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갠지스에 닿을 수 있을까?

작별의 하루, 바라나시를 떠남

by Girliver

날마다 시끌벅적하던 호텔 안이 휑하다. 가쯔상은 새벽에 떠났고 료만 부스스한 얼굴로 호텔 옥상에서 요가를 배우고 있다. 운동을 마친 료와 호텔 직원 니키와 갠지스를 내려다 보며 아침식사를 한다. 가쯔상은 부다가야로, 케이는 콜카타로 떠났다. 료는 델리로 가서 도쿄로 돌아가고 나는 오늘 밤기차로 남인도 첸나이로 떠난다.


남인도로 간다니까 듣고 있던 호텔 직원 니키가 반색을 한다. 그는 남인도의 안주나 출신이다. 고아라는 해변도시가 좋다며 추천해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6년 전에 상영 중이던 "Ta Ra Ram Pam"이라는 인도영화 이야기에 아침부터 박장대소하게 된다. 예전에 인도 와서 본 영화를 다시 인도에서 인도 사람과 함께 추억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료는 개를 쓰다듬으며 부러운 듯 대화를 듣고 있다. 호텔 주인이 키우는 갈루라는 개다. "갈루"하고 부르면 헉헉거리며 다가오는 귀여운 녀석에게도 정이 들었는데 이제 다들 가는 걸 녀석은 알까? 명색이 호텔 개이니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반길 줄 아는 것인가? 니키도 료도 나도 왠지 쓸쓸해져서는 자꾸 애꿎은 갈루만 부르게 된다.


첸나이로 가는 기차는 무갈사라이역에서 오후 11시 30분 출발이다. 오전 11시 30분에 체크아웃해야 하니 12시간이 남는다. 인도를 떠나는 료는 기념품을 사러 가고 나는 짐을 프런트에 맡기고 고돌리아 근처의 영화관에 간다. 그즈음 가장 인기 있는 영화 "둠3"를 혼자 본다. 스릴러+액션+멜로+형제애+노래+댄스가 버무려진 인도영화다운 영화다. 인도영화는 힌디를 몰라도 재미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서너 시간이 획 지나갔다.

고돌리아의 사이클 릭샤들 사이로 걷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호텔로 가서 료를 만나 릭샤 타고 떠나는 그를 배웅한다. 오토릭샤에 오르는 그의 사진을 찍어 주었더니 너무 좋아하며 페이스북에 꼭 올려달란다. 바라나시를 떠올릴 때면 잘생기고 천진난만한 료도 함께 생각날 것이다. 료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호텔 직원 니키에게 이렇게 사람들이 떠날 땐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본다. 니키는 담배를 입에 물며 쓸쓸한 얼굴로 그게 자신의 일이라 괜찮다고 한다. 하긴 호텔은 사람이 왔다가 떠나가는 곳이고 그에겐 그것이 일상이다. 그러나 오늘 그는 괜찮지 않아 보인다. 익숙한 사람에게도 이별은 쉽지 않다.


오후 5시쯤 되어 다시 호텔에 도착한다. 기차는 11시 반이고 7시쯤 가트에서 구두와 게리를 만나 역으로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시간이 또 남는다. 할 수없이 짐을 맡긴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데 한국어 상표가 달린 배낭 두 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호텔에 일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나를 "코리안"이라 부르던 직원이 달려와서 해주는 말이, 한국인 두 명이 도착했다는 거다. 그 한국 배낭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60세 노부부셨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며 자녀들이 걱정한다고 연락해야 한다는 말씀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말하는 젊은 여행자와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난다. 네팔을 거쳐 인도로 배낭여행 오신 멋진 노부부와 한 시간 동안 폭풍 수다를 떨었다.

7시가 되어 배낭을 짊어지고 가트로 간다. 이미 정이 든 호텔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노부부께 잘해드리라고 당부를 하고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이별이 서투른 나는 마음이 찡해온다.


가트에 나가는 길목에는 거기서 늘 호객을 하던 구두가 짜이 노점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내가 가게 될 무갈 사라이 역 가는 길이 멀고 여행자 혼자 가기엔 위험하다고 걱정했더니, 구두와 게리가 흔쾌히 같이 가주기로 한 것이다. 가트 계단에서 뱃사공 구두가 사주는 짜이를 마신다. 한참을 계단에 앉았다가 게리가 와서 보트로 옮겨 앉아 인도 사람과 한국사람, 여행자와 현지인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에서 일하며 공부하고 싶다는 가난한 보트맨들의 소망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나는 입을 다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그 사이에 찰랑거리는 갠지스의 물소리가 귀에 와 닿는다. 바라나시라는 이 혼돈 속의 도시가 그리워질 거라고 왜 나는 확신하고 있을까? 다시 갠지스에 닿을 수는 있을까?

깜깜해진 가트에서 거리로 나와 무갈 사라이 역으로 가는 오토릭샤를 잡는다. 인적 많지 않은 컴컴한 길을 사오십분 달린다. 게리와 구두가 없었으면 아마 낮에 일찌감치 역으로 가서 시간만 때웠을 것이라 더욱 고맙다. 드디어 역에 도착한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다시 어두워진 거리를 되짚어 가트로 돌아가야 하는 가난한 보트맨에게 내가 해줄 일이 별로 없다. 돌아가는 그들의 차비라며 오백 루피짜리 지폐를 꺼낸다. 한사코 안 받으려 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이게 한국식 감사인사라고 생각하라며 돈을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그들은 아마 릭샤를 타지 않을 것이다. 오백 루피는 그들에게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밖에 고마움을 전할 수 없는 상황이 싫기도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라도 그들의 선의에 감사를 표할 수 있음이 다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혼자다. 호흡을 가다듬고 역 안으로 들어가 늘 하던 대로 기차 번호를 확인하고 웨이팅 룸을 찾는다. 늦은 시각 출발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많은 인도인들은 아예 바닥에 자리를 펴고 누워 있다. 그러나 이별의 아쉬움은 생리현상을 이기지 못한다. 용변이 너무 급해져서 화장실에 들어간다. 작은 세면대에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넓은 화장실 구석에 변기만 하나 달랑 놓여있다. 그냥 멍하니 둘러보는데 통통한 생쥐가 한 구석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으악!"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쏟아진다. 하지만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 참을 수가 없다. 큰 배낭을 등에 지고 작은 배낭은 앞에 매고 구석의 생쥐를 노려보며 용변을 본다. 다행히 생쥐는 일을 다 마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얼른 화장실을 나와 플랫폼으로 간다. 그제야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외국인 여행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것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때로는 여행의 묘미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 나에겐 백배의 긴장일 뿐이다.

바라나시의 까만 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들과 함께 기차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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