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찾아서 - 2
동명 영화에 대한 오마주
https://brunch.co.kr/@intothebluesea/77
1편에서 이어집니다.
로피와 내가 만든 사막 공간에 방문자들이 찾아왔다. 나는 로피와 불에 대한 대화를 중지했다. 방문자들은 우리 공간을 둘러보며 시답잖은 얘기들을 나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그저 대화만을 위한 이 공간에 갑자기 방문객이 찾아온 건 무슨 뜻일까? 분명 로피는 우연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로피가 평문으로 금지된 불에 대한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버와의 접속을 종료합니다.]
[생체 기능 유지 시스템은 계속 유지됩니다.]
대화가 지루해진 나는 서버와의 접속을 끊었다.
[생체 기능 유지 시스템 종료]
[경고] 생체 기능 유지 시스템을 종료할 경우 신체 기능 상실 및 약화 질병 감염의 우려가 있습니다.
[경고] 생체 기능 유지 시스템을 종료한 채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 중앙 통제 센터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종료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종료]
나의 본체와 연결되어 있던 튜브 들과 전기선들이 빠져나가고 전해질 용액들이 관을 따라 흡수되었다. 서버 접속용 코쿤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인류가 서버에서 모든 활동을 한 시점부터 서버 접속 코쿤을 두고 본체를 눕힐 수 있는 공간 외에 실제 공간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초기 몇 세대 동안은 서버에 오류도 많았고 부작용도 있어서 실제 공간에서 종종 활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몇 세대 이전부터 처음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서버에서 시작되었다. 서버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데 위험하고 삭막한 실제 공간은 점점 필요성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중앙통제 센터를 만들고 서버와 코쿤의 생명 유지 장치 관리를 맡겼다. 실제 공간들은 점점 사용이 뜸해져 갔다. 그래도 중앙통제 센터는 레거시 시티라 불리는 과거 서버에 미접속할 때 사용하던 공간들을 유지 보수 하고 있었다. 종종 나처럼 그 공간들을 본체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서버에 접속하지 않고 코쿤의 생명 유지 장치에서 벗어난 우리의 본체는 스스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코쿤이 필요한 자극을 주어 신체기능들을 평상시처럼 유지한다고 하지만 코쿤을 벗어난 이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만 지내면 신체는 불쾌한 노폐물들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우리 본체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에너지와 기능을 충전해 두는 장치 같았다. 코쿤이 없던 시절에는 본체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본체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처리하고 기능을 유지하는데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니 짐승과 다를 바가 뭐가 있나?
본체를 초월해서 서버에 살게 된 인간들은 서버 내에 어마어마한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서버 내에서 우리는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을지가 이제 모든 인류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두고 온 이 레거시 시티에 우리가 찾아야 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왜인지 그 길은 중앙 통제 센터가 막아두었다고 본다.
한참을 걸으니 내가 항상 들리는 레거시 시티의 건물들이 나온다. 본체는 벌써 나의 사고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본체의 표피는 기분 나쁜 액체들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본체에 에너지 합성에 필요한 기체를 흡입하는 과정은 계속해서 나의 집중을 방해한다. 과거 인류가 살던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본체의 공기 흡입 기관은 현재에는 쓸모없는 작은 털들이나 알레르기 반응을 계속 일으켜 나의 집중을 방해한다.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이룩했던 우리 선조들의 불굴의 의지에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
과거에 정보들이 서버에 모두 저장되고 공유되기 전에는 이런 장소들, 그리고 이런 작은 매체들을 가지고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버에서는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는데 우리의 생활과 너무 동떨어진 정보들이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찾아볼 수조자 없다. 우리의 서버 내의 세상이 아닌 코쿤을 만들고 서버의 외부 장치를 유지하는 세상에서 쓰이는 정보들, 심지어 이 레거시 시티를 벗어나 아예 인간의 활동과 상관이 없는 광활한 우리의 행성, 그리고 우주 공간의 정보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 갔고 관심이 있더라도 정보 검색을 위한 명령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로피와 내가 만들었던 사막이란 공간도 그렇다. 나는 이 레거시 시티에서 사막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광활함, 뜨거움, 건조함, 극소수의 유기체등을 검색해서 공간을 만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영원히 빛나고 있을 태양의 이미지도 가져다 넣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다른 이웃 서버들과의 교류를 거부한 거대한 공간, 한 복판에 서 있으면 태양으로 인해 뜨거움과 건조함을 느낄 수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로피는 사막에서만 자란다는 식물들을 검색해서 구성했다. 로피도 사막에 사는 식물의 공백 공간에 대해 큰 매력을 느꼈다. 로피의 공간에는 아름다운 식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사막에는 그 밀도가 어마어마하게 작았다. 마치 극도로 절제된 공백에 찍어야 하는 하나의 점, 그 점을 어디에 무엇을 찍을지를 고민하며 로피는 우리가 사막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 신중하게 식물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나는 사막에 있다는 낙타를 여러 마리 하지만 사막의 광막함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드문드문 넣었다.
하지만 이 래거시 시티에 온 뒤에 나는 사막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래거시 시티에서 찾아낸 정보 저장 장치에서 보여준 사막은 광활함, 건조함, 뜨거움 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산과 모래의 세상이었다. 흙과 돌이 아닌 '모래'라는 것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서버 내의 세상을 구성할 때 토양에 대한 정보가 어떤 세상의 중심이 되는 공간은 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모래'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강이나 바다를 불러오면 자동으로 딸려 오는 작은 토양 정보였다. 우리는 그 토양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 일부분이 모든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세상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막이라는 게 광활함, 불모지, 건조함, 끝없이 펼쳐진 광막함이라며? 난 그 개념이 너무 좋은데..."
로피에게 우리의 공간에 토양 구성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자 로피가 불만을 표시했다.
"그런데 이 모래라는 게 그 광막함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건인가 봐."
나는 내가 본 정보매체를 통해 얻은 지식을 말했다.
"바닥 따위가 광활함, 격리됨, 극한이라는 사막의 콘셉트와 관련이 있어?"
"과거에는 이런 토양을 본체가 극복하지 못했고 본체에 주는 고통으로 인해 그런 콘셉트를 갖게 되었나 봐."
"그래 공간 구성에는 디테일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토양 조건 변경: 모래]
[토양 조건이 변경됩니다. 모래는 강가, 해변, 사막, 인공시설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모래라는 게 여지 저기 존재했었네, 내가 만든 '더 숲'에도 모래 지역이 있었어!"
로피가 자신의 서버에서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강을 불러서 보여주었다.
"그럼 강가의 모래로 토양을 변경할까?"
[토양 조건 변경: 모래, 강가]
[모래, 강가로 토양 조건을 변경할 경우 일부 식물들과 대기 조건이 [실제 자연] 모드와는 맞지 않습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응? 모사 아무래도 우리가 다른 조건을 사막으로 골라서 선택지는 사막 모래와 인공시설뿐인가 봐"
"그래? 그래도 일단 실제 자연모드의 그럼 사막으로 토양을 변경하자"
[토양 조건 변경: 모래, 사막]
[토양 조건을 변경합니다. 대기, 식물, 동물이 토양등 일부 종속 조건이 토양 조건에 따라 재배치됩니다.]
"이럴 수가? 모사 내 식물이 다 사라져 버렸어!"
로피는 식생 변경을 다시 하기 위해 사막을 탐색했다.
"와.... 공기는 또 이게 뭐야... 모래라는 게 정말 큰 조건인가 보다. 정말이지 이렇게 몇 개의 조건만으로 가득 찬 공간은 뭐랄까.. 압도된다고 할까? 아니면 공간이 텅 비었다고 할까? 광막함이라는 게 뭔지 조금 감이 온다."
로피와 내가 모래 없는 사막에서 보낸 시간들이 허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모래라는 게 이런데 '불'은 과연 어떨까? 오늘은 꼭 '불'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레거시 시티에서 탐색을 계속했다.
(불은 음식을 조리하고 우리에게 따듯함을 줍니다. 하지만 이 불은 우리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 어린이 백과사전 불조심-)
이미 본 정보매체였다. 불이라는 게 열 에너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열은 코쿤에서도 느낄 수 있고 코쿤이 놓여있는 내 개인 공간에서도 느낄 수 있다. 레거시 시티에서도 위생유지와 이렇게 본체만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위해 열을 전달해 준다. 불이 열이라면 통제할 이유가 없다. 계속 탐색해 본다.
(불은 따듯함을 줍니다.)
(날 것은 꼭 익혀 드세요.)
(물은 꼭 끓여 드세요.)
(캠프파이어 불멍)
(불장난의 대가 엄청난 치욕)
(불장난하고 자다가 오줌 싼 이야기)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봐도 불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얘기들 같았다. 열과 빛과 그리고 그에 부산된 이야기들이었다.
(생일 촛불)
음? 생일? 촛불? 추가 검색을 해볼까?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케이크를 굽고 나이만큼의 초를 꽂아요. 촛불을 한 번에 불어서 끕니다. 촛불을 끄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줍니다.)
바로 이거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날마다 그들이 만들어낸 영양소 중에 가장 고밀도의 당분을 모아 두고 그 위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그 불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했다. 이게 바로 불이 우리의 근원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 초라는 것을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생일 축하라는 의식을 한다면 불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분비물로 축축해진 본체를 이끌고 코쿤으로 돌아왔다. 본체의 충전 시간이 끝나가는지 팔다리 근육에서 고통이 올라왔다. 체내에 영양분도 한계를 드러내고 불쾌하고 날카로운 감정들을 만들어 냈다. 수분이 계속 유출되었기 때문에 본체 기능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레거시 시티 여기저기에 수분을 보충하는 장치가 있었다. 입을 대고 뿜어져 나오는 수분을 재 공급했다. 소화기관을 따라 수분이 퍼져가며 불쾌함과 쾌감이 동시에 들었다. 정말 불편한 시스템이다.
코쿤에 접속하여 생명 유지 장치를 연결했다. 본체에서 빠져나간 물질들이 재 공급되고 노폐물들이 제거되었다. 근육들의 이상 긴장 현상을 치료했다.
[외부 바이러스 21건이 발견 제거 되었습니다.]
[세균의 비정상적인 증가를 통제합니다.]
[외부 활동은 심각한 감염, 본체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로피! 로피! 접속해 있어?"
"모사! 오랜만이야? 불이란 걸 찾아낸 거야?"
"아니 우리 선조들이 매년 자신이 태어난 날에 불을 숭배하는 의식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어!"
"오 그래? 인류의 태동기에나 그랬겠지"
"아니야 우리도 매년하고 있었어!"
"무슨 소리야 모사 우리가 불을 숭배하고 있다니"
[생일 축하 이벤트 실행: 로피]
"와! 정말 예쁘다. 오늘은 내 생일도 아닌데 이 영상은 왠 거야?"
"여기 생일 축하 이미지에서 너한테 보내지는 이 장식말야"
"생일 축하 이미지?"
"그래 이 이미지에 불의 모습이 들어 있다고!"
"이 하얗고 예쁜 모습 말인가? 달콤하고?"
"아니 그건 과거 선조들이 만들어낸 고밀도 당분에 대한 세리모니야 케이크이라고"
"그래 고밀도 당분을 만들어낸 건 정말 축하할 일이지 불은 어떤 건데"
"그 케이크 위에 꽂혀있는 막대 말이야"
"오? 이 수많은 막대들이 불이야?"
"아니 그 막대에 불을 만들고 그것을 매년 기리는 게 우리 인간들의 의식이었다고! 서버에 들어오고 나서도 우린 우리도 모르게 이 의식을 하고 있었던 거야!"
"하나,, 둘,,, 셋넷.. 82개의 촛불이 보이는군"
[생일 축하 이벤트 실행: 모사]
"모사! 너는 26개밖에 없네?"
"아 이건 태어난 햇수에 따라 달라지나 봐 이제 분명해지지? 우리는 서버에 들어와서도 불을 숭배하고 있었어"
"그러게 이 영상이 불이었다는 건 조금 소름이다."
"이 초라는 것을 만들어 보려고"
"어디서?"
"레거시 시티에서 만들 거야"
"서버에 관련 정보가 있을 텐데?"
"나도 해봤어 실제와 같은 조건을 실행했더니 온도 한계 초과라면서 금지되더군. 꼭 레거시 시티에서 실행해 볼 계획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