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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Apr 23. 2023

끝나버린 연애 그리고 꿈

J가 사귀었던 많은 여자들 중에서 희정 누나와의 연애는 가장 평범했다. 많은 유학생 커플들이 그렇듯이 곧바로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물론 지희도 현주와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용일이나 훈이 형에게서 운동에는 여전히 열심히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 역시 나만의 비애에 빠져 밤늦게 잠들고 낮에는 자는 생활을 하느라 바빴다. 연락이 되지 않는 여자친구와 늘지 않는 중국어, 바뀌어 버린 환경에 나는 우울증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행복해 보이는 J를 보는 것이 힘들었고 질투가 났다. 그리고 J 역시 그저 별다른 소식도 없이 그저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J가 나와 술을 마시자고 청했다. 나는 잘 지낸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간만의 술자리에 당연히 응했다. J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술을 연거푸 마셔 댔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술맛이 더해졌다. 그리고 지나가는 여자를 보더니 말을 붙여 보겠다며 갑자기 자리를 떠서 사라졌다. 나는 그 상황이 웃기기만 하였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기다렸다. 한 15분 정도 흘렀을까 정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J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나에게 계속 술을 더 마시자고 하였다. 나는 이제 너무 많이 취했고 우산도 없었기 때문에 인사 불성이 된 J가 기숙사에서 자고 간다고 하자 나는 안 그래도 외부인 출입 금지인 기숙사에 만취한 J를 데리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희정 누나에게 연락을 해서 J를 데리고 가라고 하였다. 누나가 우산을 들고 도착했을 J는 나에게 화를 내면서 빗속을 뛰쳐나가 버렸다. 누나는 뛰쳐나간 J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나도 하릴없이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J는 그렇게 누나와 헤어졌다. 어떻게 헤어졌다는 걸 듣지도 못했다. J는 나를 편하게 또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J는 세상 모든 사람이 어려웠고 나에겐 그나마 몇 마디라도 말을 했던 게 아닐까? J는 누나가 동남아 남자친구와 사귀었다는 걸 나에게 알리지 않을 만큼 자존심이 강했고 또 J는 누나와 헤어졌다는 것을 말하지 못할 만큼 자존심이 강했다.


"그냥 이제 헤어졌어'


서로 자신의 아픔에만 몰두해서 친구는 그냥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한 나조차 어느새 너무도 확실히 느끼게 된 그의 결별에 대해 묻자 그제야 마치 나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듯이 J는 말을 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우리 신나게 놀아재끼자”

 

  그때 나는 J와 어울려 놀면서도 J가 조금 버겁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젊음의 열기를 뿜어내는 나이라고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들이 너무 지나치게 극단을 추구했고 극단에 다다르고 나서야 만족을 했다. 나는 기껏해야 나의 방탕함으로 통해 나를 망침으로써 실패해 버린 풋사랑에 대한 앙갚음 나에게 대신하면서 나의 비참함의 감정들이 결국 그녀에게 향하고 있고 그녀에게 돌아가는 길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나로서는 그의 극단까지 추구하는 일탈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먼 훗날이지만 그의 끊겨버린 연락처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지던 나는 그의 이런 상황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았다. 아니 어쩌면 그 오래전에 나에게 술에 취해서 혹은 깊은 밤 집에 가는 길에 말한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나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나의 감정들과 무심함으로 별것 아닌 것이라 생각하고 잊었을 수도 있다. 나는 어렸고 나의 인생 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은 큰 관심이 없었고 이해도 부족했다. 한국에 돌아온지 한참 뒤에 나는 소식이 끊긴 J를 추적했다. 어떻게 끊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렇게 세월이 많이 흐른 시점에 문득문득 그가 그리워졌는데 그때 찾아본 적이 있다. 


지금은 사이버 세계에서 나의 흔적들이 암호화돼서 보호받지만  2000년대 초 중반에는 내가 사이버 세계에 남겨둔 발자취들이 검색 몇 번이면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이전에 가입한 카페와 동호회에 남겨둔 리플이나 주문을 하며 남긴 이메일, 전화번호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고 우리는 이런 능력을 이용해서 희정 누나의 관심사를 알아내기도 했고 다른 여러 여자들을 추적해 보기도 했다. 이런 흔적들은 여러 범죄에 악용된 뒤에 인터넷에서 서서히 정화되는 기능들이 생겨 지금은 철저한 보안으로 보호되고 있다.  내가 그의 흔적 찾기 위해 이리저리 검색을 하다 찾은 J가 남긴 글을 찾아내었다. 날짜를 보고 어림짐작을 하니 소형이 와 헤어지고 정윤이와 이상한 관계를 맺고 다시 희정 누나 와도 헤어진 시기에 쓴 글이었다. 


그 당시 모은 인터넷 문화의 시작이자 모든 쓰레기 짓의 시작인 복마전과도 같은 DC inside에는 햏체라는 이상한 말투가 유행이었다. 당시에 인터넷 커뮤니티가 처음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커뮤니티마다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나와 J 역시 그런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나는 역사와 정치를 토론하는 갤러리에서 나의 좌절된 꿈을 거칠고 조악한 언어로 매일 논쟁하였고 그는 격투 갤러리에서 사람들과 격투에 대한 정보를 나누면서 활동을 하였다. 나는 J의 격투와 사랑을 대하는 방식이 그저 ‘살아있다’라는 것을 증거 하는 방식이라고 내 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에게 격투는 하나의 꿈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누차 말해 주었지만 젊은 나는 그것을 귀 기울여 듣지 못하고 나와 같은 틀에 넣어 중국어를 배워 먹고 살길을 찾아가는 와중에 잠시 살아있음의 증거를 찾는 중이라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낸 J는 자신의 생각을 커뮤니티의 햏체로 많은 글을 남겼다.  

 

‘소햏은 이제 격투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오. 집에도 더 이상 학업을 하지 않고 격투가로서 살아가겠다고 말해 두었지만 어머님은 기절하고 아버지는 학비를 끊어버리고 난리도 아니었소.. 소햏은 이제 마지막으로 한국의 시합에서 도전을 한 뒤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 길에 뛰어들지 그냥 다 포기할지 결정해야 하오. 1등이 아닌 운동선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리플에서 그러더이다. 소행은 그래도 도전해 봐야겠소.’


'ㅇㅇ: 1등이다.'

'ㅇㅇㅇ: 즐'

'라울: 형이다. 한국 가서 많이 힘들었구나. 일단 졸업장은 따고 생각하자. 이따가 연습장에서 보자.'

'실바: 야 재능이 없으면 접어라'


많은 글들 중에 쓸데없는 수많은 글들과 리플 사이에 찾아낸 글이다. 나는 J가 격투기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고 집안과 이런 갈등을 빚고 있는지도 몰랐다. 돌이켜 보면 J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격투기란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훈이형도 용일이도 나도 격투기란 그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취미이거나 호신용 수단이라고 생각했지 그것이 J의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생계의 수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부모님들처럼 제발 그 길을 택하지 않기를 바랐다.  


게다가 우리는 J의 실력에 대해 객관적인 어쩌면 주관적인 판단을 이미 내렸기 때문에 J 역시 중국어를 통해 돈을 벌면서 격투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J는 우리의 이 탄탄한 고정관념을 넘지 못했건 것 같다. 넘으려고 했는데도 우리가 너무 굳건했거나 우리가 무시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익명의 공간에서 저 글을 보기 전까지 나는 J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대상은 사랑과 성애를 통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익명의 공간에 남긴 그의 선포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결국 나는 나를 보는 방식으로 J를 바라봤고 나는 그를 안다고 생각했고 내가 아는 방식으로만 그를 이해하려 한 것이다. 결국 나 스스로가 사랑에 굶주려 있고 내가 J에게 사랑과 성애에 대한 얘기만을 했기 때문에 J는 나에게 사랑에 대한 얘기만을 하였고 아니 격투기에 대한 얘기도 하였지만 나는 모두 다 흘려들어 버렸고 정작 그가 사랑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격투기에 대해서는 나 혼자 그냥 취미라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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