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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Apr 30. 2023

결핍과 남용

 

“야 내가 기분 꿀꿀하게 만들었으니 초밥 쏜다!”

 

 내가 J와 희정 누나의 결별에 대해 묻자 J는 나에게 뭐 라도 빚진 듯이 말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지금 아는 사람들이 보면 믿지 않을 만큼 비쩍 말라 있었는데 청춘의 에너지와 사랑의 열병이 나의 지방을 활활 태웠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음식을 훔쳐 먹고 교미를 위해 다투는 도둑고양이는 날렵하게 말라 있지만 거세당하고 매일 사료로 잔치를 하는 고양이는 몸이 두리뭉실하게 지금의 나처럼 살이 찌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옛날에도 지금도 그렇듯이 생선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좋아한다. 뭐 생선회에 밥을 얹은 초밥도 물론 좋아한다.

 

당시의 상하이는 이제 막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개발의 자금이 쏟아지는 상하이에는 외국의 식문화는 나날이 식성이 고급화되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좋은 방도였다. 상하이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을 현지인들이 직접 들여와 있었다. 나는 상해가 조계지 시절부터 발달한 국제도시라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 이럴 때 새삼스럽게 놀라워하곤 했다. 상해는 도시 어디에나 쉽게 국제적인 음식을 찾을 수 있었는데 우리가 있던 변두리 마을 까지도 한참 유행하던 초밥 뷔페가 들어와 있었다.

 

J는 한창 운동을 하고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는지 나에게 초밥 뷔페와 대결을 벌이자고 제안을 하였다. 우리의 육체적 한계를 초밥 뷔페에 도전을 해 보자는 것이었다. J는 그것으로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그리고 살아있다는 증거를 느껴 보고자 했던 것 같지만 대체 나는 왜 응했던 것일까? 아마 나의 청춘의 불꽃 또한 어딘가 태울 거리를 찾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그는 하루 종일 격투기를 단련하고 나는 하루 종일 러닝 머신을 달리고 꼬박 굶은 뒤 스시 뷔페에 당도했고 우리는 손님이라곤 우리 둘 밖에 없는 아마 며칠 동안 우리 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집에서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기로 했다. 중국에서 사장 발달한 도시에서 외국 음식을 도입해서 새로운 트렌드를 포착하려던 주인장은 가게 오픈 부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사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이미 가게는 위기였던 듯 했다. 중국 사람들은 날 생선을 먹는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스시의 경우는 날생선이라는 느낌 보다는 요리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거부감은 조금 덜했다. 하지만 역시 이 변두리 까지 그런 힙한 손님들이 오기에는 아직 장벽이 있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종일 운동을 하고 굶은 20대의 두 청년을 그날의 첫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으로 맞은 그 식당의 처지는 참 가련했다. 점원은 나름 일본인처럼 생긴 중국 사람이었는데 꽤나 예뻤다.


"이라샤이마세에에"


그 점원은 그럴듯하게 일본식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고 우리는 비장하게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야 우리 내기하자 누가 많이 먹나 내기해서 지는 사람이 여기 다 내는 거다?"

 

"좋아 중간에 콜라 먹기 있음 없음?"

 

"딱 한 번 먹는 것 허용"

 

"오케이 고!"


그리고는 메뉴를 보고 주문을 시켰다. 그리고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 먹어 치우고 나서 또 주문을 하고 또 주문을 하여 먹어 치웠다. 우리는 육체의 굶주림과는 다른 허전함을 느꼈고 그 공허함은 초밥으로는 채울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넣는 그 행위는 우리에게 잠시 문제의 근원을 잊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몇 차례가 지나자 음식을 주문을 받고 있던 점원이 우리가 부르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메뉴판으로 얼굴을 가리고 왔다.


"이거 똑같이 한 번 더 주세요"

 

"하잇...큭...큭크"


그녀는 접시를 치우면서 접시가 달각 걸릴 정도로 몸을 떨었다. 아마도 가련한 사장이 없는 날 이런 사단이 벌어졌을 것이다. 내가 만약 사장이었으면 우리 둘에게 그쯤 해서 환불해 줄 테니 그만 나가 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 그녀를 그렇게 즐겁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J와 내가 평생을 통 털어 첫인상으로 누군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진 못했으니 우리 얼굴을 보고 웃은 것은 아닐 것이고 우리가 통쾌하게 엿을 먹이고 있는 사장의 얼굴을 떠올리고 웃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 서야 그렇게 고소하게 웃을 수는 없다.

 

"이쁘지 않냐? 말 한번 걸어 볼까?"

 

"그럴까? 기다려봐 내가 좀만 더 먹고 말을 걸어본다"


우리가 몇 번이고 주문을 다시 하고 그녀는 그때마다 들고 가는 접시가 달각거릴 정도로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우리는 결국 말을 걸진 못 했다. 둘 다 생각은 과도하지만 행동은 과감하지 않은 그런 흔한 20대 청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여전히 친구에게 너는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고 혼나지만 내 기억상으로 나는 132개 J는 120개의 초밥을 먹었다. 그래 현실적으로 90여 개라고 고쳐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그 언저리의 초밥을 먹고 웃는 점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무엇이 신났는지 아니면 무엇에 그렇게 악에 받쳤는지 그렇게 밤거리를 쏘다니게 되었다.


곧이어 J의 생일이 다가왔다. J는 생일 같은 건 챙김 받아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은 무도인에게 사치라는 듯이 굴었다. 그래도 항상 뭉쳐 다니던 훈이형과 나는 J의 생일을 맞아 한번 크게 챙겨주자고 하였다. 


"J 생일에 뭐 하냐?"

"글쎄요.. 훠궈나 먹으면 어떨까요?"

"J 향신료 많은 음식 별로 안 좋아 하자나 한식집으로 하자."

"그게 좋겠네요! Ing에 갈까요? 아니면 장백산?"


Ing는 J가 일했던 한국씩 프랜차이즈와는 다르게 가게 감각이 있던 사장님이 차린 밥집으로 신고해서 세금납부를 피한 레스토랑이었다. 사장님은 나름 한국에서 장사를 해봤는지 우리의 작은 한인타운에서 가장 세련된 인테리어와 메뉴를 갖추고 장사를 했고 퓨전 양식 한식 안주와 술도 맥주부터 칵테일 소주까지 한국이 부럽지 않게 갖추어 두었다. 단골들에게도 서글서글하게 서비스를 주거나 아는 척을 해주었기 때문에 중국 당국에서 점검을 나와도 단골들이 

'우리 한국 사람은 밥을 먹을 때 술도 같이 마시기 때문에 술은 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증언을 해주었다. 

장백산은 아마도 조선족 사장이 운영하는 집인 것 같았다. 규모는 상당히 커서 이층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인테리어는 주변 중국 음식점들처럼 촌스럽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고기 불판이 잘 갖추어져 있고 고기가 싸고 맛있었기 때문에 손님이 많았다. 주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촌스러운 유니폼을 갖춘 종업원들이 친절하게 고기를 구워 주었다. 


"글쎼 고기를 구워 먹으려면 장백산이 더 좋지 않나? 몸보신해야지, 그런데 여자애들은 초대 안 하냐?"

"음... 지희는 남자 친구 때문에 못 나오고, 현주는 약속 있다고 했어요."

"하... 그래 그럼 남자들끼리 놀자, 선물을 뭐 할 거야?"

"위스키 어떨까요?"

"오 좋은 생각이다"


훈이형과 나는 둘 다 위스키를 좋아했다. J는 술을 즐겨하지 않았지만 20대인 정말 우리가 주고 싶은 '진정한 선물'을 할 줄 아는 나이였다. 지금처럼 내가 주고 싶은 것과 상관없이 상대방의 쓸모를 생각해서 선물을 주고 나중에 받기를 기대하는 그런 떼를 타기 전이였다. 우리는 J에게 당당하게 생일 축하 계획과 선물 계획을 말했다. 생일이라는 것에는 관심도 없을 것 같던 J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었다. 그리곤 자기도 답례로 한병 더 산다고 했다. 


개항시기의 상해는 어땠 을지 모르지만 문을 걸었다가 이제 막 다시 개방을 한 상해는 짝퉁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외국 브랜드를 무조건 가져다 베끼고 있었고 또, 개혁개방에 돈이 점점 많아지던 상해의 사람들은 외국의 상품들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거대한 짝퉁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그 관심의 극성스러움을 더하였다. 그 관심에는 외국의 술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하지만 상해 사람들은 중국 남부의 사람들 답게 술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짝퉁 장사에는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수많은 짝퉁 술을 생산해 냈다. 


그 당시 우리가 식료품을 사던 용방상점이라는 작은 마트가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이곳은 범죄라는 범죄는 모두 저지르는 곳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외국의 많은 상품들을 밀수하고 있었고 우리가 달러를 가져가면 중국돈으로 불법 환전도 해주었다. 당연히 수입 술도 팔았는데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당연히 밀수한 술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라 너무 순진하게 우리 좋을 대로 '이렇게 싸다니 밀수겠지? 짝퉁 일리가 없겠지... 설마 짝퉁이라도 안전하겠지?'라고 생각을 했다.


장백산에서 삼겹살에 바이웨이를 마시고 Ing에 들러 퓨전 양식에 소주를 마시며 맞은편 자리의 여자들에게 모두 눈빛을 보내고 남자들과는 가상의 전투력 측정을 한 뒤 막상은 소심하게 말을 걸지도 싸움을 걸지도 못하는 술자리를 계속했다. 앞자리에 남녀 커플 둘이 있었다. 내 쪽에서 보이는 여자가 매우 예뻤다. 나는 나를 버린 전 여자친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야 뭘 쳐다보냐?"


문득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던 앞자리 여자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힙합전사가 시비를 걸었다. 아 물론 내가 뚫어져라 쳐다본 건 맞으니 시비라기보다는 정당한 불만의 표현이었을까? 힙합전사의 옆자리 여자친구는 몇 년 뒤에도 눈앞에 아른 거릴 정도로 예뻤다. 그랬으니 항상 일어나는 일이었겠지.


"뭐라고 이 XX야?"


잠시 멍해진 나와 J보다 훈이 형의 반응이 더 빨랐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대 편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왔다. 둘은 몸으로 서로를 밀면서 자신들만의 논리를 주장하였다. J와 나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어났고 그쪽 일행의 남자도 일어나서 끼어들었다. 사장님이 황급하게 뛰어 왔다.


"왜 그래 술 잘 마시다가. 이 친구들 다 착한 친구들이야, 자 내가 서비스 줄 테니까 먹고 참어"


"에이 뭘 또 쳐다봐, 쳐다봤어?"


"아 다른데 보다가 좀... 죄송합니다." 내가 한발 물러섰다. 


"거봐 다 오해 잖아. 이 친구들 다 운동하는 착실한 친구들이야."


힙합전사도 사장님이랑 친했는지 우리한테 '죄송합니다.' 하면서 앉았다. 훈이형은 갑자기 사과를 한다며 소주병을 들고 앞자리로 갔다. 그러자 힙합전사도 반갑다는 듯이 잔을 주고받았고 우리는 결국 자리를 합쳤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고 결국 다 같이 고주망태가 되었다. 


"남자들은 다 똑같아. 싸우고 술 마시고."


너무 아름다워서 쳐다보다가 싸움을 일으킬 뻔하고도 자리를 합석한 뒤에 계속 힐끔힐끔 바라보던 힙합전사의 여자친구가 80년대 후반의 시트콤에 나올 법한 대사를 쳤다. 아마도 멋진 곳에 가서 데이트를 하고 싶었는데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동네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웬 놈팡이들이랑 합석을 하게 되고 그리고는 J와 나는 막상 여자들에게는 말도 못 걸고 힙합전사와 힙합에 대해 누가 누가 더 잘 아나 내기를 하고 있었다. 미녀를 두고 싸우는 가슴 떨리는 드라마가 갑자기 동네 복학생들의 술자리가 된 상황이 맘에 안 들어서였을 것이다. 


"왜 그래 아니 진짜 우리 동생들 다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까 구베이 재즈바 가고 싶다고 했지?"


훈이 형이 여자애를 달래며 중재를 했다. 훈이형은 다 같이 멀리서 공부하는 후배들이 본인이 종종 챙겨주겠다면서 모두들 연락처 주고받고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 나도 얼떨결에 모두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싸이월드가 폐쇄될 때까지 그 여자애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진을 훔쳐봤다. 훈이형이 나중에 이 친구과 잠시 만났기 때문에 나도 그 뒤엔 차단을 당해 애석하게도 더 이상 사진을 훔쳐볼 수가 없게 되었다. 


힙합전사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여자친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우리는 두 커플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XX.. 쟤네 지금 들어가면 어?"


"하... 형.. 진짜 부럽네요..."


"하.. 야 우리도 출격하자."


"어디로요? 신천지 클럽으로 가자. 너 저번에 가본 데가 페가수스였니? 베이비페이스였니"


J는 이미 얼굴이 시뻘게지고 나는 또다시 시야가 물속인 것처럼 뿌예졌다. 훈이형은 점점 전투력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훈이형의 집으로 가서 클럽용 옷으로 갈아입었다. 우리가 외국인인걸 멀리서 알 수 있도록 향수를 마구 뿜어대어 우리 주변으로 향수의 구름을 만들었다. 훈이형은 알마니 구름이었고 나는 폴로 구름이었다. J는 불가리 구름을 만들었다. 우리 셋의 구름은 택시를 타고 신천지로 출동했다. 그곳은 과거 프랑스 조게지로 진정한 잘 노는 외국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조용했던 우리 동네와 다르게 클럽이 있는 거리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렸다. 훈이형이 앞장서고 나도 신이 나서 뒤따랐다. 택시에서 기절해 있던 J도 거리의 열기와 향수 구름의 향기에 다시 힘을 찾은 것 같았다. 클럽 입구에는 거지들과 밀수담배 상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어떤 담배를 사던지 중국 담배인 '중남해'의 맛이 났다. 그래서 그냥 아예 '중남해'를 사면 또 '중남해'가 아닌 다른 맛이 나는 담배를 파는 그런 가판대였다. 


"자 이런 데서는 시가를 펴줘야지"


훈이형이 능숙하게 포장된 시가를 샀다. 앞이 이미 잘려있고 연기를 빨아들이는 곳은 플라스틱 기구로 작은 캡을 씌웠다. 받아서 물어보니 시가 향에 끝맛이 달콤했다. 폐타이어 맛이 나던 가판대의 모든 담배들 중에 유일하게 맛이 좋았다. 시가까지 입에 문 우리들이 클럽 입구에 당도하자 음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심장이 음악 비트에 맞추어 뛰었다. 


"자 선수들 준비 됐지?"


훈이 형이 다 같이 본 영화의 대사를 따라 인용했다.


"J 선수 오늘 생일인데 여기 환자들 수술 제대로 시켜 주세요."


"예. 선생님도 집도하시죠?"


"그럼요 자 그럼 선수 입장"


무서운 흑인 기도를 통과해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는 클럽이 미어터지도록 유행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직 클럽 문화가 중국 사람들에겐 낯설었기 때문에 클럽 안은 외국인들과 조금은 많이 앞서 나가려는 중국인들로 요즘의 클럽처럼 북적이지 않았고 어느 정도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술기운에 나는 무당에 홀린 신령처럼 춤을 췄다. 아 반대로 신령에 홀린 무당처럼 춤을 춰야 하는데... 땀에 흠뻑 젖고 술이 좀 깼다. 주변에 외국인들이 뭐라 뭐라 말 걸었다. 그 당시 나는 영어라고는 듣기 평가에 사지 선다를 할 정도밖에 몰랐기 때문에 답변을 못했다. 그냥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이 선수가 수술을 해야지 여기서 왜 헬스를 하고 있어?"


훈이 형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우리가 양주를 시켜 놓은 테이블에 가니 J와 여자애들 두 명이 있었다. 짧은 스커트에 부츠를 신은 키가 나보다도 커 보이는 하얀 티를 입은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중국사람인가? J는 짧은 단발에 가슴이 많이 파인 검은색 셔츠를 입고 검은 치마에 검은 스타킹을 입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사들 해, J이 자식이 영어를 못해서 뻘쭘했네"


훈이 형이 나를 믿어 주었지만 나 역시 영어 대화는 단어와 수업 때 들은 몇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여자애들은 금방 싫증을 내었고 말이 안 통하니 주사위 게임을 하자고 하였다. 나는 주사위 게임은 할 줄 몰랐고 J가  다시 끼어들었다. 나는 다시 무대로 돌아와 음악에 맞추어 고독한 유산소 운동을 하였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을 때 훈이 형이 다시 운동 중인 나를 찾아왔다. 


"집에 가자, 오늘 뭐 다 안되네"


"네 형...."


테이블에 돌아오니 J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빈병과 땅콩 껍질들이 테이블 위와 주변에도 널려있었다. 나는 유산소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렸기 때문에 술은 깼다. 저녁때 보았던 힙합전사의 여자친구와 스커트를 입고 웃던 여자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왠지 내가 그리워서 사랑하던 여자친구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J의 집에 도착한 우리는 생일 선물로 사두었던 양주를 꺼내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 새벽에 용일에게 연락해서 용일이도 불러내었다. 20대 때는 그 새벽에도 사교적 만남이 가능한 법이다. 그때 용일이도 생일 선물이라며 위스키를 한병 더 사 왔다. 그렇게 각자 위스키 각 일 병을 장렬하게 퍼부었고 그때 부 터 짤막짤막한 기억밖에 나지 않지만 우린 씩씩거리며 또다시 밤거리로 나섰고 그 시간에 까지 문을 열고 있는 수상한 술집에 들어갔다. 술값이 어마어마하게 나온 술집의 메뉴판을 보고도 우리들은 모두 취해서 


'GO'를 외쳤다. 그 뒤 누구인지 모를 여자들이 우리들의 술자리에 꼈고 정신을 차렸을 땐 갑자기 무서운 아저씨가 나와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요구했다. 우리는 취한 와중에도 여기저기 연락을 해서 우리 유학생회 선배들과 한인회 청년회, J와 용일이의 재 상하이 브라질 주짓수 동호회 선배들이 다 출동해서 반 협박과 부탁 그리고 적당한 납득가능한 바가지 선인 제 가격을 치르고 서야 정리가 된 기억이 난다. 그러곤 형들은 우리를 버리듯이 J의 집에 던지고 떠났고 우리의 미친 짓에 합류했던 용일이 형에게 이끌려 흩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야..... J야,,, 머리가 깨질 것 같다. XX 와이런 XX 물 어딨 냐? XX"

 

"아....XX 아.... 여긴 어디야 XX아...XX...XX....XX"

 

"야... J야 XX 그런데 나... 왜 앞이 잘 안 보이냐..... 왜 흐릿해 아직도 술이 안 깼나? XX'

 

"흐흐흐 그러게 우리 아직 술이 덜 깼나 보다 왜 나도 눈앞이 흐릿하냐?"


나중에 우리는 술이 모두 깨고 나서야 그게 가짜 양주의 증상인걸 알았고 용일이는 새벽에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짝퉁을 제조한 상인들도 설마 누가 하룻밤에 그 양주를 한 병을 다 마시리라 상상을 못 해서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로 우리는 용방상점에 가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가끔 뉴스에 나오는 메탄올을 마셔서 눈이 멀거나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증상이 우리가 겪었던 그 증상과 똑같은 걸 보면서 그 정도로 그냥 끝난 것이 다행인지 어쨌건 우리의 젊음은 강했고 또 연약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는 '누나와 헤어진 후유증을 또 삶에 대한 증거를 찾는 방법으로 잊어보려 했구나'라고 짐작할 뿐이지 당시에는 전혀 아무런 생각을 못했다. J는 삶에 증거를 찾으려 하였고 그즈음에는 J가 쫓던 많은 삶의 증거들이 저 멀리 도망쳐 버린 상태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 당시엔 나도 J만큼 이상한 사람이었고 우리의 청춘도 마치 J만큼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와 할 수 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산다는 것에 대해 느끼기', '술을 많이 마셔서 숙취의 고통 속에서 삶의 증거 느끼기'등이 끝나자 J는 이내 다른 활동 들에서 삶의 증거를 찾고자 했다.


J는 그 뒤로 미친 듯이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여자들에게 고백을 할 태세였는데 누나와 헤어진 공허감을 메꾸기 위한 발버둥이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는 느끼지만 그때는 전혀 생각도 못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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