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의 글쓰기
브런치를 시작하고 또드락 또드락 뭔가를 쓰다보니 굳이 나를 구독한 사람도 있고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되면 그 사람들도 찾아가서 글을 읽어보고 그 사람들이 구독한 사람들의 글도 찾아가 읽어본다. '나같은 사람도 있구나!',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도 있구나', '정말 다양한 글들이 있구나!'를 새삼 느끼며 또 저마다 글을 쓰게된 이유를 볼 때도 있다.
사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 혼자 좋아서 쓴다. 글을 쓰면서 정리되는 내 생각들이 좋아서 쓰고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영상들에 나혼자 감상에 젓는다. 평소에는 쓸일 없는 단어들을 만지작 만지작 하다가 키보드 위에 쓰면서 콧바람이 흥흥 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여기 저기 글을 써두었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기왕지사 글을 썼는데 누군가가 보고 좋다고 하면 그 또한 좋을일 아닌가? SNS의 초창기 부터 지인들과 일부 모르는 사람들은 내 글을 읽었다. 좋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인기가 좋지는 않았다. 내가 작가가 되지 않은게 그 반증이다.
'글로 먹고 살순 없어!', 글 재주가 없어 등단은 못하고 취업의 길을 떠나며 스스로를 위로한 말이다. 학창시절 빈곤을 아름답게 포장한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정치 권력에 뼈와 살이 뭉개진 시인들을 배우며,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곤궁한 생계를 들으며 확증편향에 빠져든다. 그러면서 결국 나는 직장에 다니며 종종 책을 읽고 때론 어딘가에 취미로 글을 쓰는 직장인이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은 정신 건강에 좋다.' 직장생활에 생계의 아귀 다툼 틈 바구니에서, 모욕적인 취급을 당하고 인간성은 없이 오로지 돈으로만 판단 당할 때, 몸이 늙어가고 인생은 익어가는데 무단히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한 없이 외롭고 두려울 때, 글을 쓴다는 것은 나날히 희미해져가는 나의 자아를 붙들어 매주는 구심점이고 내 발이 지상에 닿는 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현실이다.
그렇게 글을 차곡차곡 모으는 동안 이제 주변에서도 내가 가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끔 귀신 씨나락 까먹는 듯한 쌩뚱맞은 표현을 하는것을 듣고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래서 글들을 갈무리 하여 어떻게 해볼까? 라는 궁리를 요근래에 해보았다. 오랜 시간동안 나를 지탱해준 이 글들이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그 사람은 돈 될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근 물어 물어 내 글이 어떤지를 물었을 때의 대답이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뭐 아직 본격적으로 쓰지도 않았고 그냥 이제 한번 써볼까 다짐했을 때 들은 가장 큰 혹평이었다.
그 뒤로는 또 '뭐더러 쓰냐' 에 대한 확증편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문자 컨텐츠'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영상언어'가 새로운 언어이다. '한국어'로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다보니 무엇인가를 써서 남긴다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까지 갔다. 나는 종종 이렇게 나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고 외부에서 찾음으로 합리화를 한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 그나마 찾아낸 나의 '애호'이며 '기호' 이며 '읽는다'에 작용반사로 '쓴다'도 필연적으로 나온다는 것 또 수 없이 많은 글들 가운데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또 주관적인 느낌으로 내 글이 필요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쓴다. 부유하는 생각들 속에서 운좋게 찾아낸 내 생각들을 잘 꺼내어 나열한다. 마치 냇가에서 수많은 비슷한 조약돌 가운데 건져낸 내 조약돌들을 바라보며 뿌듯해 한다. 그리고 진열대에 늘어 놓으며 언젠가는 내 조약돌이 생각지도 못한 비브라늄이나 아바타의 부유석이었다는 발칙한 상상도 해보며 오늘 하루의 시간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