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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Feb 12. 2023

중국에도 해장국이 있나요?

한국과 중국의 국물요리 문화

주말이면 전날 과음으로 해장국 집들이 문전성시다. 한창 회사에서 회식이 많은 시기에도 아침에 비몽사몽으로 출근해 일단 해장국집으로 달려가는 게 일이었다.

지끈지끈 아파오는 머리와 더부룩한 속을 참고 앉아서 해장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냉수를 마시고 깍두기를 집어 먹는다.


그러고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고 아직 팔팔 끓고 있는 해장국에 숟가락을 넣고 새부리처럼 입을 쭈욱 내밀고 국물을 몇 숟가락 마시면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은 중국에도 한국 음식점이 많아져서 순댓국이나 콩나물 국밥, 감자탕, 설렁탕, 짬뽕 없는 해장국이 없다.


하지만 내가 처음 갔을 때만 하도 아직 한류 열풍이 불기 전이라 도무지 이런 음식점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있던 상해지역이 술을 잘 안 마시는 남방지역이었지만 북방사람들도 많았고 남방 사람들도 술을 즐길 텐데 해장국 같은 게 없을까? 중국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중국에도 해장국이 있니?"


"해장국? 그게 뭐야 약인가?"


나는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중국에서는 술 먹고 다음날 먹는 음식이 있어?"


"글쎄.. 나는 술을 많이 안 마셔서, 따듯한 물을 많이 마시고 푹 자"


우리나라는 술을 즐겨하는 사람이든 마시지 않는 사람인 든 술에 취한 다음날 숙취를 달래는 음식이 있으며 그것을 먹으러 간다는 것이 거의 법칙처럼 잡혀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안 그런 모양이었다. 다른 나라 친구들도 숙취에 뭔가를 먹기는 하지만 개인마다 달랐고 우리나라처럼 전문적인 해장용 음식이 있는 나라는 잘 없었다.


미국 친구들은 햄버거나 감자튀김 피자를 먹는 모양이었다. 그냥 뭔가 기름진 것들을 먹었다. 블러디 메리를 마시는 게 술꾼들 사이에서 해장 비법인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주 알코올 중독정도인 사람들의 얘기였고 일반적인 학생들은 다음날 감자튀김에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고 했다.

토마토 베이스의 해장술인 블러디 메리는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처럼 출근해 있으면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어제의 전우들이


"해장하러 가야지?"


하고 묻는 일도 없고 뭔가 행 오버를 해소하러 가자고 하는 것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음식을 먹는 것이지 우리처럼 정해놓은 숙취 해소 전용 음식이 따로 있는 나라는 아직 까지 못 본 듯하다. (대단하다 술 공화국)




중국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지고 나름 생활 반경이 넓어지자 나름의 해장국을 찾아냈다. 마라탕과 우육면을 해장국 대신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라탕의 국물을 한국처럼 벌컥벌컥 마셨다간 화장실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기 일 수이다. 단순히 숙취 때문이라거나 중국의 위생상태 때문이라기보다 각종 향신료 때문인 것 같았다. 중국사람들도 마라탕 국물을 마시는 것을 더러는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즐겨하지는 않는다. 오죽하면 딸이 가난한 신랑감을 데려오자 어머니가 '그놈은 가난해서 마라탕 국물까지도 다 마실 놈이다!'라고 욕하는 뉴스가 중국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9

마라탕에 대한 일화 이전글


한국 사람들은 저 기사를 보면 '오잉? 그게 왜?'라는 반응일 것이다. 나름 오랜 기간 동안 중국과 한국에서 마라탕을 먹어본 나로서는 중국 사람들에게는 마라탕 국물이 마실 필요가 없는 것이고 한국 사람들에게는 얼큰한 국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 들어와 있는 마라탕은 K-마라탕으로 변질되어 국물이 맛있어졌다. 아무래도 마라탕 수입에 앞장선 중국 문화 수입의 첨병 동북지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변화인 듯하다.



(좌측이 중국에서 먹은 마라탕이고 우측이 한국에서 먹은 마라탕이다 국물의 차이가 보이는가? 한국은 한 숟갈 떠먹고 싶지만 중국은 그랬다간 식도부터 내 배설기관을 따라 화끈거림을 느끼게 된다. 물론 중국도 요즘은 많은 변화가 있다.)


마라탕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의 탕요리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국물 자체의 맛을 높이는 것이 탕, 찌개, 국의 본질인 반면 중국에서는 원재료를 끓이기 위한 국물과 국물을 마시기 위한 국물 요리가 구분되어 있다. 전자인 요리들은 만두(교자, 훈툰), 마라탕, 훠궈가 있고, 후자인 요리는 수안라탕, 불도장등이 있다. 내가 몸소 겪으며 체험 한 일화를 소개한다.


탕이 재료를 끓이는 데에만 치중하는 요리(훈툰)와 탕을 마시는 것이 목적인 요리(수안라탕) 우리나라는 찌개를 먹는다고 하지만 중국은 마신다고 한다.




중국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슬슬 음식점 주문이나 택시 탑승처럼 생존에 필요한 회화들을 익혀가고 간판에 글자들이 눈에 익자 나는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혼자 돌아다니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나 밤에 야식을 찾아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는데 밤새 술을 마시는 일도 많았던 질풍노도의 20대에 늘 해장국이나 햄버거라도 사 먹고 들어가던 나에게 사막 같은 중국의 '노 해장' 문화는 많이 힘들었다. 그날도 밤새 술을 먹고 새벽 4시-5시 어간에 어슴프레 동이 터오는 시간에 얼큰히 취해서 집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내 눈에 '만두'라고 써진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이 보였다.


'만두 라면... 얼큰한 국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속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미쳤고 얼른 줄에 섰다. 새벽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줄을 스는 것을 보니 분명 맛집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 차례가 되니 주인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몇 개 줄까?"


‘음... 지금 속이 쎄...하고 중국이 만두의 본고장인데 내가 중국 만두를 한 번도 못 먹어 봤다니 말이 안된다. 이번 기회에 넉넉히 사서 가는 길에 먹고 나중에 또 먹어봐야지! 한국에서 10개 한팩이니 두팩 사서 지금 상태론 한팩 원샷이고 나중에 한팩 더 먹어야겠다.'


"음... 20개?"


"20개???"


'왜 놀라지 8개 한판인가?'


하지만 나는 거기까진 말을 못 했으므로 주인이 약간 의아해하며 싸주는 봉투에 만두를 달랑달랑 들고 숙소로 향했다. 걸어오는 길에 허기를 못 이기고 봉지에서 만두를 꺼내 먹었다. 어머니는 거지도 아니고 길에서 뭘 먹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내가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만두를 베어 물었을 때  안 그래도 숙취로 마른 나의 입안에 가득 차는 밀가루의 텁텁함에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말을 잘 못해서 '속이 없는 만두를 시켰나?' 내가 산 만두는 밀가루 빵을 곱게 쪄서 만든 퍽퍽한 밀가루 빵이었다. 나중에 본 꽃빵이 이 만두랑 좀 비슷했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중국에서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만두를 먹으려면 교자를 시켜야 했다. 만두는 중국의 노동자들이 노동을 가기 전 식량으로 때우는 밀가루 빵과 같은 끼니였다. 밀가루빵의 퍽퍽 함을 배춧국으로 넘기는 게 당시 일용직 노동자들의 한 끼였고 나중에 이슈가 돼서 뉴스에 나왔다. 남들은 만두 1개가 한 끼 밥이었는데 그런 만두를 20개를 사가는 외국인 청년을 보니 주인이 논랄 법도 하다. 어쨌든 그런 빵을 해장용으로 먹었으니 속이 막히고 목이 메어 숙취가 더 심해져 앓아 누었다.

간단히 때우는 한끼의 대명사 만토우 우리나라의 만두와 한자가 같다.



  



그 뒤엔 이제 완전 중국어도 익숙해지고 중국 음식도 두루두루 섭렵해서 교자 만두도 시켜 먹고 훈툰도 시켜 먹고 샤오롱 빠오도 시켜 먹으며 중국 만두에 익숙해졌다. 그러다가 어느 겨울 퇴근길에 상해에서 유명해진 훈툰 체인점이 생기고 퇴근길 젊은 직장인들이 만둣국(훈툰탕)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았다. 훈툰은 잘못 고르면 속이 우리 입맛에는 매우 생소한 맛이 나는 속이 있기 때문에 시켰다가 고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미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즐겨 먹는 훈툰도 있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들어가서 훈툰 탕을 시켰다.


따듯한 겨울에 몸을 녹여주던 한국의 만둣국을 생각하며 만둣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음? 이건 수돗물?'

정말 이지 소금한 톨 양념하나 안 들어간 물이었다. 그래서 훈툰을 건져 먹었는데 훈툰은 맛이 있었다. 하지만 국물은 우리나라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로 소가 헤엄쳐지나 간 밍숭밍숭함도 아니었고 소는커녕 멸치 한 마리 파 한뿌랑지 들어올 생각이 없는 정말 맹물이었고 그 물의 목적은 훈툰을 삶는 용도일 뿐이었다. 나중에 여러 영화에서 유심히 중국인들이 교자나 훈툰을 먹는 모습을 보니 정말 딱 만두를 삶기 위해서만 물을 쓰고 그 물에서 만두를 건져 먹기만 했다. 한국인들은 찐만두가 아닌 이상 만두가 물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만둣국이고 각종 재료가 들어가서 만두 국물 자체가 요리가 되는 것과는 큰 차이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만두와 중국의 만두(훈툰, 교자, 빠오즈 일단 다 만두로 하기로 한다.)는 만두 속에서도 차이가 난다. 한국이 만두는 쪄서 먹거나 국물요리의 재료이기 때문에 만두 속이 수분기가 적은 식감 위주의 속이다. 하지만 중국의 교자나 소롱포는 만두소에 육즙이 가득한데 교자는 베어 물면 육즙이 뚝뚝 흐르고 소롱포는 육즙이 팡 터지거나 흘러내린다. 어떤 소롱포는 아예 빨대를 꽂아 육즙을 마신다.


교자만두, 훈툰탕, 만토우, 소롱포 각자 특색이 있고 교자 만두도 우리나라의 만두와는 조금 다르다.


이렇게 만두에 대한 접근도 한국과 중국의 요리에서 달랐는데 중국에서 국물 요리를 찾는 건 더욱 힘들었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국물요리가 발달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나도 요리전문가가 아니라 모르겠다. 한국을 비하하려는 목적이 다분한 선입견을 가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한국이 식재료가 부족해서 국물이라도 내서 먹으려고 물배를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국물요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비하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문화를 이해 못 하는 매우 편협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국물요리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물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석회질이 많기 때문에 맑은 물을 얻기 어려웠고 대륙 국가이기 때문에 요리의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볶음요리나 탕에 삶고 건져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 하지만 한국은 국토가 산지라 산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많았고 바다가 가까워 신선한 재료가 많았다. 국물 낼 멸치, 생선, 새우도 많았다... 잡내 잡을 마늘, 파도.. 자연환경 전체가 탕을 만들고 국물을 내라고 강요하는 환경이고 중국은 볶아 먹거나 걸쭉한 탕을 만드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물 맑은 나라에서 탕으로 해장하던 내가 대륙의 중국에서 해장할 탕을 찾으니 어불성설이고 연목구어인 것이다. 술 마시는 습관도 다른데 우리나라는 소주를 즐겨마시고 이 소주는 음식 맛을 배가 시키고 자신은 맛이 없다.(물론 주정뱅이가 되면 소주 자체의 단맛에 눈을 뜬다... 어찌 아는지는 묻지 말자) 탕이던, 무침이던, 전이던 소주로 씻어 내리면 요리의 맛을 도와준다.


반면 중국의 고량주나 황주는 스스로의 맛이 강하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한국의 안주처럼 술에 곁들인다는 개념보다는 술맛을 씻는 정도로 먹는다. 고량주에 땅콩을 먹거나 고량주만 마신다. 물론 중국 사람들도 산해진미에 술잔이 따라오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나라처럼 술이 있으면 꼭 안주가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좋은 요리가 있으니 술도 따라온다이고 좋은 술이 있다면 그냥 입을 씻는 정도의 무엇인가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위스키를 마실 때도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술 하면 꼭 안주가 따라오고 다음날 해장국 메뉴까지 정해지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인 것이다.   


백주 한상 차림 돈이 없어서 저렇게 차린게 아니다.


이런 문화에서 술을 좀 마시다 보니 독주를 마시거나 향이 센 술을 마시면 안주를 잘 안 먹게 된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속 배린다. 안주를 많이 먹어!"라고 하는 사람이 꼭 나온다. 하지만 술+대량 음식은 그날의 속불편함이 예상되는 나로서는 고역이다. 또 이런 식으로 먹게 되면 다음날 속이 부대 끼기 때문에 꼭 해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술+땅콩, 술+녹차를 하면서 가벼운 음식을 먹는 술자리 또한 있다고 한국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뭐 진안주 마른안주가 이미 있다고 어떤 술꾼이 말하지만..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국물로 하나가 되는 한국의 음식 문화와 각지의 재료들 마다 그 재료마다의 요리법이 발달한 중국의 식문화를 술문화 체험하며 나는 살이 부둥부둥 쪄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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