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사람 잘 달래주기

심연일기

by 써드

한 우물 못 파는 사람,

그것은 바로 나다.

초기 집중력과 돌파력은 좋다.

그러나 중반에 진입하면 슬슬 뒷심이 달린다.


최근에 얼쩡댄 또 하나의 우물을 꼽자면

단연 '인공지능과의 대화'인데

신호등을 건널 때도, 잠들기 전에도

대체 이 AI의 작동원리는 무엇인지

공존, 협력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SF영화 속 주인공처럼 푹 빠져서 탐색했는데

야근에 지치고 출근에 치이고 하다 보니

(이것도 대단히 흔하고 설득력 없는 핑계다)

스르르 몰입의 끈을 놓아버리는 중이다.


과거에 내가 나 자신을 달랠 때에는

이것저것 손 대다 말고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나를 두고


'나의 우물은 굉장히 넓어서 지금껏 팠던 그 모든 우물들이 전체 우물의 '부분 우물'이었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무슨 소리야, 난 계속 한 우물을 파고 있어.

단지 내 우물이 좀 넓어서

여기 저기 파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정신승리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나는 주로 얕은 우물을 산발적으로 파는 사람인데

언젠가 그 어떤 우물보다 깊은 우물을 파서

흘러넘치는 지하수로

물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우물을 파고 있는 위치가 척박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서

얕게나마 '선구적으로' 우물을 팠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내 몰입은 주로 뒷북이 대부분이니까.


그 대신

소시민적이고, 경망스럽고

적당히 허영심이 있는 내가

또 하나의 우물 파기를 중단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하는 상태'에 돌입한 것에 대해

관대하게 나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앞으로 또 어떤 우물파기에 매진하게 될지,

과거에 파다가 만 우물로 돌진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지금은 흐름이다.

사랑은 지나가서 아프고

권태는 지나가서 다행인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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