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한 살, 시험관을 기록합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한 번에 덜컥 성공할 거란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고, 그럴 리는 없으니 맘을 비우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여러 생각들이 오가는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열흘 정도를 보내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내 몸을 떠난 난자가 남편의 정자와 만나 수정을 하고 지금 어떤 상태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늘 그렇듯 난임 센터의 대기시간은 보통 1시간을 넘어간다. 길게는 2~3시간을 기다린 날도 많았다. 대기하면서 문득문득 눈에 들어오는 얼굴과 표정들이 있다. 멍하기도 하고,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느라 분주한 표정도 있고, 상기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을 겨우 듣는 이들도 있다. 어떤 간절함과 어떤 아쉬움, 안타까움, 절망감이 난임센터라는 공간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어떤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오게 될까...라는 생각을 잠깐 하는 사이, 진료실 문 앞에 내 이름이 뜬다.
문을 여는 짧은 몇 초의 시간이 지나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담당 교수님의 얼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으로 나는 결과를 알아버렸다.
5일간의 배양을 통해 살아남은 배아가 2개 있었고, 2개의 배아는 유전자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상적인 배아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전에 유산을 거듭했던 것과 비슷한 상태의 배아였다. 담당 교수님은 표정으로, 말로 안타까워했고, 최대한 말을 고르며, 상처가 되지 않을, 낙담이 되지 않을 만큼의 단어를 고르고 골라 나에게 실패한 결과에 대해 알려주셨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을까 싶어 교수님의 입장도 날마다 참으로 난감하겠다 싶었다.
나는 의외로 담담하게 진료실을 나왔고, 이후 일정에 관한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짧은 휴식기를 가진 후 과정은 다시 반복될 터였다. 과배란 주사를 맞고, 몇 개의 난자가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난자 채취를 하고, 수정을 하고, 며칠간 상태를 지켜보고 살아남은 배아는 유전자 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식을 할지 다시 이런 과정을 반복할지를 정하면 되는 거였다. 진료실을 나오던 그날은 몰랐지만 나는 이런 과정에 천천히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주사를 맞는 일도 조금씩 수월해졌고, 난자 채취를 하는 수술실 공간도 처음만큼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를 듣는 일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전화로 통보를 받는 일도 있었고, 역시나 교수님의 표정을 보고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었다.
7월 한여름에 시작한 시험관은 그렇게 해를 넘겼고, 나는 한 살을 더 먹어 마흔두 살이 됐다. 그 사이 나는 총 네 번의 난자 채취를 했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마다 쿡쿡 찌르는 듯 한 배 통증은 배가됐다. 채취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개수의 난자를 채취할 수 있었으니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아진 셈이었다. 뭔가 잘 되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불쑥 찾아오는 뜻 모를 절망감은 가끔 한 번씩 숨이 턱 막히게 했다. 반복되는 시험관 일정으로 배는 늘 멍이 들어 있었고,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호르몬의 영향으로 널을 뛰는 감정을 움켜쥐고 병원을 오가는 여정이 녹록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부분의 날들은 ‘할 만하다’ ‘해보면 되지 뭐’라는 맘이 들었다. ‘이번에도 안 됐어요’라는 말을 들어도 다시 일정을 잡고, 다시 병원을 찾았으며, 다시 주삿바늘을 손에 쥐었고, 다시 마취를 하고 짧은 잠에 빠졌다 깨어나곤 했다.
그렇게 네 번의 과정이 끝나고, 나는 다시 교수님의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마주한 채 진료실에 앉았다. 애써 말을 고르는 듯한 그 표정을 보고 이번만큼은 결과를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