은 도전이 출발됩니다. 그리고 기록을 지속하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 떠오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 생기기도 합니다.
문장 하나를 그냥 쓰고 지워도 아무도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는 온전히 쓰는 사람의 몫입니다.
셀렙들의 꿈으로 대중을 응원하는 셀레브나, 매일의 단상을 통해 페북 친구들과 소통하는 최준영 작가나, 퇴사라는 주제와 함께 한국 젊은이에게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선민 씨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메시지가 확실하게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천천히 살펴보면 발견되는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내온 #시골, 아빠의 권유로 시작된 #캐나다 이민생활, 디자인부터 천연염색의 문까지 열어준 #뉴욕, 그리고 한국의 전통색을 탐할 기회가 된 #색에 미친 청춘 까지. 이들을 주욱 나열해두고 각각을 점선으로 연결하면 나만의 메시지가 됩니다. 그 메시지들은 제가 2018년에 시도해볼 도전들이 되어주기도 하고요.
개인의 스토리를 담은 콘텐츠 제작에는 콘텐츠 안에 담아낼 나만의 메시지를 구상하는 것이 좋은 발판이 되어줄 겁니다. 텅 비어 있던 브런치에 제가 직접 쓴 글이 차곡차곡 쌓이니 저만의 메시지가 가득한 기록의 장이 되어준 것처럼요.
‘씀’ 이 ‘기록’이 되어간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저 끄적끄적하던 작은 습관 하나가 내 삶에 이리도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세상엔 지금 이 순간에도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드넓은 이야기들을 콘텐츠로 기록해 나가는 멋진 크리에이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과연 나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어찌 보면 참 당연하지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미 본받고 싶은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많다는 이야기는 그들도 과거 어떤 시점에 누가 듣던 안 듣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기록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고, 지금이라도 시작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공유할 수 있고, 지속될, 나만의 진실한 메시지를 담은 2018년의 기록을 지금부터 함께 준비해봅시다.
늘 그래 왔듯, 저도 기록하며, 당신의 기록을 응원하겠습니다.
Source:
Cover image by Brandi Redd
Caption images by Matheus Ferrero, Hello Im Nik, Kelly Sikkem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