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일하던 가게는 IMF의 역풍을 맞아 구조조정을 당해 퇴직금을 들고 온 한국인 가장의 재기 대책이었을 뿐 아무런 '빽'이고 '꽌시'고 없었는데 숨겨진 병기는 바로 J였다. 사장님의 운영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을까? 혹시 말이 안 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이 왜 줄어드는지 나름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이 매일 우는 것도 시골에서 와서 아직 도시의 짓궂음을 견디지 못해서라고 생각한 사장님은 불량배들의 방해를 묵묵히 견뎌 내야 할 자영업자의 숙명으로 여겼거나 어쩌면 그저 시끄러운 유난스러운 중국 손님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래서 행동에 나선 건 J였다. 나를 친절하게 재워주었던 용일이는 일본문화에 빠져 있는 중국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중국에서 유학하는 일본문화 마니아였다. 용일이는 일본의 유도가 브라질에 전해져 발전한 주짓수에 심취해 있었다.
중국에 와서 일본어를 배우는 자신과 브라질에 가서 변형된 주짓수가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을까? 용일이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식 일본 이자까야에서 일하는 J를 꼬셔서 아무튼 많이 섞이고 혼합된 무도를 열심히 단련하고 있었다. 20대 한창나이에 무도까지 단련을 했으니 아무리 청소년기에 왕따를 당하고 운동은 젬병이던 그도 어느 정도 자신감과 그럭저럭 강인한 신체를 갖추게 되었을 때였다.
학교 시험도 끝나고 한가하여 매일 카운터를 보던 J는 운영도 모르고 중국어는 더더욱 모르는 주인아저씨에게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기보다는 한국인 특유의 참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큰 문제 만들지 말라라는 태도의 말을 전해 들었다.
J 역시 학창 시절부터 힘센 아이들에게 당하기만 했던 특성을 잘 살리고 참고만 있었다. 하지만 젊음의 혈기가 끓어오르던 20대의 신인 무도인에게 그저 견디며 불량배들의 행패를 보기만 하라고 신신 당부한 말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왕따 당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상상 속으로만 불량배를 때려눕히던 J는 어느 날 눈앞에서 소형이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불량배들을 보자 드디어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 기합이고 소리고 지를 새도 없이 그동안 수련했던 일본에서 유래되어 브라질에서 변형되어 중국인 사범에게 배운 주짓수의 기술로 손을 댄 놈을 뱀처럼 감아 그라운드에 쓰러트리고 암바까지 걸어 제압을 했다.
하지만 다수를 상대로 스스로 그라운드에 누웠으니 J는 최초에 같이 드러누운 불량배 동지와 함께 인해전술의 국가답게 불량배들에게 같이 쓰러진 동료고 뭐고 같이 밟히게 되었다. 물론 J는 나에게 자신이 대부분의 불량배는 때려눕혔지만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고 비겁하게 기술이 들어갔을 때 적들이 기습했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의 무도 경기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으므로 알고 있다. 아마 1:1 대결이고 무도를 연마하지 않은 첫 번째 불량배는 충분히 응징했을 것이다.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는 남자답게 웅장하게 바닥에 웅크리고 호신술로 급소들을 잘 방어하며 준엄한 목소리로 다수가 밟는 상황을 나무란 걸로 된 것이다.
소형이가 신고를 한 것이었다고 했던가? 아마 아닐 것이다. 농촌 출신인 그녀는 경찰을 불러도 소용없음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가게 운영은 모르고 중국어는 더더욱 모르던 아저씨는 신고를 할 실력이 안되었기 때문에 손님 중 누가 신고를 했거나 어쩌면 경찰이 미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누구도 부르지 않았는데 출동한 경찰은 피투성이가 되어 밟히던 J와 불량배를 말리며 울던 소형, J와 같이 피 떡이 되어 밟히던 불량배 그리고 몇 명을 다 같이 엮어서 경찰서로 잡아갔다.
왕따를 당하며 일진들의 펀치 연습용 인간 샌드백이었던 J가 소형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불량배의 팔을 잡아 암바를 건 것은 J의 인생에서 어떤 한 챕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고 본다. 그는 더 이상 매 맞고 심부름하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때리고 돈 뺏을 때 말고는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애벌레가 아니라 이제는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키가 건장하고 무도까지 수련한, 더 이상 일진들에게 맞으면서도 찡그리면 찡그렸다고 더 맞을 까봐 억지로 웃던 시절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우화를 마친 날개 짓을 하는 나비? 매미? 나방? 무엇이 되었든 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각색한 무용담을 들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피를 뚝뚝 흘리며 비장한 모습으로 경찰서에 가던 그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전해주는 무용담을 들으며 나는 그 자리에 매우 웅장한 음악이 저절로 연주되는 광경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 그는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그가 전해준 무용담을 그대로 옮기고 싶었지만 그 무용담은 우리 시절을 풍미했던 영화 비트에서 배우 임창정이 친구한테 처절하게 맞고도 17:1로 싸워서 졌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는 것으로 충분히 전달이 되리라 생각한다.
운영은 모르고 중국어는 더더욱 모르지만 중국 문화에 대해 배울 생각도 없던 주인아저씨는 자신의 모든 종업원과 지인의 아들이 경찰서로 끌려가는 초유의 사태에 휘말렸다. 소형이와 J 없이는 가게 문을 닫는 법도 잘 몰랐지만 어찌 되었든 가게를 정리하고 자신이 아는 가장 큰 구원군인 ‘상해 북부지역 한인 청년회’에 도움을 청하여 나름 중국에 정통한 중국에 온 지 3년이 넘은 큰 형님을 대동하고 경찰서로 출동하였다.
큰 형님에게 경찰은 외국인들이 중국에서 곤란을 겪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J가 사소한 다툼으로 중국인 한 명을 피 떡을 만들었으므로 쌍방이 모두 잘못이 있다고 전했다. 물론 그 중국 불량배의 팔 관절을 꺾은 건 J였지만 피 떡을 만든 건 불량배들과 괜히 한몫 낀 지나가던 손님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런 점은 차치하더라도 명백하게 술을 파는 주점을 운영하며 밥집으로 허가를 받고 학생비자를 받고 있던 J를 고용하여 일을 시켰으며 그 외에 자잘한 많은 법률을 어겼다고 통보하였다. 하지만 너그럽게도 외국인이라 현지 사정을 잘 몰랐던 것을 감안하여 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변칙 영업과 폭력에 대한 중재를 위해 매달 일정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이로써 주인아저씨는 젊음을 바친 회사가 어려워 지자 마치 제일 필요 없는 약한 부분을 끊고 도망가는 도마뱀에게 버려진 꼬리처럼, 싹둑 잘라 버려지며 받고 온 도마뱀 꼬리 같은 퇴직금을 투자하여 만든 일본에서 수입된 이자까야의 한국식 변형의 중국 분점에 고정비용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 비용에는 중국에 정착하게 소개해준다며 여행 브로커가 뜯어가고 가게를 창립하는 것을 도와준다며 한국인 이민 선배에게 지급하는 돈과 중국인에게 술 한 잔 씩만 팔아도 10억 잔이라며 아직 팔리지도 않은 술잔을 예상하며 어마어마한 창립 비용을 뜯어간 중국이라서 로열티를 안 내고 몰래 OOO의 간판을 걸게 해 준 프랜차이즈 업자가 뜯어가고도 상해지역 북부 한인연합회에 내는 일정 기부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중국어는 잘 모르지만 운영은 더더욱 모르는 아저씨는 중국의 잠재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도마뱀 꼬리 같은 퇴직금의 원금이 지속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투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날로 J는 카운터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인생에서 첫 여자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하였던가 그녀가 J의 병간호를 하러 들어왔다가 그의 방에서 아침까지 나가지 않게 된 날부터 J는 나에게 그녀의 순박함과 꾸미지 않았던 외모에 대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중국에 제모 문화가 도입이 되지 않고 그녀의 숙소는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가끔 감는 것도 상관없이 J는 그녀를 마음 깊이 사랑했고 주인아저씨는 종업원 한 명을 잃었지만 나머지 한 명이 가게에 거주하게 되어 더욱 안정적인 운영을 하게 되었다. 다만 지인의 아들을 자신에게 부탁하였는데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되자 혹시 애라도 들어서면 지인에게 무슨 말을 하나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J는 버디버디로 나에게 그간의 정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내가 도착했을 때 즈음에는 이제 가게에 안 나가도 될 정도의 용돈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와 같이 살 지역을 물색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지나치게 생생하게 묘사되어 듣던 먼저 남자가 되어버린 친구의 사랑 이야기와 성생활이야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나고 말았다. 시작이 진부한 불량배들과 싸움에서 그녀를 지켜주었던 이야기인 것처럼 그녀가 떠난 이야기 역시 너무나도 흔하게 소형이 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 다른 곳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중국에 도착하고 용일이네 집에 버려졌을 즈음이라고 짐작을 한다.
어느 순간 그가 소형이 얘기를 더 이상 안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J는 아마도 그녀가 몸을 파는 곳에 취직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집요하게 유흥업소들을 하나하나 뒤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상해의 유흥업소들은 그야말로 이발소처럼 간판을 걸고 이발소만큼 편의점만큼 동네마다 많았는데 서빙을 하며 불량배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며 버는 돈보다 4-5배는 많이 버는 곳이었다.
지금은 모조리 단속을 당해 없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편의점 보다 많이 성업 중이던 그 많던 업소에서 J는 그녀를 만났을까? 알 수 없는 일이고 알고 싶지 않은 일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상해의 도심에 갓 올라온 시골의 농민들의 딸,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던 소수 민족의 처자들이 반짝이는 상해의 야경에 녹아들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골목골목 편의점 보다 많은 선홍색 불빛아래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많던 매춘 업소들은 어느 날 상해에 방문했을 때 정말 빗자루로 쓸어 없앤 것처럼 사라져 버렸는데 상해 박람회인지 엑스포인지 행사를 기획하면서 중국 정부 차원에서 모조리 없애 버렸다고 한다.
J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내 방에 지도를 사주고 X표를 그리며 별일 아니었던 것처럼 나에게 ‘빡촌’에 가자는 말을 건네었을 때 그는 그녀를 찾고 있었을까? 이미 사랑의 감정은 잊어버린 채 복수심에 성욕 속에 그녀를 잊고 싶었을까? 어쩌면 살아있다는 증거를 주지 않는 그녀를 찾기 위해 내게 상해의 유흥을 소개해준다며 그럴듯한 핑계를 댄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헤어짐을 당해 차오른 외로움의 육체의 부름에 응한 것일까?
사랑의 부재로 인한 고통이 J를 괴롭힐 때 J는 사랑의 흔적을 느꼈고 그 흔적은 사랑이 존재했음의 증거였고 그것은 곧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굳이 내방까지 와서 수많은 유흥 업소에 X표시를 하며 사랑이 떨어져 나간 자리를 느끼던 J는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사랑의 부재에 대한 쓰라림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과의 빈자리에 무엇인가를 채워 넣고 빈자리를 채우려 노력한다. 옛 추억들을 꺼내어 새로운 추억이 들어갈 자리를 대체하기도 하고 슬픈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덮거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으로 공허함에서 무엇인가를 느껴 보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J는 사랑의 존재, 사랑이 있었다가 나간 부재의 증거가 느껴지지 않자 곧바로 다시 새로운 사랑의 증거를, 살아있음의 증거를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