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리파] 지중해 사이의 탕헤르와 타리파
타리파는 스페인의 아름다운 항구도시이자 휴양지다. 길을 물어 정해둔 숙소로 찾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들이 나를 위해 멈추는 것이 무슨 대접이라도 받는 것 같다. 보행자 무시하고 휙휙 달려대던 모로코의 차들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다. 콘도처럼 커다란 호스텔은 건물도 나뉘어 있는데다가 전자식 열쇠라서 덩그러니 큰 건물에서도 카운터의 직원 한 사람뿐 부딪히는 사람이 없다. 스페인 사람들이 모로코에 가는 이유를 알겠다. 환경과 문화가 전혀 다르면서 따뜻하고 물가도 싼 나라가 이렇게 지척에 있다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거의 행운이다.
짐을 풀고 나서도 호스텔에서 아무도 만날 수 없다. 그냥 하루 들렀다 가는 일정이지만 화창한 날씨에 스페인의 거의 최남단 타리파의 해변을 보지 않을 수도 없어서 천천히 거리로 나가본다. 화려한 매장들을 지나 내일 버스를 탈 시외버스 정류장과 시간도 확인하고 빨래를 말리는 말끔한 어느 아파트 풍경도 지나치며 해변으로 나간다.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은 아니라서 관광객이 많지는 않고 계절도 여름이 아니지만 수영을 즐기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운 모래에 발을 파묻고 해변을 걸어보기도 한다. 불과 몇 시간 전 탕헤르에서는 히잡을 두른 젊은 여자와 남자가 경찰에게 잔소리 듣는 것을 목격했다. 피에르 아저씨 말이 모로코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애정행위를 과하게 하면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바다를 지척에 두고 달라도 너무나 다른 풍경들이다.
스페인의 남쪽 끝, 유럽의 최남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타리파에는 로마와 무어의 유적이 남아있다더니 10세기경에 건설되었다는 구스만성(Castillo de Guzmán)이 멀리 보인다. 유적지를 들를 것은 아니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지중해 서부 연안에 부는 강한 동풍을 레반테(Levante)라고 한다. 레반테는 봄과 가을에 지브롤터 해협에서 가장 센 바람이 된다고 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최남단인 이곳은 최고의 윈드 서핑지이기도 하다. 윈드보드를 들고 차에서 내려 우르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유럽의 남단 타리파의 따뜻함, 하얀 백사장, 시골스러운 소박함을 찾아온다. 거기에 이곳으로 불어오는 바람인 레반테를 이용한 윈드서핑을 즐기러 온다. 스페인만을 여행하며 타리파에 들렀다면 이베리아 반도의 끝, 유럽의 최남단이라며 꽤나 감상에 젖었을 텐데, 모로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오늘의 타리파는 그저 거대도시다. 돌이켜보면 내가 생각하는 "끝"은 언제나 끝이 아니었다. 끝이라 생각했던 것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가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도미토리에는 나 말고 두 여자가 있다. 발렌시아(Valencia)에서 왔다는 스페인 여자는 여기서 오래 머물렀는데 내일 발렌시아로 돌아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며 울상이다. 발렌시아도 멋진 도시라고 들었다 하니 그곳에서 삼십 년이 넘게 살면 더 이상 멋지지 않다며, 이곳 타리파가 떠나기 싫을 정도로 너무 좋다는 것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스페인 남부에 많이 온다고 하더니만 또 다른 사람은 핀란드에서 왔다는 열아홉 여학생이다. 그녀도 이곳 타리파 해변을 너무 좋아한다. 나는 타리파가 단순히 지나가는 여정이긴 하지만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는 해준다. 온종일 윈드서핑을 하고 해변에서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시골마을은 그들에게는 천국일 것이다.
호스텔 주방에 내려가 간단히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와이파이를 켠다. 저 바다 건너 모로코의 탕헤르에 있는 에스가 카톡으로 말을 건다. 탕헤르 식당에서 먹다가 남아서 싸가지고 갔던 생선 튀김을 피에르 아저씨가 소스까지 얹어서 요리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낸다. 에스는 오늘 밤 마라케시로 떠나고 피에르는 내일 아침 라바트로 가게 될 것이다. 탕헤르 호스텔의 루프탑에서 보이는 지중해를 떠올리며 예쁜 인테리어의 타리파 호스텔 주방에서 끼니를 때운다. 같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다른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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