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치는 델리의 일요일 풍경
두 번째 인도 여행이지만 델리는 낯설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뭄바이 인 델리 아웃 일정이었다. 덥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맥그로드간즈에서 밤버스를 타고 아침 도착 후 바로 델리 공항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델리를 스쳐 지나갔었다. 이번 두 번째 여행에서도 델리는 찬밥 신세다. 온갖 매혹적인 인도의 도시들 사이에서 또 뒷전이 되고 만다. 이번 여행은 자이살메르에서 낙타사파리를 하고 바라나시에서 연말을 보낸 후 남인도를 주로 여행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쨌든 편도항공권으로 입국한 도시는 델리, 자이살메르에 가기 위해 이미 예매한 조드푸르행 기차표는 오늘 밤 출발이다. 겨우 하루 동안 델리를 볼 시간이 생긴다.
어젯밤 사람들로 가득했던 거리는 아침이 되자 고요함 속에 하루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국에서 맞이하는 낯선 아침은 싱그런 설렘과 알싸한 흥분, 야릇한 어색함을 오묘하게 조합한다. 그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내겐 매혹이다.
델리의 겨울은 생각보다 춥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콧물을 훌쩍이게 한다. 장사를 준비하는 노점들을 구경하며 아침 산책을 한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생강 짜이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인도가 속으로 들어오는 듯 실감 난다. 계란을 쌓아놓고 만드는 토스트로 인도인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여기저기 걷다가 커피도 한잔 마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아직 불편하다. 마치 남의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색하다. 짧지 않은 여행의 첫 발걸음을 디딘 도시인데 델리를 대하는 마음이 생경하다. 아직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해 어색하게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빠하르간지 끝까지 걸어와서 어제 헤매고 다닌 뉴델리역에도 다시 가 본다. 아침부터 기차를 타거나 표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고 릭샤들도 어제와 다름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어제 오후보다는 확실히 고요한 아침이다. 역으로 들어가 메트로로 향해 2층으로 간다. ‘외국인 전용 창구(International Tourist Bereau)’라는 선명한 간판이 보인다. 어제 그렇게 찾아 헤매던 곳이다. 당장 급한 일은 해결되어 특별한 문의사항은 없지만 이후의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안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더 쾌적하고 찾기 쉽고 친절하다. 어제 여기에 바로 올 수 있었다면 그 생고생은 안 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어제 델리 도착 후의 나는 바보였다.
오던 길을 다시 걸어 숙소로 간다. 그 사이 문 연 가게도 노점도 사람들도 많아졌다. 숙소 체크아웃 후 배낭을 짊어지고 올드델리 역으로 향한다. 메트로를 타는 일도, 배낭 검색도, 메트로에서 내려 올드델리 역으로 가는 길도 어제 하루 단련되었을 뿐임에도 익숙해지니 어렵지 않다. 오늘 야간기차를 타야 하는 올드델리 역 클락룸에 배낭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길을 나선다.
찬드니촉이라는 이 재래시장은 인도답게 붐비고 있다. 작은 건물이 아니라 대로를 끼고 골목이 이어진 큰 시장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릭샤들이 우글거리는 대로와 그 옆 인도에도 사람이 바글거리고 시장 골목에도 역시 많다. 늘어선 가게, 노점상, 손님과 여행자, 거기에 구걸하는 사람, 그냥 지나가는 사람까지, 사람의 파도에 휩쓸리는 기분이다.
노점의 과일주스, 땅콩으로 버무린 엿, 뻥튀기 같은 군것질거리들을 사 먹고 케이크 가게들을 들락거리며 찬드니촉의 일요일을 즐긴다. 온갖 물건들을 파는 시장을 기웃거리는 내 모습도, 무게를 저울로 재서 가격을 매기는 엿장수 할아버지도 모두 신기하게 느껴진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저씨 셋이 능률적으로 만들어내는 노점 토스트도 너무 맛있다. 한국 떠난 지 3일째, 인도의 수도를 걷고 있는 이 순간이 믿어지지 않는다.
찬드니촉을 지나 걷다 보니 구름에 가려 뿌연 하늘 아래로 라호르게이트(Lahore Gate)가 보인다. 바로 붉은성(Red Port)의 입구다. 마침 일요일이라 아이들 데리고 나온 인도인들이 너무 많다. 광장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자한의 작품이다. 6년 전 아그라와 타지마할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권력도 사랑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반추하며 붉은 성을 돌아본다.
붉은성에도 아기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가족단위의 인도인들이 많다. 딱 우리나라 일요일 관광지 풍경이다. 델리 근교 사람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먼 곳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앞에서 쑥덕쑥덕하더니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고 한다. 지금 여행중이고 여기선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생활인이 아닌 여행자로서의 나를 인식하게 된다. 디지털카메라는 아니어도 작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에서 6년 전과는 다른 인도를 보는 것 같아 괜히 흐뭇한 기분도 든다. 자신들은 델리 사람이 아니라 먼 지역에서 여행 왔다는 이 젊은이들과 유쾌하게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작은 액정 속에 머물게 될 내 모습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찬드니촉과 붉은성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문다. 밤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올드델리 역으로 간다. 역 앞 노점에서 과일을 사서 작은 배낭에 챙긴다. 어두워지는 역에서도 사진을 함께 찍고 싶어 하는 네팔 학생들이 몰려온다. 여기가 인도가 아니라면 어디서 이런 환대를 받을까?
기차가 도착한다. 오랜만에 다시 오르는 슬리퍼(SL) 기차에 침낭을 펴고 눕는다. 규칙적인 덜컹거림이 음악처럼 느껴진다. 기차는 인도 대륙의 서쪽으로 밤을 향해 달린다. 아직은 이 여행이 낯설고 온전히 즐기지는 못하고 있지만, 상상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했던 여행이라는 세계가 실현되는 중임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