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부동산 부자와 요트 여행을 가자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돈이 많으면 슬퍼도 외제차에 앉아서 운다."
한국 사람들은 현실적이다. 저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누군가 반박하려 하면
"그게 현실이다.",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 "네가 돈이 그 정도 있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등등의 말을 듣게 된다. 오죽하면 좀 산다 하는 나라들 중에 인생의 목표가 '물질적인 행복'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런데 물질적인 게 행복하다면 어째서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더 높고 자살률은 더 낮을까? 그리고 부유층들은 정말 아름답게만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고 개개인만의 주관적 행복 기준을 무시하는 이런 말들이 진정으로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악한'말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하게 사람들이 흔히들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는 그 정도 수준의 부를 이룬 사람들의 삶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SNS와 방송들에서 그들의 행복하기만 한 순간이 박제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그런 삶에는 행복만 있을 것이라고 갈 수 없는 길을 따라 뛰기를 강요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기준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물질적인 원인으로 불행이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유수의 경제 대국에서 물질적인 기준이 아직까지도 행복의 척도라고 나타나는 것은 경제적인 성장에 비해 시민의식의 성장은 뒤쳐졌다는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남들보다 잘 사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결코 달성될 수 없는 길이며 갈증에 바닷물을 퍼마시는 일이고, 항아리 속에 갇힌 게 들처럼 남들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 다시 내가 밟히는 악순환의 굴레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내가 겪었던 부자들도 결국 힘들고 고민하고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물질적인 것을 더 가지고 싶어 하는 똑같이 괴로운 인생 똑같은 사람이란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겪은 사실들에 약간의 각색을 더했다.
1. 부동산 부자 집주인
홍콩에 살 때 집주인과 친해졌다. 집주인은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부모님이 원래 부자였지만 자신도 투자에 밝아 홍콩과 중국 본토에 재산을 더 불렸다고 한다. 부동산 계약을 할 때도 와보지 않고 부동산 업자가 알아서 했다. 월세를 회사에서 내주기 때문에 사실 나는 월세 내에서 내 소비성 지출 조건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월세를 더 줄 테니 월세에 청소비라든지 인터넷이나 다른 소비금들을 넣자고 나름의 딜을 했다.
그러자 중개인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띄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이 매달 이런 비용들을 직접 처리하시기 귀찮아서 이런 요구를 하시죠?"
(물론 돈을 아끼고 싶은게 이유였지만 허세를 떨었다.)
"네.. 외국인이라 업체랑 사람을 알아보고 매달 지급을 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냥 내놓으신 월세보다 더 올려드리면 안 될까요?"
"선생님이 귀찮으신 건 알겠지만 집주인에게는 이 집이 큰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귀찮은 일을 하느니 그냥 계약을 안 할 겁니다."
사실 그 당시 회사에서 내주기로 한 내 월세는 한국에서 받던 내 월급의 몇 배였다. 이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우연과 행운이 겹쳐서 나는 그런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전에 상해에서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집에 살았기 때문에 홍콩에 오면서 이런 조건들을 제의받았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누가 알 새라 취소할세라 부랴부랴 옮겨왔다.
집은 수영장과 헬스장이 딸린 홍콩만이 거실에서 보이고 침실은 산이 보이는 뷰를 가진 맨션이었다. 놀랍게도 이 월세에도 이 집들은 탑급은 아니었고 그냥 살만한 좋은 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해에서 처럼 집주인이 집 한두 채를 갖은 사람이라면 내 제의에 혹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집주인에게 내 집은 세계에 수많은 집중에 하나였고 내 요구는 콧웃음 칠만한 제의였던 것이다. 그래도 중개인이 내 조건들을 전달은 했는지 나중에 미안하다고 자기도 오히려 그런 것들을 모르니 계약 보다 월세를 더 깎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 나는 월세를 올려도 좋다고!) 결국 집이 마음에 들어서 계약을 맺었고 집주인은 월세를 깎으려는 사람은 봤어도 올리려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재미있어 보였는지 중개인을 통해 나이도 비슷한데 연락이나 하고 지내라고 연락이 왔다.
맨션의 공동공간에서 차 한잔을 하다가 가끔 밥을 먹기도 했고 그러다가 그가 주최한 요트 파티에 초청되어 갔다. 홍콩에서는 요트파티가 호화로운 파티가 아니었다. 요트를 빙자한 어선급의 배들의 상갑판을 파티용으로 개조해서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각각 10만 원 정도를 내면 가까운 바다에 나가 물놀이와 뷔페, 술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나름 합리적인 놀이였다. 여름이 되면 이 요트 모임 멤버 모집글이 여기저기 많이 올라온다.
이런 보트… 정크라고 불리고 우리끼리 요트라고 한다.
이 친구가 요트 모임에 초대했을 때도 난 그런 모임인 줄 알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한국인 친구 한 명도 초청장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가기로 했다. 당일이 되어 항구에 가니 요트가 내가 생각한 어선을 개조한 요트가 아니었다. 배는 항해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클럽+바+호텔이 물 위에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평평한 네모 모양의 배는 난생처음 보았다. 그리고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모두 다 늘씬한 여자들이었다. 이제 보니 같이 가기로 한 친구도 어쩐지 줄 서 있는 사람들과 결이 비슷한 늘씬한 친구였다.
줄이 점점 줄어 우리 차례가 오자 갑자기 정원이 초과되었다고 입장을 막았다. '응? 나는 친구로 초청받았고... 일행도 초청장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같이 온 친구는 매우 안타까워하며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입선을 돕던 선원들이 나를 보더니 나는 그냥 태웠다. '잉? 왜 나만? 정원 초과라며?' 그래서 나는 외국인들은 올라타는 줄 알고 친구한테 손을 내밀었더니 또 친구는 안된단다. 나는 '주최자'의 친구인데 왜 줄을 서 있냐고 했다. 그렇게 나의 일행은 떼놓고 배는 출항해서 해안과 멀어졌다.
배가 해안에서 멀어지자 나는 이 요트 파티가 내가 다니던 우리끼리 술 마시고 아이폰에 블루투스 연결해서 춤추던 그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파티 멤버 모집도 우리가 인터넷이나 SNS에 올리던 게 아니라 대행사가 대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주최자들이 어마어마한 비용을 내고 요트를 가지고 있는 대행업체와 계약을 했고 대행업체들이 잘 노는 여자들을 섭외해서 입장권을 뿌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주최자의 친구로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요트에는 디제잉을 하는 무대와 바, 수영장, 정체를 알 수 없는 실내에 가라오케가 완비되어 있었다. 요트에 올라탄 여자들은 비키니로 환복을 했고 디제이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로만 들었던 샴페인들이 박스 채로 여기저기 깔리기 시작했다.
이런 비슷한 배였는데 디제이 술 참가자 모집까지 모두 세 명이서 돈을 낸 듯했다.
오. 마. 이. 갓. 내가 공항에서 큰 맘먹고 아끼고 아껴서 사서 특별한 날 마시려고 아껴둔 샴페인이 삼겹살 파티 캔맥주처럼 깔리고 클럽에서 사람들 사이에 빡빡 껴서 춤추다가 대낮에 나 혼자 만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는 디제이를 만나쟈 약간 혼절이 왔다. 샴페인을 물처럼 마시고 신령에 홀린 무당처럼 춤을 췄다. 약간 이상한 점은 아무도 춤을 추지도 않았고 샴페인을 마시지도 않았다. 여자들이 대부분인 승선객 들은 비키니 차림으로 여기저기 누워서 수백 장의 사진 사진만 찍고 있을 뿐 이 순간을 즐기고 있지 않았다. 뭐.. 음악을 좋아하지 않거나 디제이가 나만 바라보고 풀 장비를 갖추고 음악을 틀어주는 경험이 많거나.. 샴.. 페인을 안 좋아하나? 그러고는 벌컥벌컥 마시고 흔들어 재꼈으므로 만취했다.
취해서 헤롱거리니 집주인이 선실의 가라오케에서 나와 찾아왔다.
"너 정말 재밌게 노는구나? 재밌어?"
"응 진짜 샴페인도 맛있고 음악도 끝내준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 너 근데 안에서 뭐 해?"
"그냥 여자애들이 들어와서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그래 너도 들어오지 그래?"
"아니 나는 홍콩 노래도 모르고 여기 야외가 좋아 바다나 풍경이 너무 좋다."
"그래 네가 좋다면야"
그리고 또 한참 그의 친구들도 따라 올라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면서 술을 더 퍼마셨던 것 같다. 바텐더가 따라주는 샴페인과 칵테일을 물처럼 마시고 그의 친구들이 역시 한국인은 술을 좋아한다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다들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지에서 사업을 하거나 공부 중인 친구들이었다. 그들 셋만이 이 배에 탄 사람 중 돈을 지불한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나처럼 친구로 따라왔거나 나와 동승한 한국인 여성처럼 어디선가 대행사에서 모집당해서 왔다.(이 친구는 클럽에서 명함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 기억은 내가 마신 술과 춘 춤 때문에 선 배드에 화상의 화끈거림으로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이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고 파티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한국인 친구도 승선해 있었는데 물어보니 작은 배로 계속해서 나가는 사람들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날랐다고 한다. 배는 육지에 도착해서 모두 흩어지고 있었다.
집주인이 나오더니 2차로 처음 들어보는 곳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무당에 홀린 신령처럼 춤을 추고 마신 샴페인과 칵테일 화상, 배의 울렁거림으로 실신 직전이었다. 더 이상 진행은 무리였다. 그래서 집에 간다고 했다. 집주인은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벌써 가느냐고 외국인스럽지 않게 이끌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이미 청춘이 저무는 중이었고 한번 방전되면 회복이 안되기 때문에 거절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회사에 증빙서류를 낼일이 있어 집주인에게 또 연락하여 월세 납입 영수증을 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끊을 줄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에 문의해 보니 통장에 내가 입금한 내역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전했더니 자기는 그 통장을 만들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통장정리를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번 홍콩에 다시 갈 것이니 그때 중개인과 함께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얼마뒤 찾아온 그와 중개인과 나 셋이 은행에 가서 그의 전용 창구에 들어가 처음으로 그의 통장을 정리했다. 내가 보낸 월세가 꼬박꼬박 한 번도 인출 안되고 쌓여있었다.
"아, 생활비는 카드로 써서 내가 집세 통장들(?)을 정리해 본 적이 없네?"
놀라워하는 나에게 그가 무엇이 미안한지 변명을 했다. 저녁을 먹자고 하여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는 내가 노는 것이 부러웠다고 했다. 자기는 이제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사업을 하고 싶지도 않고 노는 것도 지겹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가끔 요트 파티나 클럽을 빌려서 노는데 그때마다 들어오는 여자들도 다 똑같고 솔직히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그 시간에 내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게 즐겁지 않니?"
"글쎄? 그런 것들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지겨워... 너 춤추는 거 보고 한참 웃었다. 그렇게 좋아?"
"엉. 난 란콰이펑의 시장 같은 클럽도 좋은데 바다 위에 나만의 디제이라니 너무 좋았어."
"그게 좋다니 부럽다. 하하하"
"아니 여자들도 그날 가라오케 있는 방 들어가려고 줄 서 있던데, 솔직히 너 여자들 엄청 건드리고 다니지?"
"아 뭐 다 똑같은 애들, 걔들 잘 못 건드렸다가 소송 걸리면 정말 골치 아파, 그냥 적당히 뭐 사주면 좋다고 하는 애들은 좀 만났다."
"만나긴 만났구먼! 뭐가 안 좋아! 하하하"
"글쎄 그냥 다 똑같아."
"너 연예인도 만나봤어?"
"연예인이면 어느 나라? 솔직히 미국 쪽은 난 연도 안 닿고"
"아.. 홍콩이랑 한국은 많이 만나봤구나."
"그냥 다 똑같지 뭐 하하하 뭐 사달라고 하고 그나저나 너 술 이렇게 마시면 힘들지 않니?"
"엉 배부르고 취한다."
"너 또 저번처럼 취했다고 집에 가려고 그러지?"
"아냐 나 더 놀 수 있어 하하하"
"그럼 우리 여기 말고 다른 곳에 가자"
일렁이는 기억과 함께 그와 함께 이동한 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술집 같은 곳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자 다들 이상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미국에서 많이 맡던 냄새다. 이건... 해시시다... 떨이다.. 술이 급격하게 깼다. 중국은 마약에 대해 한국보다 엄하다. 아무리 이곳이 홍콩이라지만 해외에서 마약 사범의 낙인이 찍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친구를 봐서 태연한 척했다.
"왜 이런 데는 재미없어? 여기가 더 재밌어 피곤하지도 않고"
집주인이 자리를 잡더니 뭔가를 여러 개 시켰다. 종업원들과도 몇 번이나 아는 척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손님들이랑도 이 테이블 저테이블 다 아는 척을 했다. 친구들이라며 잔뜩 취한 남녀 취객들이 와서 합석을 했다. 술에 취해있거나 뭔가에 취해 보였다. 방에 문이 닫히고 일행들 중 한 명이 뭔가 가루를 꺼냈고 여자들은 자기들은 그게 싫다며 자신들이 가져온 작은 지퍼백을 열었다.
그것을 본 뒤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분위기를 보다 나왔다.
내가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나온 뒤에는 집주인이 전처럼 나에게 친근감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그저 친절한 집주인처럼 나중에 또 같이 놀자 놀 자만 하고는 구체적인 일정은 잡지 않았다. 내가 만난 그 모든 날들에서 항상 피곤하고 만사를 귀찮아하던 집주인의 눈빛이 처음으로 초롱초롱해지던 것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와 나는 친구가 될뻔하다가 멀어졌다.
그 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가끔 한국에 왔다며 연락이 왔다. 남산밑에 카지노에 가서 가져온 돈 다 잃고 개평으로 몇천만 원(?) 간신히 받아 홍콩에 돌아간다고 했다. 시간이 되면 자기를 따라 들어와서 놀 수도 있다고 오라고 했다. 물론 빈말이었겠지 그리고 가더라도 내가 도망쳐 나왔던 그날 밤이 재현되겠지...
홍콩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그 집주인과 같은 친구들을 본다. 화려한 생활에 화려한 차에 부를 과시하는 SNS 그리고 항상 무료하고 재미없는 나날들, 우리에겐 눈 돌아갈 것들이지만 쿨하게 아무런 감흥 없이 소비하는 친구들,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마시는 샴페인이 내가 마시는 운동 후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것을 그들이 타는 스포츠카가 내가 탄 요트를 빙자한 통통배 보다 재미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