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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an 20. 2023

4. 상해의 첫 인상

연안로의 용무늬 기둥

상해의 푸동 공항에 내리면 특유의 중국 실내 냄새가 났다. 나라 전체가 이제 막 단장을 마친 새집처럼 페인트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정말로 아직 한창 실내 공사를 하는 듯이 시끄러운 건설 소음과 페인트 냄새 길거리는 인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익숙해진 뒤로는 가끔은 그립기도한 냄새와 소음들이 이였지만 처음 맡는 나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J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나에게 첫 상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곳 푸동은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막 내린 이 어마어마한 공항은 상해의 강남인 푸동 개발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공항이라고 했다. 그도 그렇다고 느낀 것은 버스를 타고 한참이 지나도 도저히 도착을 할 생각이 없는 친구의 집이었다.

그 버스에서 상해의 전설을 전해준 J는 이 이야기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버스에서 더욱 심해진 새로 바른 페인트 냄새 같기도 하고 꿉꿉한 오래된 집 냄새 같기도 한 버스 냄새에 시달리며 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 본다.

 

상해는 중국의 남쪽 중간쯤 바다에 떠 있는 중국에 경제 중심지이다. 중국 청(靑)나라 말기 세계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인 아편전쟁에서 청 왕조를 굴복시킨 영국은1892년 청나라 정부에 자유 항구를 요구하였고 서구 열강과 일본은 청나라의 영토 안에 자신들의 영지나 다름없는 조계지에 영사관과 자치구를 설치하고 치외법권 지대를 유지하면서 어촌 마을이었던 상해를 급격하게 발달시켰다.

 

상해의 바로 근처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남쪽의 서울인 남경과 송나라 때부터 천 여 년의 유구한 항구 도시였던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우는 항주가 있지만 열강들은 중국에 너무 큰 자극을 피하기 위해 남경과 항주의 중간 지역에 조계지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상해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고 2차 대전과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싸우는 국공 내전을 거치며 각지의 난민들이 유입되어 신흥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동안 중국의 쇄국정책인 죽의 장막에 가려 있던 상해는 1990년대 개혁개방 이후 다시 한번 부흥기를 갖게 되고 세계의 자본이 들어오게 된다.

 

상해사람들은 상해가 음기가 강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름 그대로 윗 상 上, 바다 해海로 이루어져 바다 위에 떠 있기도 하지만 중국 강남 지역의 특성처럼 수많은 호수와 늪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비가 오거나 안개가 껴 있는 날씨가 많은데 이것은 상해에 살고 있는 백룡 때문이라고 상해 사람들은 믿고 있다.


상해는 여성이 드세고 남성이 온화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의 각종 매체들을 보면 덩치가 크고 큰소리를 지르는 상해 아주머니와 가정 살림을 살뜰하게 챙기면서 애기를 돌보는 상해 아저씨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 또한 상해의 음기와 백룡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한 번은 상해에 만난 타지역 친구가 '상해의 회사들과 관공서들은 모두 6시가 되면 철저히 칼퇴를 하는데 그이유가 무엇인지 아냐?' 물은 적이있다. 내가 왜냐고 묻자 '시장 부터 남자들 모두가 집에가서 밥하고 애보지 않으면 부인 한테 맞거든' 이라고 장난끼 섞어 말했다.


하지만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닌게 저녁 시간 때쯤 J의 집에 놀러가면 길거리는 온통 앞바구니에는 식재료를 싣고 뒷자석에는 아이를 태운 아버지들이 길을 가득 채우며 퇴근 중이었고 복도 쪽으로 나있는 주방에서 밥을 하는 것도 남자들이 었다. 상해 사람들은 본인들의 이런 특성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데, 상해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백룡기둥 논란이 상해사람들의 이런 정서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상해의 중심가인 인민광장은 시내의 중심이기 때문에 사방의 도로가 모이는 지점이다. 그 중에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 있다. 이 고가 도로는 상해를 남북으로 가르는 도로와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가 만나는 지점인데 바로 연안로(延安路)와 성도로(成都路)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 고가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한기둥만 특이한 용무늬가 새겨진 기둥이 있다. 연안로와 성도로를 연결하는 그 연결점에 기둥을 올리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기둥에 문제가 생겨 도로를 연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회사들이 덤벼들어도 기둥이 세워지지 않고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정안사의 한 스님에게 물어보게 된다. 왠지 모르게 계속 대답을 거부하던 스님은 사람들이 자꾸 성화를 하자 결국 그 스님은 자신이 이 이유를 알려줄 수는 있지만 이것을 발설하면 수명이 단축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지연되는 공사와 사고로 인해 인명 피해까지 나게 되고 사람들이 간절하게 요청하자 스님이 자신의 수명이 줄어들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려 주게 된다.


'지금 고가를 놓으려는 자리가 바로 상해에 살고 있는 백룡(白 龍)의 등 한복판 자리인데 용이 당연히 자기 등에 기둥을 세우도록 가만히 놔두질 않는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도시 계획이 끝나 있고 도로의 위치를 바꿀 수 없어서 사람들은 기둥을 세울 방도를 물어본다. 용을 달래기 위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기둥의 위치를 조금씩 바꾸어 보아도 계속 실패를 하였다. 결국 스님에게 다시 방도를 물어보자 스님은 '다리 아래에 살고 있는 용이 자신의 몸에 비늘이 있는데 비늘이 없는 기둥을 보고 놀라서 기둥을 뿌리치는 바람에 자꾸 무너지게 되는 것이니 그 자리에 들어갈 기둥에 백룡이 자기 몸이라고 착각하도록 용의 비늘 무늬를 새기면 기둥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기둥에 용 비늘 무늬를 새기자 기둥을 성공적으로 세울 수 있었고 상해의 도로는 남북이 뚫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스님은 천기를 누설한 댓가로 얼마 안 되어 목숨을 다했다는 전설이다.


상해역시 고요하게 살다가 귓가에 자신이 연주하지 않는 음악이 울리자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춰온 도시이다. 그 음악은 아편 전쟁의 열강들이 연주했고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던 일본제국군이 연주했다. 사상에 휩쓸린 두개의 정부가 상해를 두고 격렬하고 피비린내 나는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짧았던 침묵을 끝내고 개방된 외부의 자본에 맞추어 또 다시 새로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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