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보단 배려로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도 결코 가볍거나 하찮치 않으니까

by 반달

개인주의가 사람들 마음 곳곳에 깊숙하게 뿌리내린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나를 위한다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닌데

우리나라 정서 상도 그렇고

나를 챙긴다고 하면, 겉으로는 '그렇구나'하면서도

뒤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이구만' 하는

가면 같은 사회에서

어떨 때 나를 챙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기도 하다.


어른이 되면 아무래도 배려보다는 희생을 은근 강요당한다.

그게 사회 통념이자 어른으로서의 무게인가 싶을 때

우린 한번쯤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생긴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 오늘이 제발 금요일이었으면을 외치며

대충 씻고 대충 때려먹을 것을 찾아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아직은 잠이 덜 깨어

불필요한 추진력으로 어기적될 때

그래도 아들내미 볼 뽀뽀는 해주고

아니다 그래도 이왕 식구들 아침밥도 꺼내놔 주고 가야지 하며 부리나케 씻었는데,

남편도 오늘따라 일찍 나가봐야 한다고 하면

결국 아이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것도 하게 된다.

일 하면서 오늘 상사의 기분을 눈치 봐야 하고

적당히 비위 맞추며

맨날 깨지고 있는 후배의 눈치도 보다 보면

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네면, 혹은 거래처와 미팅이라도 있다면

마치 연극의 시나리오대로 얼굴을 갈아 끼우고

맑고 상쾌하게 웃으며 일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타면 분홍색 좌석이 비어있지만

원래 내 자리가 아니므로 손잡이를 부여잡고 온몸을 기대어 퇴근해

집에 와서는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상이라고 말하기엔

가족부터 고객, 상사, 그리고 모르는 타인들까지

나의 희생과 양보는 이 평범한 하루에도 킬포가 몇 개인지 모른다.


아이보다 어른이니깐

조금 더 자랐고 조금 더 성숙하며 조금 더 세상에 이치를 알고 있으니

넓은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힘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성인은 나름의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어

주변에서 기대하는 희생으로만 살아가긴 어렵다.

물론, 가족과 누군가를 위해 응당 해야 할 것에 대해

희생이라는 거창한 짐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어릴 적 자라나지 못한 '내면아이'가

어른으로서 사회나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오히려 더 작아지거나 반항할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은 평소에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보통은 어릴 적의 상처와 그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일상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내면아이' 이론을 적용해 이해하는 편이지만,

거창한 문젯거리나 트라우마가 아니더라도

우리 각자가 성인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심리적 피로감과 죽어도 이해되지 않는 삶의 무게들이

어쩌면 내가 나를 억누르거나 마음의 아이를 다독이지 못해

'이건 내 희생이야, 배려야'라는 명목으로

결국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사시키거나

갈등과 그 이후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타인에게 나도 모르게 툭툭 내뱉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라면 오히려 이해될지 모르겠다.

'아이니까...'

하지만 어른이 그렇다면 사람들은 앞에서 혹은 뒤에서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른이 왜 저렇게 말할까를 지적한다면

오히려 '네가 뭔데 내 말에 지적질이야'라고 할지도 모른다.


가끔 뉴스에서 보는 막돼먹은 사람들의 사건사고를 보면

왜 저렇게 교양 없이 사나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들은 혹시 '희생과 배려'에 눌려오다

결국 폭발한 것일까

아니면 내면의 아이가 봉인해제된 것일까 의문이다.


우리가 남들과 어울려 잘 살아가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배려와 이해 속에서 시작된다.

나의 외롭고 힘든 오늘의 하루가

단순이 지치고 고단한 하루의 반복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하루하루를 '괜찮아, 버텨야 돼'라고만 하지 말았으면 해서이다.


오늘도 자녀들이 엄마 아빠의 고충을 모르고

칭얼대고 있다면

윽박지르거나 혼내지 말고 꼭 안아보자.

마치 내 마음이 칭얼대고 있다 생각하고,

'그래 이건 내가 나에게 주는 배려야'라며 말이다.







화면 캡처 2025-08-30 205357.jpg 작가/작품명: 천경자 /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67년작)

그림 출처: https://blog.naver.com/9778cyberart/22205022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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