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모금 기대하기 어려운 사막이었다.
선인장은 기억나지 않는 시작의 순간을 생각해보려 애썼다. 분명 사막 한복판에서 시작된 삶의 이유가 있으리라. 실은 무슨 생각이라도 끊임없이 해야만 했다. 선인장은 늘 목마름에 시달렸고 생각이 멈출 때마다 갈증의 고통은 더 크게 느껴졌다.
선인장은 그늘이 지는 순간을 좋아했다. 잠시나마 생각을 멈추고 서늘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금세 암흑 같은 밤이 되고 몸은 얼어붙었다. 이런 지옥같은 하루를 견디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내일은 뭘 기대할 수 있는건지 선인장은 계속 생각했다.
하루가 시작됐다.
선인장은 흩날리는 모래알들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선인장도 모래알들처럼 조금씩 위치를 옮겨보려 했다. 하지만 메마른 공기만 더 들이킬 뿐 똑같은 사막이었다.
이렇게라도 살아 있는 게 나은 건가?
죽어본 적이 없으니 영원히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선인장은 이런 끝없는 생각의 주제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선인장은 야자수나무로 자랄 줄 알았다.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색깔을 지닌 존재는 야자수 한그루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무언가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잎은 생기지 않았고, 줄기에서는 날카로운 가시만 자라났다. 그렇게 낯선 형태로 발육하던 어느날 늘 곁에 있던 야자수가 사라졌다.
선인장은 그간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닐까도 의심했지만 분명 야자수를 보았고 빈자리를 느꼈다. 야자수가 사라진 그날부터 선인장은 지독한 숨막힘을 느끼게 되었으니 말이다. 야자수가 만든 그늘에서 자신이 살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선인장이었다. 야자수는 어디로 간 걸까?
또 하루가 시작됐다.
선인장은 흩날리는 모래알들을 구경했다. 가끔 돌멩이를 볼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그동안 봤던 돌멩이 중에 가장 큰 돌멩이를 보았다. 새로울 게 없는 사막에서 큰 돌멩이는 신기한 구경이었다. 선인장은 유심이 큰 돌멩이를 보다가 그 옆에 난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메마른 사막땅에 왜 구멍이 생긴 건지 들여다 보던 선인장은 씨앗이 움트는 자리임을 직감했다.
선인장은 기뻤다. 분명 새로운 야자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그늘을 선사할 새로운 야자수가 틀림없다고.
몇 날 며칠 선인장은 그 작은 구멍을 응시했다. 그곳에서는 선인장의 바람대로 초록빗깔의 식물 하나가 자라나고 있었다. 보름쯤 지났을까. 모습을 드러낸 식물은 잎이 없었다. 줄기뿐이었다.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줄 수 없는 작은 줄기에 가시 돋친 또 다른 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새로운 선인장이 신경쓰였다. 자신처럼 고독할까봐 고통스러울까봐 걱정됐다. 선인장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새로운 선인장에게 알려주리라 마음 먹었다. 낮과 밤의 고통, 모래알과 돌멩이, 야자수가 움트는 줄 알았던 그 모든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태어날 때부터 숨막힘이 익숙했던 새로운 선인장은 이야기를 들으며 야자수의 그늘이 어떤 것일지 상상해보았다. 처음 보는 선인장의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사라진 야자수처럼 네가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러기엔 난 너무 느려. 걱정 마."
"만약 가야 할 땐 나한테 말해줘."
선인장은 고독했던 시간들을 모두 보상받는 듯했다. 집중하려 애쓸 필요 없이 온신경이 새로운 선인장에게 쏟아졌다. 고통스러운 목마름도 얼어붙는 추위도 이전만큼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새로운 선인장 생각뿐이었다. 새로운 선인장 옆에 영원히 있고 싶었다. 살고 싶다는 집착, 살아야 한다는 강한 집념이 생겼다. 선인장에게는 달갑지 만은 않은 변화였다.
"가슴 아픈 일들이 아주 많겠지. 그건 사막의 냉정함 때문일거야. 언젠가 우리가 메말라 죽는 날이 오는 것처럼.“
"네가 날 아는 만큼 내가 널 알아야 할 것 같아. 아닌 것보다 모르는 게 나에겐 더 무서운 일이야."
"가까이 가면 서로를 찌르고 말거야."
"괜찮아. 내가 너에게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