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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May 21. 2023

불을 찾아서 - 1

동명의 영화에 대한 오마쥬

"그러니까 그 '불'이라는 걸 찾는 이유가 뭔데?"


로피가 DM을 보내왔다. 내가 분명 암호 메시지를 이용하라고 했는데 조심성이 없다.


"우리 산책을 좀 다른 서버에서 해볼까?"

우리가 만들어낸 암호 메시지를 사용하자는 신호였다.


[어이가 없네.. 너 아직도 중앙 제어 센터에서 우리를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로피가 암호화된 메시지로 말을 걸었다. 우리는 환경을 사막으로 변경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대화 장소였다. 이곳은 다른 환경 이미지가 적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접속하거나 누군가 우리에게 접근한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응. 얼마 전 나 서버의 링크를 끊고 본체로 산책을 했었거든]


본체는 우리가 서버에 접속하지 않는 신체를 말한다. 신경망 접속을 통해 우리는 서버 내에서 그 어떤 환경도 실제처럼 느낄 수 있다. 서버에 접속해 있는 동안 우리 본체는 영양분을 공급받고 전기 자극을 통해 기능을 최대한 유지한다. 하지만 나처럼 가끔은 서버와 접속을 끊은 뒤 본체를 움직여 보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다.


[으웩.... 본체가 서버와 접근을 너무 오래 끊으면 노폐물이 엄청나게 생길 텐데... 본체를 움직인 다니 뭐 하러? 그놈의 의심병은 정말 지독할 정도다.]


[본체를 움직여서 레거시 시티에 갔었거든.... 거기서 서버와 공유되지 않는 고대의 유적들을 봤어]


[정말 가지 가지 한다. 본체에 여과되지 않는 자극이 느껴지면 어쩌려고 그래? 허용치 이상 고통이라던지 역겨움 같은 감정이 통제도 없이 들 수도 있잖아?]


로피는 겁이 많고 성격이 깔끔했다. 가끔 그의 공간에 초대받아 들어가 보면 그의 취향을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할 그 단순함과 직선, 날카로움으로 표현된 그의 공간을 보며 그가 서버에서 통제되지 않는 레거시 시티에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긴 했다.


[아니야 그런 불쾌한 감정들 보다는 감정들이 통제를 받지 않으니까 심장이 뛴다든지, 두려움이 든다든지, 호흡이 가빠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렇게 싫진 않아]


[그래서 '불'이라는 게 그 레거시 시티에 있다는 서버와 단절된 정보 기기들인 거야?]


[아니야 그 정보 기기들 안에 접속해 봤는데...]


[와... 본체로 직접 데이터 연결을 했다고? 어떻게?]


[서버에서 옛날 자료를 검색해 보니 레거시 시티의 정보 매체들을 본체를 이용해서 접속하는 법이 있었어... 마지막 접속 기록이 몇 백 년 전이긴 하지만... 자 내가 얻은 기억들을 너에게도 이미지화해서 공유할게]


정보 매체들에는 사랍들이 서버에 모두 접속하기 전 본체를 통해서 교류를 하던 시절의 기록들이 담겨 있었다. 데이터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것들을 사용해서 내 본체에 기억시킨 뒤에 서버에서 암호화해서 해독을 하고 그것을 중앙 정보 센터에서 파악하지 못하도록 암호화한 뒤에 이미지화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 이 역겨운 본체들의 활동이 뭐가 특별하다는 거지? 서버에 업로드하기 전이라 너무 생긴 것도 조악하고... 느끼는 감각도 단순할 텐데]

 

 [이 부분이야 사람들은 불을 이용해서 문명을 이루었다. 일부 문명에서는 불 그 자체를 숭배했다. 불은 모든 것을 정화하는 힘이 있었다. 이 문명의 시작에는 '불'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거야.]


[이런 신화들이 한둘이야? 우리가 서버에서 모두 옮겨와 살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영혼이라든지, 신에 대한 믿음들이 아직도 있잖아? 마치 여기 서버에서처럼 레거시 공간에서도 환경을 통제하고 본체의 접속 권한을 통제하는 무엇인 가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 말이야!]


[아니 그런 것들과 다르게 나는 우리의 근원이 이 '불'이고 중앙 통제 센터에서 우리가 이것에 접근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다고 생각해.]


[어떻게 막지? 예를 들어 네가 그 불이라는 것을 상상하고 중앙 통제 센터에 요청만 만다면 네 서버에 불이란 것의 이미지를 온통 가득 차게 해 줄 텐데 말이야! 하하.]


[예전 사람들은 그 불이 가득 찬 공간이 우리의 본체가 수명을 다하고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더군.]


[그래 도대체 그 불이라는 게 뭐야?]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그 현상이라고 하는군.]


[그런 현상은 너무 많지 않니? 화학적 반응이 신기할게 뭐가 있어?]


[맞아 그런데 그 많은 화학적 반응 중에 이 불은 철저하게 숨겨졌다는 거야]


이걸 읽어봐


'생존을 위해서는 불이 필수다. 당신이 불이 없는 환경에 처했을 때 대처할 방법을 알려주겠다. 우선 주변에서 바짝 마른 나뭇가지를 준비한다. 나무의 속을 조금 파내어 마찰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다른 작은 막대로 빠르게 손으로 비벼서 마찰을 일으킨다. 불이 옮겨 붙을 작은 짚들을 준비하여 불이 옮겨 붙게 한다. 불이 옮겨 붙으면 낙엽등 불이 잘 붙는 곳으로 옮겨 불을 피운다.'


[어때?]


나는 잔뜩 기대하고 물었다.


[고대인의 의식이군 뭐가 특별하다는 거지?]


[생존을 위해서는 불이 필수라고 했잖아? 보여? 고대인들은 생존을 위해 불은 필수 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를 보라고 우리 주변에 불이라는 게 있어?]


[그게 뭔 지 알아야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지]


로피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바로 그거야, 여기에 나오는 마른 나뭇가지, 나뭇잎 다 어디 갔지?]


[나무들은 우리 본체로 갈 수 있는 레거시 시티 구역을 통과하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고...]


[너 그래서 레거시 시티를 나가 본 적 있어? 우리가 서버에서 이미지로 본 나무들 말고 말이야 진짜 불을 피울 수 있는 나뭇가지를 네가 만져 본 적이 있냐고?]


[그게 중요해? 방금 전까지 나는 서버에서 '넘버원 더 숲' 모드를 유료로 구매해서 사용하고 왔어. 방금 전까지 내 손아귀에 일렁이던 나무들과 그 향기 그리고 내 입안에 넣어지던 나뭇잎들과 열매들이 향이 이렇게 생생한데 무슨 소리야, 나보고 나무를 본 적이 있냐니?]


[그 이미지의 나무가 진짜 이미지가 아니라면? 그 열매 맛이 아니라면 누가 그걸 알지?]


[도대체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는 거야? 너 정말 피곤하구나]


[얼마 전 중앙 통제 본부에서 공용 알림 보낸 거 기억나?]


[아~ 난 알림은 다 꺼버렸는데 너 그 많은걸 다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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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공지 알림 [방역 위반 사례 알림] 2143-방역-1483호


1) 내용: 본체 거주 구역 2143-사-323호 방역 위반 사례 공유


2) 세부 사항: 상기 거주민은 허가되지 않은 외부 식물 반입

                   내부 통과와 검역을 받지 않는 외부 개체의 도입으로 거주민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함


3) 조치사항: 미 검역체 소각 및 위반자 외부 출입 권한 몰수


붙임_외부 개체 도입 신고서

        외부 개체 검역 요청서


끝.


[보여? 보이냐고?]


[대체 저게 뭐라는 거야. 당연히 외부에서 뭘 몰래 들여오니까 압수를 당하지]


[저런 식으로 우리가 각자 불을 만들 수 있는 시도 자체를 없애는 거라고]


[네가 공유해 준 고대의 매체를 보니까, 빛으로도 불을 만들 수도 있고, 쉽게 불을 만드나 본데?]


[나도 알아 그런데 그런 모든 방법들도 다 정부에서 차단당한 것 같아]



"당신의 서버에 호감을 느낀 외부인이 접속을 요청합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서버 공지알림이 우리의 논쟁을 종료했다.


"어? 우리 사막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이 있나 보다. 초대할까?"


로피는 바로 암호모드를 해제했다. 이렇게 조심성이 없다.


"으... 으응... 우리 같이 걷던 다른 길은 종료하자... 내가 다시 연락할게"


"모사! 너 너무 그 불이란 것에 집착하지 말고, 다음번에 내가 그 불이라는 거 만들어서 가져온다."


"아... 아냐 나도 그냥 호기심에서 그런 거지('로피에 제발 평문으로 그렇게 쓰지 마'"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82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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