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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받으며 떠나는 모로코

[탕헤르]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해준 사람들

by Girliver

탕헤르의 호스텔 옥상에서는 바다 건너 스페인 땅이 보인다. 메디나의 어딘가에서 지그시 이방인을 바라보던 고양이들이나 설탕 듬뿍 넣은 민트티마저 그리울 것 같은 모로코를 오늘 떠난다. 어제 만난 피에르 아저씨, 에스와 함께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배낭을 지고 길을 나선다. 에스는 밤기차로 마라케시로 떠날 예정이라 그녀의 캐리어를 호스텔에 맡기고 피에르 아저씨는 오늘은 탕헤르의 해변에 가고 싶다며, 둘 다 나와 함께 항구에 가 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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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나에서 멀지 않은 탕헤르 항구에 금방 도착한다. 페리 회사가 두 군데라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배낭을 진 내가 힘들다며 고맙게도 피에르 아저씨가 왔다 갔다 해준다. 다음 배는 한 시에 떠난다. 해변에 머물다가 점심이나 먹고 출발하면 그럭저럭 페리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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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아저씨와 에스는 가벼운 차림이지만 나는 배낭을 다 짊어지고 나왔다. 작은 배낭은 에스가 들어주고 나는 큰 배낭을 메고 그들과 탕헤르의 바닷가를 걷는다. 해변 끝 공원까지 걸으려 했는데 피에르 아저씨가 대로로 나가 택시를 잡는다. 배낭을 들어주고 싶다는데 자꾸 내가 거절을 하니까 택시로 이동을 하자는 것이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로코 여대생들을 만난다. 하파는 외국인을 많이 대해 본 듯 친절하고 질문도 많다. 프랑스어를 잘하는 림은 피에르 아저씨와 이야기 삼매경이다. 우리가 항구 근처의 서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싶다고 하니까 괜찮은 곳이 있다며 흔쾌히 거기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택시 타고 왔던 길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되돌아간다.


외국인과의 만남을 반가워하는 하파는 코앞에 보이는 스페인에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파의 말로는 외국 비자받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로코 사람들은 왕은 존경하고 좋아한다고 하파가 말해준다. 2010년 이후 소위 '아랍의 봄'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모로코에서는 시위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자랑처럼 한다. 하파 말고도 다른 지역에서 만난 모로코 사람들에게서도 들었던 말이다. 모로코의 정치현실을 잘 모르지만 외부적으로는 유럽을 향하는 듯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폐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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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파와 림이 데려다준 현지인들의 맛집은 바닷가 근처의 생선 튀김 가게다. 커다란 유리 진열장에 싱싱한 물고기들이 말 그대로 가득하다. 림과 하파는 주문까지 해주고서 작별인사를 한다. 나는 그들이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걸로 알았는데 피에르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림과 하파도 데려다만 주는 것이라며 안녕을 고한다. 한국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상황이지만 프랑스인과 모로코인들의 정서가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곧 떠나야 할 사람이라 그들을 붙잡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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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들어가 손부터 씻는다. 세면대 옆에는 하얀 분말이 접시에 담겨있다. 미심쩍어하면서도 일단 손에 묻혀보니 틀림없는 가루세제다. 어이없어하면서 물로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로 돌아온다. 드디어 홉즈와 콩 수프 조금, 그리고 작은 새우튀김과 엄청난 양의 생선 튀김이 서빙된다. 포크나 스푼 같은 것은 없다. 셋이 먹기엔 과한 양인 데다가 나의 페리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식사를 서둘러 끝낸다.


남은 튀김은 당연히 두고 가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피에르가 튀김을 챙겨 자기 가방에 넣는다. 알뜰도 하시다. 셋이서 다 먹지도 못하는 신선한 생선 튀김이 100디람, 우리 돈 만원이 조금 넘는다. 음식 값을 지불하고 남은 디람은 큰 돈도 아니어서 모로코 여행을 막 시작한 에스에게 다 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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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과 항구는 가까웠지만 시간이 촉박해서 뛰다시피 이미그레이션에 도착한다. 드디어 모로코를 떠날 순간이다. 혼자 쓸쓸한 발걸음을 돌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인 에스와 프랑스인 피에르의 배웅까지 받으며 모로코에서 퇴장하게 되었다. 긴 여행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몸으로 하는 서구식 인사에도 적응이 되어 에스와의 허그와 피에르의 뺨 인사가 정겹게 느껴진다.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내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장면이 된다. 이제부터는 쓸 일이 없는, 감사하다는 의미의 아랍어 "슈크란"이 절로 튀어나온다.


페리가 탕헤르 항구에서 멀어진다. 한국인들과 터키인 아흐멧을 만나 탕헤르에 발을 딛던 그날이 떠오른다. 북아프리카, 무슬림이라는 단어들이 얼마나 생소했는지, 낯선 모로코의 향기가 여행의 권태기(?)에 이른 나에게 얼마나 신선했는지... 다채로운 색감으로 여행자를 매혹시키던 모로코에서 활기를 얻고 떠난다.


한 달 반을 머물렀던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배의 갑판에 선다.

코발트색 지중해에 불어오는 바람이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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