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인 방어로만 인생을 하루살이처럼 살 순 없으니까
하루에 거짓말을 몇 번이나 우린 하고 있을까.
어릴 적에는 쓸데없이 그런 것들을 세어보곤 하였다.
'거짓말하면 혼나', '거짓말하면 지옥 간다'
같이 무시무시한 말들 속에
혹여라도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거짓말만 했다면
하느님이 양심은 지켰다며 벌하진 않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안도하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글쎄....
어른이 되고 보니 '숨 쉬는 순간들이 다 거짓말이더라'
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건 타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이다.
거짓에 거짓을 더하며 우리는 거짓된 얼굴로 때로는
그 거짓말을 진실로 믿으며 속아주며
그렇게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잘 잤냐는 질문에
사실은 어젯밤 열대야로 잠을 설쳤음에도 상대방을 위해
혹은 습관성으로 '잘 잤어'라고 말하는 것부터,
상사의 의견에 '저게 뭐야'라고 속으로 씹으면서도,
겉으로는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친구와 오랜만에 옷가게에서 옷을 사려는데
가격이 내 생각과 다르게 0이 더 붙었다면,
자존심과 함께 슬며시 내려놓으며
'막상 사려니깐 집에 비슷한 게 있는 거 같아 그냥 안 살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짓말이 궁극적으로 진실을 이길 순 없고
완벽한 숨김은 어떠한 순간 속에서 진실로써 드러나기 마련인데
우리는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걸까?
소위 리플리 증후군(ripely syndrome)이라는 허구의 삶 속에
자신을 옭아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누구나 '방어기제'를 방패 삼아
나 자신도 모르게 하는 거짓말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있다.
내가 밤새도록 고민해서 작성한 리포트인데
얄미운 상사가 '제 아이디어입니다!'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와 괜히 곤히 잠든 아내를 들들 깨워
'남편 하다 내조 못해 내가 이 꼴이다!'라며 전치(displacement)하거나,
엄지 쪽쪽 빨 나이가 아니고, 손톱 물어뜯으며 즐거움을 느낄 나이도 아닌데,
면접의 긴장 속에만 들어서면 어김없이 위와 같은 버릇들이 튀어나오는
퇴행(regression)도 그러하다.
나는 한 때 신체화(somatizaion)를 일시적으로 느낀 적이 있는데,
그건 프로젝트 발표를 하다가 순간 휘청이며 단상에서 쓰러졌을 때이다.
지금에야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그때는 내가 정말 뇌졸중이나 뇌경색 같은
심각한 불치병에 걸린 건가 염려하기도 했다.
나는 잘 준비했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발표준비가
그 과정에 있어서는 굉장한 스트레스였고,
결국 아침에 먹은 것이 얹혀서 쓰러졌던 것이지만
그 이후로도 발표를 하려 치면 괜히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으로
한동한 힘들었던 것을 보면,
사람의 긴장과 불안은 신체적 고통으로 덮지 못할 만큼
잔인한 친구들인 것이다.
한 번쯤 '나는 어떤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사실 방어기제라는 것이
나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은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머리에 필터링되어 계산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을 일부러 하지 않는 한 찾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한 번쯤
나는 어떤 방어기제로 건강한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의 하얀 거짓말 속에 위로와 안도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삶은 팍팍하다.
실제로 서로가 속고 속이는 게임 속 던전에
아무런 무기도 방패도 갑옷도 없이 떨어진 기분일 때가 많다.
그런 내게 태생적으로 존재한 기본 아이템이 '방어기제'인 것이니,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억울함, 슬픔, 우울, 분노 등의
감정을 어떻게든 거짓말스러운 그것을 활용해
숨기거나 해소하거나 승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말처럼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죽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감정이 살아서 묻히게 되면 나중에 더 괴상망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라고 하니,
더 괴상망측한 거짓말을 직면하지 않으려면,
하얀 거짓말들일 때 너무 검게 되지 않도록 거울처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떼는 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검은 재의 마음으로 살아가진 말자.
그림출처: https://blog.naver.com/sd1862/223148188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