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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an 28. 2023

5. 만남

상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처음 접한 상해의 거대한 고가도로는 내가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 깨트렸다. ‘이렇게 고층건물과 고가도로가 즐비한 도시를 가지고 있다니 정말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의 이런저런 소개를 들으면서도 한참을 지나자 곧 내 선입견의 그런 우중충한 건물들이 잔뜩 늘어서 있는 곳 들이 나왔다. J는 이곳이 그가 공부하고 있는 동네라고 했다.

 

J는 이렇게 친히 나를 공항까지 데리러 오시고 이야기를 전해주는 자상함도 있었지만 자기는 요즘 급하게 처리하는 일이 있다고 나를 난생 처음 보는 용일이라는 친구 집에 맡기고 떠났다. 2박 3일 생전 처음 보는 친구 집에서 지내게 되는 것이다. 외국에 처음 나온 나를 버리고 가는 J의 무심함도 그렇지만 생전 처음 보는 나를 2박 3일이나 재워준 용일이도 지금에서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


나 역시 그 시기에는 특이하고도 요상한 20대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친구 집에서 2박 3일을 지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면서 지냈다. 처음 보는 친구를 졸라 어디 여행을 가는 것도 왠지 자존심이 상했고 말 한마디도 못하는데 어디를 나가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용일이는 중국에 와서 일본어를 전공한다는 친구였는데 약간 졸린듯한 표정에 공부하고 있다는 일본어 때문인지 어쩐지 일본인을 닮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말붙이기도 어려웠는데 그래서 친구의 비상식량을 축내며 2박 3일을 누워서 지냈다. 나중에 친해진 용일이는 그 당시 내가 외국까지 와서 잠만자는 참 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물론 동의한다. 우리는 20대였고 이상한 놈들이었다.


며칠 뒤에 어정어정 J가 나타났다. 시험기간이라고 했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뭔가 바빴었다 했다. 2박 3일간 누워있던 나를 데리고 학교 교무실 같은 곳에 들어가 중국어로 등록을 대신해주는 그는 정말 멋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학교를 등록해 준 뒤에 나의 보금자리가 될 기숙사 등록에는 또 다른 친구인 지희에게 부탁을 하곤 떠났다. 지희는 키가 작고 몸이 날씬했다. 예쁜건 아니었지만 왠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옷차림은 매우 편하게 하고 나왔는데 짧은 치마 밑으로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나는 작지만 화려한 그녀의 패디큐어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뗐다.

 

“빠오따오는 했어?” 지희가 물었다.


“빠오따오는 했고 빠오밍만 하면 된다 던데? J가?”


나는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J가 알려준 대로 대답했고 지희가 알아서 척척 등록을 해주었다. 나처럼 기숙사를 등록하려는 외국인들의 줄이 길었다. 지희가 도와준 덕분에 이 넓은 도시에서 나는 지낼 곳이 생겼다.


기숙사 등록을 마치자 지희는 J와 용일이를 불러 내 환영회를 해주자고 하였다. J는 여전히 무엇인가로 바빴고 용일이만 합류하였다. 지희의 소개로 사천요리집에 가기로 하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간 훠궈집은 입구부터 내 기를 죽였다. 벽면에 빨간 혈앵무 열대어들로 가득 찬 어항 배경에 거지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훠궈집에 도착하니 얼굴이 하얗고 동그란 여자애가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지희야!"


"어 현주야! 꺅 너무 반가워!"


둘은 손을 맞잡고 방방 뛰면서 여자다움을 과시하였다. 식당 손님들도 종업원들도 나와 용일이도 잠시 멈추어 둘의 여성성 표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 친구 현주라고해 이쁘지? 오늘 다 같이 놀자 우리랑 동갑! 용일이는 이미 알지?"


"반가워! 서현주야 J 친구라고? 우리 친하게 지내자"


현주는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웨이터가 마중을 나왔고 지희가 눈을 내리깔고 뭐라뭐라 하자 우리를 안으로 안내하였다. 코를 찌르는 향신료 냄새 사이로 둥그런 원탁으로 가득 차 내부에는 손님 수 만큼 많은 종업원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나는 당장 돈이 걱정 되었다.

 

“오늘은 중국에 처음 오는 사람도 있고 하니 내가 낼께.”

 

지희가 머리속으로 환율 계산을 하던 나에게 모든 계산의 복잡함과 지갑지출의 두려움을 한방에 깨주는 말을 했다. 내가 중국에 처음 왔는데 왜 지희가 돈을 내는지는 지금에서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20대 때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나 역시 자주 얻어 먹고 자주 쏘고 했던 것 같다.

 

 “지희네 집에 돈이 장난 아냐.”

 

용일이가 지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얘기를 했다.

 

“정말 돈이 많으면 미국으로 유학 가지 왜 중국으로 오는데?”

 

현주가 한마디 더 보탰다.

 

“미국은 너무 멀고 또… 이제 중국이 기회의 땅이니까… 뭐 여기 다 그런 것 보고 온 것 아냐?”

 

용일이가 머쓱해 하며 대답하였다. 그때 지희가 자리에 돌아와 얘기가 끊겼다.

 

“무슨 얘기 하고 있어? 우리 소스 뜨러 가자”


“같이 가자 지희야 우리 여자들끼리 소스 떠올 테니까, 남자들은 주문하고 있어?”

 

현주가 지희와 함께 자리를 떴다. 나는 용일이가 주문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았다. 먼저 훠궈를 끓일 탕을 골랐다. 탕은 매운 국물과 안 매운 국물을 기반으로 여러 종류가 있었다.

 

“탕은 원앙탕이지! 매운맛 안 매운 맛 둘 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는 소고기 양고기 등등을 시키고 탕에 끓여 먹을 수 있는 각종 고기와 야채 버섯, 새우, 등을 시켰다.

 

“여기 맥주는 공짜 거든 근데 차갑지 않아서 맛은 없어”

 

“맥주가 공짜라고? 아니 맥주를 차갑게 안 먹는다고?”

 

“엉 흐흐 중국애들은 차갑게 먹는 걸 엄청 싫어해 물도 뜨거운 물만 주자나 찬물은 따로 시켜야 해”

 

“와 맥주를 미지근하게 먹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근데 맥주가 정말 무제한이야?”

 

둘이 주문을 마치자 지희와 현주가 소스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자 이거 먹어 봐 땅콩이랑 마늘 그리고 고수인데 너 고수 먹을 줄 알지?”

 

“어… 응”

 

지희가 장난 스러운 눈빛으로 소스를 내밀었다. 나는 고수향을 매우 싫어 하였지만 견뎌 내기로 했다. 이어 종업원이 태극 모양으로 반으로 갈라진 솥에 육수를 담아 들고 나왔다. 태극 모양으로 갈라진 솥의 위쪽은 빨간 국물이 아래 쪽은 하얀 국물이 담겨있었다. 그리고는 식탁에 스위치를 눌러 탕을 가열했다.  지희는 빨간 탕 쪽의 향신료가 너무 맵다며 걷어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종업원이 카트를 끌고 우리가 시킨 여러 식재료들을 끌고 나타났다.


“육수도 끓고 먹어 볼까? 우리 용일아 그거 시켰지?”

 

현주가 더더욱 장난끼 가득한 눈빛으로 용일이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좋아 그럼 일단 닭고기부터 먹자”

 

현주가 고기 접시를 꺼내서 탕속에 넣었다. 다들 끓는 물에 이것 저것 넣고 잠시 기다렸다가 먹기 시작했다. 나도 내 앞에 놓여있는 고기를 넣고 먹었다.

 

“맛있어?”

 

현주가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물어봤다. 용일이와 지희도 웃으면서 내 반응만 살폈다.

 

“으..응? 맛있네.. 쫄깃하고 탱글탱글 하긴한데, 향신료 맛이 쎄다.”

 

 “그거 개구리 고기인데 맛있어? 아하하하하하”

 

“엉? 이게 개구리? 윽”

 

나는 질색을 하며 뱉어 냈다. 현주는 생긴 것은 예쁘게 생겼지만 장난이 짓궂었다. 그 뒤로도 현주는 돼지 뇌나, 양편 등을 몰래 주문해 놓고 내게 먹인 뒤 질색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 했다. 처음으로 중국의 기괴한 음식을 체험하는 내 모습을 보며 셋은 좋아라 웃었다. 그것으로 내 신고식이 끝났다며 다들 공짜인 맥주를 부어라 마셔라 했다.


상해 사람들은 중국 전국에 유명한 청도 맥주나 설화맥주 보다는 일본 맥주인 선토리 맥주나 아사히 맥주 버드와이저를 많이 마셨다. 일찌감치부터 열강들에 조계지라 외국 맥주에 익숙해 보였다. 신고식을 통과한 나는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하게 녹아 들어 갔다.


훠궈라는 메뉴가 그렇게 다같이 하나의 솥 안에 재료를 넣고 먹으면서도 각자의 식기에 덜어 먹는 중국의 문화와 닮은 요리라고 들었다. 중국에 와서 일본애를 배우는 용일이와 집에 돈이 많아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가까운 중국을 택한 지희 그리고 예쁘고 친절하지만 왠지 대담한 농담을 잘하는 현주, J가 나를 방치한 덕분에 나는 세명의 친구가 금새 생겼다. 20대는 사랑은 어려웠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정말 쉬었다.

 

졸지에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인 친구를 세명이나 만나게 된 나는 J가 없을 때에도 지희와, 현주, 용일이와 종종 어울려서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하고 운동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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