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올까

마흔한 살, 시험관을 기록합니다. (일곱 번째 이야기)

by 여름바람

진료실에 앉으면 담당 교수님 앞으로 온 감사편지와 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감사편지는 누구든 볼 수 있게끔 카드가 활짝 펼쳐져 있다. 교수님의 이야기가 잠깐 멈춰졌을 때, 보여줘야 할 자료가 더디게 모니터에 뜰 때면 그 찰나의 시간에 나는 감사편지들을 눈으로 훑어본다. 마흔이 넘어 첫 아이를 갖게 돼 감사하다는 이야기, 열 번이 넘는 시도 끝에 쌍둥이를 품게 됐다는 이야기 등 어렵게 생명을 품고 출산한 감격스러운 마음들이 담겨 있다. 그 편지들을 볼 때면 나도 이런 편지를 쓸 날이 올까, 그런 순간이 온다면 뭐라고 시작하면 좋을까, 누군가 내가 쓴 편지를 나와 같은 마음으로 보겠지...라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가까스로 이식을 하고 나서 이제는 좀 쉬어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험관이라는 과정은 매 순간 만만치 않았다. 이식 후에도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내 몸으로 들어온 배아가 착상을 하고, 임신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내 몸에 시도했다. 시간 맞춰 먹어야 할 약부터 아침저녁으로 투여해야 하는 질정,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까지. 꼬박꼬박 내 몸에 들어갈 약을 챙겨야 했다. 열 가지 남짓 되는 약과 주사였다. 먹는 약이 가장 쉬웠고, 그다음 질정, 주사 순으로 난이도가 올라갔다.

나한테 처방된 주사는 자궁 내 혈액순환을 돕는 크렉산, 착상을 돕고 임신을 할 경우 유지에 도움이 되는 프로게스테론 주사였다. 크렉산은 스스로 배에다 놓으면 되고, 프로게스테론은 엉덩이 주사라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맞아야 했다. 과배란 주사로 단련이 됐으니 어느 정도 익숙할 줄 알았는데, 이번 주사는 강도가 좀 셌다. 먼저, 크렉산은 과배란 주사보다 체감 상 2~3배 더 아팠다. 그리고 멍이 심하게 들었다. 매일 맞다 보니 멍은 하루만큼 면적이 넓어졌고, 나중에는 멍이 안 든 곳을 찾아서 주사를 놔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멍 자국이 조금 옅어진 곳을 찾아 눈 질끈 감고 주사를 놔야 했다. 주삿바늘이 배에 들어갈 때, 주사약이 몸에 들어갈 때, 조심스레 주삿바늘을 뺄 때, 그리고 맞고 나서도 한동안 아팠다. 그러니 매일 주사 맞을 때마다 심호흡을 있는 대로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맞아야 했다.

또 다른 주사인 프로게스테론은 일명 돌 주사로 불린다. 맞고 나면 맞은 부위가 돌처럼 단단하게 굳기 때문이다. 물론 아프다. 엉덩이 주사다 보니 자가로 맞긴 어렵고, 더러는 남편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던데 나도 남편도 그럴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주사 의뢰서를 들고 매일 동네 병원을 찾았다. 날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주사 부위를 문지르면서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주사를 맞으러 오가며 의도치 않게 나는 매일 동네 산책을 했다. 이른 오후의 동네는 느긋한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들떴고, 나뭇잎들은 생기를 더해갔다. 천천히 봄이 오는 풍경들은 매일 비슷한 듯 다르게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열흘을 보낸 후, 다시 난임 센터를 찾았다. 1차 피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날이다. 마음은 의외로 차분했다. 오전에 피검사를 하고 오후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피검사를 마치고 남편과 짧은 산책을 했다. 처음 가보는 너른 강가에는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포근해진 햇살도 더해져 평화로운 곳이었다. 곳곳에 하얀 목련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의 초입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난임 센터였다.


“1차 피검사 수치가 293입니다. 안정적인 수치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이 건조한 반응은 뭐지... 나도 모르게 담담하게 반응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매우 차분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안정적인 수치라고, 임신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남편도 나도 잘 됐다, 좋다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전에 세 번이나 겪은 유산에서 배운 남편과 나만의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게 확실해질 때, 모든 게 안정적인 상황이 됐을 때, 그때 좋아하고 축하해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아직 2차 피검사가 남았고, 한 번도 듣지 못 한 심장소리를 들어야 하는 과정도 남아있었다. 우리에겐 아직 모든 것이 과정이었고, 우리가 바라는 ‘결과’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목련꽃이 참 예뻤던, 3월 23일 봄날의 오후를 우리는 그렇게 맞았다. 정말 우리에게도 봄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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