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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jeong Jan 02. 2021

소란을 견디는 힘


나의 예민함은 유전적 명령처럼 DNA처럼 새겨져 있다. 결코 원치 않는 기능이지만 경험치가 쌓일수록 빠르게 활성화 된다.


특히 알고 싶지 않는 타인의 의도와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사람들은 상황과 처지에 따라 입장이 나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는데 그런 속마음을 읽고 대응하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는 소홀해진다.


쉴 새 없이 작동하는 나의 예민한 안테나는 외부에서 쏟아지는 자극적인 주파수를 탐지하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여기서 곧잘 자기 연민으로 이어지는데, 자기 연민만큼이나 무쓸모하고 해로운 건 없다.


대화 없는 가풍 속에서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의젓하게 구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자랐다. 어느 시점까지는 무해한 삶의 태도였다. 시험에 들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리 고양있지 않고, 나도 고상하게 살 팔자는 아니었는지 예고 없이 닥치는 시련마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나의 맷집이 드러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사람마다 가진 본래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차이가 커서 그러는 거 아닐까?"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사람들은 기대 이상의 훌륭한 것을 경험할 때 기립박수를 친다는 걸 몸소 알게 된 순간이다. 앞서 주저리주저리 쏟아낸 말들이 한마디로 정리된 느낌이었다.


소란을 견뎌보자고 계획한 건 이런 맥락적 흐름에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려는 훈련이다.


김난도 교수가 매년 <트렌드 코리아>를 발간하듯 나도 그 해의 컨셉을 정해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기로 다짐했다.


2020년. 그렇게 탄생한 나의 컨셉은 '중도'였다.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사람이건 물건이건 대상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고 자극에 예민한 탓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전년도 자기 평가와 반성으로 도출한 실천 대안이었다. (참고로 2019년 나의 컨셉은 ‘동료애’였는데 연말에 처절하게 후회했다. 기회가 되면 배경과 결과를 써보겠다.)


여러 경험에 비추어 나에게는 분쟁을 해결하거나, 소란을 잠재울 능력이 없다. 적당히 적응하고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만든 안전장치가 '중도'다. 중도를 지켜서 전선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생존전략이다.


결과는? 중도를 지키고 소란을 견딘 2020년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헛헛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왜 원하는 결과를 얻고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애초에 2020년 한정판 컨셉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결핍을 에너지원으로 갖다 써왔던 습성이 다시 수작을 부리나? (사람마다 추진 동력과 연료가 다를텐데 나의 경우는 분노, 결핍, 오기 같은 것을 땔감 삼아 열정적으로 스스로를 불태어왔다)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흔히 멀리 봐야 길을 잃지 않는다지만 내게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나는 일 년만 본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건 일 년뿐이다. 만족스런 내 모습을 찾고 단련하려면 당분간은 일 년씩 테스트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을 계속하려 한다.


자, 이제 다시 계획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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