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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un 09. 2023

사내 커피로 회사 거르기

탕비실을 보면 회사가 보인다. 

나름 회사를 10여 년 다니고 이직, 계열 전환의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회사를 보는 기준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실을 본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로비를, 또 어떤 사람은 구내식당을 본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중소기업인데 마당에 개키우면 여지없이 도망치라는 말도 있다. 


나는 이런 기준을 커피로 잡았다. 직장인들에게 커피란 에너지이자, 휴식이자, 소통이며 창의력이다. 출근해서 커피를 내리며 또는 출근해서 회사 앞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서 업무를 시작한다. 동료와 소통을 할 때는 차 한잔을 하자고 한다. 밥을 먹고 나서나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커피를 마신다. 고된 업무를 시작하며 집중할 때 잠시 주위를 환기하며 새로운 각도에서 일을 바라보기 위해 커피 한잔을 청한다. 

이런 커피들이 놓여있는 탕비실을 보면 회사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름 대기업의 IT 회사에서 제조 대기업, 대기업 계열사, 지방 사무소, 해외법인을 떠돌며 체득한 탕비실 철학을 풀어본다. 개인적인 체험이며 개인적인 의견이니 재미로 읽기 바란다. 


1. 구독제 캡슐 머신: 천상계(IT업계, 대기업 우량 계열사)


최신 캡슐 머신이 구비되어 있고 캡슐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직원들은 취향에 따라 에스프레소를 내려 각종 커피를 셀프로 만들어 마신다. 우유 거품기 자동 얼음 기계도 있다. 이런 부유한 회사에서도 캡슐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캡슐 회사에서 아예 회사용 캡슐을 따로 만들어 납품한다.

이런 회사라면 기업문화도 좋고 직원에게 투자도 많이 하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이런 곳에 입사할 수 있다면 무조건 가는 것이 좋다. 수제 커피 도구를 모두 갖추고 내리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커피용품을 갖춘 곳도 있다. 이런 곳은 업무 강도나 문화도 부드러운 이다. 꼭 잡자(하지만 진리의 부바부 사바사)

사실 캡슐은 너무 일회용품 낭비 느낌이라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이 회사를 못 다니고 나왔나 보다 ㅠㅠ


2. 붙박이 고급 에스프레소 기계 & 한정 수량 캡슐 머신: 금수저(제조업 대기업, 우량 중견기업)


원두를 넣고 그때그때 갈아서 내려주는 머신을 층마다 보유하고 있다. 원두가 떨어지면 직원들이 자유롭게 채워 넣을 수 있다. 캡슐이 비싸서 비교가 되긴 하지만 사실 이 정도 원두 머신이 캡슐보다 맛이 떨어지진 않는다고 본다. 물론 캡슐이 다양한 원두 맛을 즐길 수 있지만 직장인들에게 그건 너무 사치가 아닐까? 그리고 회사에서 그렇게 까지 해준다면 대체 나는 얼마나 벌어주고 있는 것이며 회사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걱정이 된다. 

그런 면에서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는 제조업 대기업이 좋은 직장의 적당한 선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곳도 에스프레소 기계 주변으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다면 좋은 회사 당첨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잔, 점심은 조금 일찍 나가서 조금 늦게 들어오며 커피도 뽑아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몇억 대 연봉을 받는 IT 업계가 부럽기도 하지만 여기도 잘 먹고 잘 산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3. 휴대용 캡슐 머신 & 드립 커피 머신 커피는 부서별 / 개인 구매: 현실


슬슬 회사가 가성비를 따진다. 직원들도 커피만 후다닥 내려서 자리에 가져간다. 원두커피 대장을 작성해서 누가 많이 마시는지 체크한다. 점심시간, 시무시간 전에만 직원들이 모여있다가 후다닥 자리로 도망간다. 가끔 지원 부서에서 무엇인가 회사 고충을 상담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슬슬 카페테리아와 탕비실 중에 탕비실이 어울린다. 야근이 많아 직원들의 생활을 위한 용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식을 주는 매대가 있지만 채워지자마자 모두 쟁여서 실물을 보긴 어렵다. 모두가 싫어하는 과자들만 조금씩 남아있다. 


가장 많은 회사가 여기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회사에서 커피를 제공해 주고 직원 복지에 예산을 쏟는 게 어딘가? 실무 능력을 많이 쌓을 수 있다. 버텨보자


4. 공유 카누, 이나영 맥심, 아라비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가는데 이곳은 왜 변할 줄을 모르는가? 카페테리아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직원들이 잘 모른다. 커피믹스는 가격이 싸서 많이 가져가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뭐? 커피믹스 개수를 세는 곳이 있다고? 필자도 경험의 한계가 있다. 믹스 커피 만들어서 담배장에 끌려간다면 이제부터 나는 힘든 직장생활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해야 한다. 직원들이 안전제일 새겨진 잠바를 입고 있을 확률이 높다. 가끔 유별난 직원들이 자기돈 내고 드립커피 머신 캡슐커피 머신을 사다 놓으면 메신저로 뒷담 및 저격의 대상이 된다. 

직원들 쓸데없는 돈 아껴서 월급 많이 준다는 평을 들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직원들 커피 마시는 돈도 아까워하는 회사 거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입장을 가진 회사 일 수 있다. 커리어를 개발해서 점프업 하자. 


5. 인스턴트커피+공유 숟가락


마당에 개 키우는지 확인해 보자. 창문 너머 풍경에 논밭이 있는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혹시 월급이 아니라 녹봉을 받는다면 내가 택한 길이 이런 길이다. 

가끔 공유 숟가락으로 커피를 푸고 젓는데도 사용해서 커피가 숟가락에 떡져 있다. 매우 화가 나지만 개수대의 상황을 보면 내가 저기 청소 당번이 아니라 다행이다. 뭐? 내가 막내라고? 애도를 표한다. 정수기 물은 안 갈아도 되지 않는가? 뭐?.... 여기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6. 중국 회사


커피를 안 마신다. 모두가 녹차 보온병을 들고 있다. 사내에 거대한 찻물 끓이는 기계가 있다. 거기엔 찻잎을 버리는 거름통이 있다. 커피 특히 아이스커피를 마신다면 당신은 너무 튀는 행동을 하고 있다. 홍콩은 오후에 차를 시켜 마시는 문화도 있다. 차의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가끔 껴서 신비한 한약맛을 체험하는 것도 동료들과 어울리는 좋은 방법이다. 


 오늘 하루 따듯한 커피를 받아두고 뜨거울 때 온전히 커피 마시는 데에 썼다면 나는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쓴 글을 읽었다. 커피나 차가 식품이 아닌 문화가 된 것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따듯함에서 오는 풍미와 그 차가 식어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가 동반되는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특유의 문화로 차갑게 얼려서 속 시원하고 개운하게 마신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커피 한잔 식힐 시간도 없이 일한다. 위에서 소개한 어마어마하게 좋은 복지를 갖춘 회사의 직원도 '회사커피'는 싫다며 나가서 이디야 커피를 마시며 회사를 벗어나는 '자유'를 느끼자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듯이 커피는 음료이며 문화이고 업무의 집중이며 휴식과 소통인 다양한 얼굴을 갖는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다. 금요일 오후 유연근무제를 사용해서 드립커피 머신에서 따듯한 커피를 내려놓고 동료들과 환담을 나눌 수 있는 이 회사가 캡슐 커피에 얼음을 띄우고 얼음이 다 녹도록 마시지 못했던 전 회사보다 좋은 이유 것도 그 반증이다. 


우리 커피 한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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