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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Feb 05. 2023

7. 퇴폐

퇴폐(退廢)

1.쇠퇴하여 결딴이남

2.도덕이나 풍속, 문화 따위가 어지러워짐.

  

연관단어: 소돔, 우민화정책, 우민정책, 상중, 악마주의

 

 

여느 날처럼 내방을 찾아온 J는 갑자기 내가 이사 온 기념이라며 작은 내 기숙사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상해 전도를 붙여 주었다.

“야 이거 봐라 상해 엄청 넓지 않냐? 서울보다도 훨씬 더 넓어 여기 아래 쏭장은 난 가보지도 못 했어”

상해 전구역을 여행이라도 가자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상하기 좋아하던 20대 나에게는 매우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J 는 지도에 X표를 그렸다.

 

"어디야? 거긴?"


"너랑 가볼 최초의 유흥업소이지."

 

"뭐?"


"따라와 좋을 거야!"

 

그를 따라 대학교 건물의 블록 사이에 작은 골목에 들어가자 빨간 불을 킨 자그마한 구멍가게 같은 곳이 나왔다. 한국에서도 그런 곳은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가본 것은 처음이었던 나는 적잖게 놀랐지만 20대 특유의 허세로 무장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뭐 야? 여기 홍등가 아냐?"


"야 너 중국에 왔으면 사람부터 체험해 봐야 되는 거라구!"


"아,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난 이런데 말고 좀더 으리으리 한 곳을 기대했는데, 이게 뭐냐 무슨 이발소야?"

 

"가보자~ 엄청 싸 70위안이면 된다!"

 

"70위안이면 얼마야 만 이 천원?"


"너 아직도 한국돈으로 환전해서 계산하는구나? 조금 지나면 중국 돈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 그래.. 그런데 여기 뭐 어떻게..."


J는 업소 앞에서 나에게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줬다. 내심 식은 땀을 뚝뚝 흘리며 듣던 나는 저 목욕탕 때미는 침대 같은 곳에서 친구와 커튼 하나 사이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래서 겨우 다음번에 으리으리한 곳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 것을 원할 뿐이지 내가 이런 유흥을 겁낼 사람은 아니라는 타협이면서 변명이자 허세를 대고 그를 먼저 들여보내고 나는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자전거로 주변을 몇 바퀴나 돌고 나서 그는 씨익 웃으며 가게에서 나왔다.


그 뒤로도 그는 종종 우리집에 와서 상해 지도 곳곳에 X표시를 그리고 그 곳의 특성에 대해 말을 해주고 갔다. 10여년 뒤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지금은 모조리 사라졌지만 그 당신의 중국은 편의점 수 보다 그런 빨간등이 켜있는 업소가 많았고 아파트 상가마다 들어서 있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길을 걸어야 했다.


J는 상해의 전설을 얘기 해줄 때처럼 그 종류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일본에서 들어왔다는 ‘소프란도’, 중국의 전통 기예와 접목된 ‘빨간그네’, 한인회 사장님들이 데리고 가줬다는 KTV, 그가 나를 데리고 갔던 ‘이발소’, 그 이발소에서도 ‘유사 행위’, ‘성행위’ 등등 다양한 종류와 그곳의 특성을 설명해 주며 내가 도착하고 몇달 동안 내 방 지도의 X표시는 점점 빽빽하게 변했고 J가 느끼는 ‘살아있음의 증거’를 나는 그에게서 중계 받아 듣는 것으로 나의 ‘살아있음’도 간접 체험했다.


유흥 지도는 아니었지만 나도 자전거를 타고 상해의 여기 저기를 누비며 나의 X표를 그려 나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상해 대부분의 도로는 자동차 도로와 비슷한 폭으로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그곳을 가득 채우는 자전거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퇴근 시간은 더더욱 많이 이어졌다. 마치 젊은 날의 우리처럼 한창 성장을 하던 상해의 도로는 항상 곳곳이 확장공사, 보수공사, 포장공사 중이었고 자전거는 울퉁불퉁한 도로에서 항상 고장이 났다.


길거리에는 자전거를 고치는 의자 한 개 자전거 부품 몇 개 만을 가지고 있는 임시 자전거 수리공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파는 조잡한 부품들은 금방금방 고장이 나곤 했는데 고장이 나더라도 거의 모든 도로의 코너마다 자전거 수리공이 있었다. 울퉁불퉁하고 갑자기 끊어지는 중국의 도로는 자전거를 고장내고 고장 난 자전거는 싸구려 부품으로 교체되었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좋은 자전거가 필요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멀쩡하던 자전거가 고장이 나는 것일까? 자전거가 자주 고장이 나는 건 애초에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잘못된 장소에서 달리게 된 연유일까? 갈아 끼운 부품 때문일까? 4차선 도로의 2개 차선을 가득 채우고 달리는 상해는 고장나 있거나 고장이 날 예정인 자전거들의 천국이었다.


고장나는 자전거를 고치면서 나는 내 친구의 퇴폐가 원래 고장나있던 자전거라서 그랬던건지 잘 못된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지 궁금해 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친구와 같은 길을 달리며 같은 고장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뭔가 더 고매한 원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속 책을 읽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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