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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카리 Jun 22. 2023

전 직장 사수의 평판조회 전화를 받았다.

내 퇴사 사유 그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좀 쉬었다가 다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전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퇴사했다. 이직 얘기를 쓸 때는 공정해 보이고 싶어서 양쪽 입장에서 썼지만 뭐 8:2 정도로 그의 과실?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맘고생을 하다가 이직할 곳을 정하고 퇴사를 해야 된다는 나 스스로도 누누이 입에 달고 다니던 이직의 원칙도 어기고 더 있다간 정신병이 생길 것 같아 선 퇴사 후 구직 활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새 직장은 전 직장처럼 이름만 꺼내면 다들 알고 여기저기서 벤치마킹을 오는 그런 곳은 아니지만 공기 좋고 사람들 모두 좋은 회사에서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요양하듯 다니다가 문득 그분의 평판조회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 경험에 허풍과 부풀림 없던 일 창조 있던 일의 축소 변형을 했다. 이거 설마 내 얘기 쓴 건가? 하는 분은 그래 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직을 하고 공사장 뷰와 논밭 뷰가 보이는 사무실에서 순박한 사람들과 지내고 있다. 회사 입구에 사장님의 애견인 덕구에게 밥 주는 일만 잘하면 크게 터치도 없고 월급도 잘 나오는 회사다.




사실 그냥 평범한 중견 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래도.. 마당에 개 키우는 회사는 피하길 바란다.


바쁘게 덕구 개밥을 주느라 핸드폰을 확인할 새도 없었는데 벨이 울린다. 전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다. 종종 전화 와서 전회사 사례나 전전회사에서 내가 했던 업무도 물어본다.


전전 회사가 워낙 대학교처럼 분위기가 좋았어서 그때 사람들이랑 개인적으로도 친하고 퇴사 후에도 만나서 놀기도 한다. 정말 좋은 분위기의 회사는 가족 같이 네 것 내 것 구분 없고 술 먹고 도박질 패악질만 부리는 망나니 삼촌 같은 상사가 있는 곳이 아니라 용돈 같은 월급을 주는 회사가 아니라 장학금 같은 월급을 주고 교수님 같은 상사와 학교 동기들 같은 동료들이 있는 곳이다.


"잘 지내죠? 거기서 중책을 맡고 있다고"


"그럼요~ 사장님의 가장 소중한 가족님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하하하"


"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카톡 좀 볼래요?"


"아니 네카라쿠배당토급 직원님이 누추한 저에게도 질문이 있다니요"


[OOO 이 사람 알아요?]


잠시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어지럼증이 왔다. 소중한 국내산 오리와 홍삼을 넣은 반려견 사료를 엎을 뻔했다. 이름만 봐도 혈압이 상승하고 업무상 뭐 잘못한 일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는 그 세 글자였다.


"아... 알죠... 제 전 사수인데요.."


"아 잘됐다. 이분 어때요?"


"음.. 저는 너무 오래돼서 이제 잘 기억이 안 나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니 이분이 어떤 분인지 꼭 알아야 돼서요. 제가 물어봤다는 건 비밀로 해주시고요"


"무슨 일인지 알아야 제가 답변을 해드리죠"


"사실... 이분 OO팀 팀장으로 면접을 보셔서 합격하셨는데 평판 조회 결과가 워낙 갈려서요. 그러다가 이분이랑 같은 회사 다녔다는 게 생각나서요. 그런데 사수였어요?"


"네... 제.. 퇴사 원인..."


" 아 그 정도예요? 어떤데요?"


(페이드 아웃 흥미로운 음악소리)


직장인들 중에 아침에 루틴을 만들어 놓는 사람들이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조금 일찍 출근해서 책상을 정리한다. 그리고 핸드폰의 일정과 책상 달력 일정을 수동 동기화 한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바탕화면 메모장에 적어 둔다. 그리고 일을 처리 할 때마다 바탕 화면에 메모장을 지운다. 다 땠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내 직장 생활의 낙이다. 그 작업을 끝내면 커피를 한잔 내리고 이메일을 읽는 게 내 업무 시작 전의 루틴이다.


워낙 오래 해온 덕에 회사사람들도 내가 커피를 마시고 나서야 제정신이 든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물론 그도 나의 루틴은 고려해 줬다. 출근해서 인사를 하자마자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루틴을 수행하는 동안 계속 그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나름 업무시간 전 후에 터치 하는 상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내 루틴을 방해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 지금 나를 불러서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다이어리에 적는 글씨가 떨린다. 젠장 사실 오늘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모르겠다. 저놈의 시선만 없었으면 어련히 어제 시킨 그 보고서 커피 한잔만 하고 보고 할 텐데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내가 어제 이거 하다가 못 마치고 그냥 집에 간 것을...


커피를 쪼르르 내린다. 등뒤로 시선이 느껴진다.


난 뜨거운 커피를 좋아한다. 후후.. 후,... 후ㅜ루,,,


"이리 와바 어제 그 보고서 다시 보자"


한 모금 마시려다 입술이 뜨거워 다시 땠을 때 그제야 말을 걸었다.


"이거 왜 이렇게 했어?"


"아.. 그거 제 생각에는 B 안이 맞을 것 같아서요."


"너 자료는 제대로 보고 만든 거야? 너 OO 수치 그거 왜 이렇게 높은지 알아?"


"아.. OO 수치요..?? 확인해보고 A안으로 고치겠습니다."


나를 보는 미간이 더 찌푸려진다.


"A안으로? 그럼 너 왜 B안으로 한 거야?"


"아.. 제 생각에는 가장 비용이 절감되는 방안이라고 생각해서요."


"비용 차이가 많이나?"


"아니요. A안이랑 큰 차이는 없습니다. 감당 가능한 수준입니다. A안으로 갈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담당자 아냐?"


"아.. 네 그럼 B안도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고 B안으로 했을 때 리스크도 A안과 비슷합니다."


"너 OO 수치 안 봤지?"


"아.. 그게 뭔지는 아직 확인을 안 했습니다."


"그거 보고 자료 다시 만들어와."


"넵"


자리로 와서 자료를 본다. OO 수치를 확인해보니 역시 큰 의미는 없다. A안 B안 모두 가능한 선이다. 자료를 A안으로 고친다.


오늘도 해야 할 일 포스트잇이 떨어지지 못하고 어제부터 매달린 이 자료 수정을 해야 한다. 업무 관계자들이 전화가 빗발친다. 급한일은 어쩔 수 없이 대응한다.


"자료 다 됐니?"


"아직이요... 수정 중입니다."


"그래... 퇴근 전에는 보자"


또드락 또드락 자료를 고쳐 가져간다.


"자료 한번 살펴봐 주시겠습니까?"


"A안으로 했네?"


"넵 어차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A안으로 하면 비용이 조금 올라가긴 하지만 더 안정성 있는 운영이 가능합니다."


"그럼 왜 처음에 B안으로 했어? 너 OO 수치는 아예 안 봤지?"


"넵 확인했고요. 그 수치 고려했을 때도 둘 다 장단이 있습니다."


"어떤 장단이 있는데?"


블라 블라 설명을 한다. 그가 또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확인해 보라고 한다.

야근하는 분위기는 아니니 일단 접고 내일 보자고 한다. 바탕화면에 메모장이 개수가 더 늘었다.


다시 아침 루틴이 반복된다. 몇 주 동안 자료는 계속 수정 중이고 메모장에 루틴 업무들은 계속 증가한다. 미뤄 뒀던 아무것도 아닌 루틴일들이 터져서 큰일이 된다. 보고서 한 장 더 필요해진다. 나는 어차피 수정할 보고서이니 아예 보고를 안 한다. 일이 닥쳐서 사고가 되면 보고서 수정 없이 일단 처리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업무 협조 전을 협력 부서에 보낸다.


전화가 온다.


"지금 보낸 업무 협조전 그게 맞아요?"


아... 여기도 사수랑 싸운 애구나...


사수는 나한테만 저걸 한 게 아니라 모든 부서를 다 깨고 다녔다. 그의 모토는 "내가 옳다.", "나는 회사를 위해 모든 사항을 점검하겠다.", "내가 납득이 안 가면 임원도 납득 못한다."였다. 그는 용감하고 업무 평정이 좋았기 때문에 윗사람 아랫사람 업무 협조 관계팀 가리지 않고 싸웠다. 그는 많은 경우 승리했다. 워낙 많이 업무를 준비하기도 했고 또 대부분의 담당자들은 나처럼 큰 문제가 없다면 상대방의 의견을 따르려고 한다. 또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옥신각신 하는 것조차 낭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챌린지는 대부분의 경우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그는 항상 성공하는 협상가였고 그와 업무로 문제가 생기고 그를 설득하지 못하면 업무에 열정이 없는 사람이 된다.  윗사람도, 협력관계의 팀원들도, 내 또래의 수많은 직원들도 그와 설득 싸움을 했다.


그리고 내가 전화를 하면 그의 부사수인 나에게 모든 화풀이가 돌아왔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는 그 흔한 업무 융통성 힌트도 주지 않았다. 그랬다간 사수가 그것을 빌미로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업무 협력 없이 여기저기 부딪혀야 했고 뭘 잘못하면 어김없이 경위서를 썼다. 전회사에서는 전화 한 통화와 찾아가서 죄송하다고 하면 끝날 일들이었다.




"너 회사가 동호회니?"


점심시간에 팀원들과 즐거운 커피타임을 가지고 온 내게 사수가 던진 말이었다. 자기는 밥만 같이 먹고 혼자 산책을 떠났다. 이유는 사수가 없어야 우리가 웃는다는 걸 다른 파트리더가 웃으면서 놀렸기 때문이다. 그 파트 리더는 사수에게 업무로 4시간 정도 입씨름을 한 뒤 우리를 멀리한다.


"쟤네 너 남자로 안 봐 오버하지 마"


프로젝트가 끝나고 협력 부서와 회식을 하고 한 말이다. 나는 여초 회사를 다닌 적이 있기 때문에 여 사우들과 수다나 술자리가 두렵지 않다. 한창 부어라 마셔라 소리 지르며 놀고 왔을 때 한 말이다. 그래.... 사수님 어제 건배사 멋지게 하더이다... 위스키에 대해서도 참 많이 배웠습니다. 네네..


나는 그의 5번째 부사수 였다. 나를 그에게 붙여준 팀장님은 한동안 업무를 할 때 자기가 중개를 했었다. 나는 그게 회사의 문화인줄 알았다. 팀장님은 사실 내가 그와 직접 부딪혔을 때 내가 바로 나갈까 봐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어쨌든 사수는 업무 결과가 탁월한 사람이었고 이 프로젝트는 꼭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팀장님은 프로젝트가 시작할 때까지 나를 그에게서 보호했고 프로젝트가 시작하자 보호를 풀었다. 젠장...


이런 상황에 처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아는 것도 모르게 되고 생각지도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항상 주눅 들어 있고 항상 움츠려있다. 점점 팀원들과 대화도 어려워진다. 항상 혼나기 때문이다. 항상 전투준비 태세이기 때문에 에너지소비가 많다. 퇴근 후 친구나 연인 가족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아진다.


내 뒤로도 몇 명의 부사수가 그만두었고 같은 팀 내에 몇 명은 우울증, 불안증에 걸렸다고 한다.




(페이드 인 즐거운 음악)


"업무 잘하시죠... 설득력도 강하시고."


"아 그래요? 그런데 협업이 안된다는 말이 있던데요.."

 

"아 조금 그런 면이 있는데 사실 그 업무 아시잖아요. 어떻게 욕을 안 먹어요. 사실 욕먹었다는 게 그분이 일을 잘한다는 거죠"


"그... 래요? 밑에 사람들이 다 그만뒀다던데... 아까도 퇴사사유라고 안 했어요?"


"사실 힘들긴 하죠 그런데 그 덕분에 많이 배워서 프로젝트 결과가 좋으니 그걸 밑천으로 이직도 하고 하는 거죠. 분명 업무 결과는 좋게 내실 거예요."


나는 그를 추천했다. 왜냐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전전 회사 친구가 늘 고민거리이던 저 포지션은 상사가 범죄자급 빌런이고 3년째 항상 채용 중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이이제이, 새옹지마, 사필귀정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복수를 하려면 강가에 나가서 기다리면 원수의 사체가 흘러온다던 속담도 생각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수님.. 부디 새로운 회사에서 건승하시길 바라며 현회사에서 어쩌다가 옮기시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짐작이 갑니다. 애사심과 자부심이 뛰어나셨는데 애석합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 하하하


빌런 때문에 좋은 회사와 정들었던 동료들을 떠난 모든 이들에게 이글을 바치며 여러분께도 그 빌런의 평판조회가 오기를 그리고 꼭 모든일이 생생하게 기억나셔서 증언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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