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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a Kim Aug 17. 2016

"조심해!"

길을 건널 때마다 동생에게 소리치듯 전하는 말

그런 날이 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라서 그때의 나의 감정들이 하루 종일 내 곁에 머무는 날.




요즘은 자주 동생과 동네를 거닌다. 


차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다 보니 운전대가 내 두 다리보다 더 익숙해져서 기회만 되면 가까운 거리는 걸으려고 애를 쓰는데, 신호가 있던 신호가 없던 길을 건너야 하는 때에는 늘 소리를 친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오는 한마디, 


조심해!


내 좌우를 확인한 후에는 여지없이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내 두 눈. 그리고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미 그 한마디를 뱉어버리고 만다.


동생은 대꾸 없이 나를 따라 걷는다.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온다. 조심하라는 나의 외침에 대답을 하진 않지만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조심하라고 외치고 만다.




2살 터울의 동생은 내가 3학년 때 1학년으로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집은 리 단위의 작은 시골 동네에 있었고, 8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를 다니다가 같은 학년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한 나는 시내에 있는 조금 더 큰 학교로 전학을 했다. 그리고 동생은 자연스레 나와 같은 시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가 걸렸다. 3학년부터는 오후 수업이 있어서 1학년이던 동생은 점심시간쯤에 혼자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어야 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나에게 동생의 버스비를 챙겨주셨다. 동생을 학교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데리고 가서 버스에 태우는 것은 나의 책임이 되었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걸리는 곳에 작은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20번 버스는 오일장이 열리는 곳 건너편에서 동생을 태워다가 집으로 뻗어있는 작은 골목길의 시작점에 동생을 내려다 주었다. 어릴 적 성장이 느렸던 동생은 1학년인데도 또래 1학년들보다 훨씬 키가 작았다. 손을 아무리 높게 뻗어봐도 정차 버튼에 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매번 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 앞에 서서 부탁드렸다. 버스가 세풍 정미소 앞을 지날 때 꼭 정차 버튼을 눌러달라고. 동생이 그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고. 할머니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계셨는데도 나는 매일 똑같은 부탁을 드렸다. 혹시나 잊어버리실까 봐.


버스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일 때쯤 나는 동생의 작은 손에 동전 몇 개뿐이었던 버스비를 쥐어주고 짧은 잔소리를 했다. 의자를 보면 앉으라던가, 서있을 때는 안전대를 꽉 잡고 있으라던가 하는 것들이었다.




동생이 초등학생이 된 해는 막냇동생이 태어난 해이기도 했다. 정류장에 우리 자매가 도착하면 동네 할머니들은 보건소 집 딸내미들이라며 우리를 아는 체하시면서 아들이냐, 딸이냐 하는 질문을 하시다가 아들이래요, 하는 내 대답에 걸쭉하게 웃어 보이시곤 했다.


막내로 이쁨 받던 동생은 진짜 막내가 태어나면서 둘째가 되었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버스에 잘 올랐는지 매일 확인해주던 언니가 막내가 태어나자마자 온 관심을 막내에게 쏟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질투심에 불타던 둘째는 때때로 막내를 구박했다. 베개로 살짝 미는 모습을 내게 들켜서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2년이 뭐라고 나는 엄청나게 어른 행세를 해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심’은 내가 했어야 했다. 

어린 동생의 솜사탕 같이 보들보들한 마음을 잘 다독였어야 했다. 

너도 막내도 내게는 소중한 동생이지만 막내가 너무 어리니까 우리가 동생을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잘 설명했어야 했다. 


동생은 지금도 그때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다. 엄마가 챙겨주신 버스비로 군것질을 해버린 날에는 내가 친구들에게 가서 100원씩 꾸어서 자기 버스비를 챙겨줬었다면서. 그때 버스비 꽤나 뜯긴 내 친구들이 자기를 귀엽다며 예뻐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길을 건널 때마다 조심하라고 잔소리한다며 엄마에게도 우리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우리 자매가 사이좋게 옛날 얘기하는 것을 흐뭇하게 쳐다보신다.




동생을 버스에 태워 집으로 보내고 나서 혼자 학교로 걸어 돌아가던 나는 뭔가 마음이 뿌듯했었다. 

중요한 일을 잘 마무리한 사람처럼. 내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보란 듯이 잘 끝낸 사람처럼.


지금도 동생이 약속이 있다고 외출을 할 때면 어디서 누굴 만나는 건지 물어본다. 다 큰 어른한테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너무 간섭하는 건가 싶어서 묻고 싶은 질문을 아낄 때도 있지만... 

동생이 돌아올 때쯤 집 열쇠가 현관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내게 주는 안정감이 있다. 


아, 돌아왔구나. 아, 조심했구나.




참 착한 내 동생. 어렸을 적 어르신들이 유난히 예뻐했던 동글동글한 얼굴의 내 동생. 

그래서였을까?

할머니들 앞에 서서 "얘가 내 동생, 사라니까 잘 챙겨주세요, 정차 버튼도 꼭 눌러주시고요, "라고 인사할 때마다 당당하고 뿌듯했었다. 


내가 뭘 잘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냥 내 동생이 내 동생이라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그렇게도 뿌듯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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