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과 회복탄력성

by 써드

하루종일 미약한 두통이 따라다녔다. 계약 바로 근처까지 갔던 부동산 건이 좌절되고 얼마간 더 이 방에 기약없이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어깨쯤에 내려앉아 목 뒤로 온통 뻐근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이런 날은 접시를 깨든 종이를 찢든 뭔가 푸닥거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타깃이 곧 정해졌다. 나는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다.


어깨 너머까지 기른 머리카락은 숱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오후가 되어도 완전히 마르지 않을 때가 많다. 드라이기 바람을 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연건조랍시고 두었더니 매일같이 축축한 산 하나를 지고 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왜 진작 자를 생각을 못했을까. 이게 다 긴 웨이브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나는 늘 탱글탱글 컬이 들어간 긴머리를 동경한다. 내 모발로는 거금의 매직 세팅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꿈이다. 그것을 자각할 무렵 불현듯 커트를 한 뒤 후회하면서 기르다 말고 다시 커트머리로 돌아오는 일은 내 인생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패턴 중 하나다.


자주 찾는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퇴근 후 시간이 남아 싸다김밥에 들렀다.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휙휙 탐색하는데 놀랍게도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아서 테이블에 둔 가방을 챙겨서 도로 나왔다. 밥다운 밥을 먹어볼까 싶어서 두 번째로 들른 곳은 미용실 바로 옆 설렁탕 집이었다. 홀로 반주를 하는 직장인 몇몇이 눈에 띈다. 이번에도 나는 테이블에 있는 전자메뉴판을 뒤적이다가 1분이 채 안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렁탕 사진을 보는데 갑자기 또 식욕이 훅 떨어진다.


결국 내가 들른 곳은 편의점이었다. 삼각김밥과 딸기우유를 사서 테이블도 없이 편의점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바 앞에 사서 엉거주춤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무는데 마침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최근 편의점에서 산 것들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많다 보니 내 몸이 어느새 거기에 맞게 최적화된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미용실 거울을 통해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오늘 거의 처음으로 체증이 확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움큼에 회사 스트레스가, 또 한 움큼에 집을 얼른 정리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또 한 움큼에 세상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몇 년째 단골인 미용실 원장님은 가위질에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매번 이곳에서 커트를 당하곤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피차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 순간 방긋 인사하고 결제를 마친 뒤 나오면 끝인 관계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내 안에 장착된 스프링은 자주 고장이 난다. 한 번 쑥 들어가면 탄력 있는 반작용이 따라주지 않는다. 한동안 심해어처럼 어둠 속을 더듬고 다녀야 한다. 이런 기간이 오면 주로 술을 찾았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나에게 허락하고 싶지 않다. 한결 가벼워진 머리로 집에 돌아오니 비로소 사막의 한가운데 꽂힌 바늘처럼 오롯이 허무감이 밀려온다.


용하든 말든 아무나 붙잡고 사주풀이라도 해 보고 싶다. 그런데 질문하고 싶은 게 없다. 검은 초승달이 뜬 것 같은 시간, 음악을 틀어놓을 기력도 없이 지잉 하고 사방에서 울리는 전자음에 귀를 기울인다. 냉장고야, 가습기야, 형광등아. 난 오늘 좀 힘들었어. 그 순간 ’괜찮아‘ 하고 말하듯이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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