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겐 낭만, 현지인에게는 생활
가트의 아침 풍경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평상에 대나무 파라솔을 세워놓고 힌두교도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사제들이다. 그들은 축복을 빌어주고 양미간에 티카도 그려준다. (힌두교도들은 아침마다 이마에 티카라는 표식을 그려 넣는다)
그중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6년 전 바라나시에 왔을 때 아는 체하고 지낸 바바다. 세월이 흐른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오히려 더 깔끔해진 모습이다. 인도가 변한 만큼 그의 삶의 질도 나아진 듯하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전에는 그의 아들이 곁에 있었는데 지금 그 옆의 아기는 손자라고 한다. 늘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곳이라서인지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허허 웃으며 하는 말이, 뿌자를 해 주겠다는 거다. 돈이 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흔쾌히 응해본다.
나와 가족의 이름을 적으라며 손때가 반질한 작은 노트를 내민다. 이름을 모두 적어놓자 가까운 강가로 데리고 나가 갠지스의 성수를 손에 적시게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내 머리에 손을 얹은 그가 힌디로 축복을 내리기 시작한다. 가족의 무사건강을 빌어주었을 긴 주문(?)이 끝난다. 경건한 의식은 이마에 티카를 찍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새해 첫날 아침, 그의 축복은 어느 때보다 정성스러웠고 나는 정말로 영혼이 정화된 기분이 들었다. 백 루피를 건네며 고맙다는 인사를 던지자 그가 한 마디를 한다.
“You are my friend, not guest."
순간, 머릿속에 종이 울린다. 그는 6년 전 뜨거웠던 사월 어느 날 그의 파라솔 아래 앉았던 내게 했던 그 말을 똑같은 표정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그 역시 딱 그만큼의 영어만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6년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너무 감동받아 그 말 때문에라도 다시 바라나시에 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같은 멘트를 같은 사람이 앵무새처럼 반복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누구에게나 날리는 형식적인 말이었다는 생각에 예전의 어설픈 감동이 머쓱해진다. 인도는 사람을 각성하게 하는 곳은 맞다. 이렇게 그와, 또 바라나시와 작별하는 것인가?
나에게 바라나시는 죽음을 대면하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적인 도시지만, 그에게 이곳은 생활의 터전일 뿐이다. 여행자를 객이 아니라 친구로 대하는 그의 마음은 진심일 수도 있다. 그 말을 듣는 나의 마음이 일으킨 파문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행자의 눈과 현지인의 시각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뜬금없는 상황에서 되뇌게 된다.
힌두식으로 새해 의식(?)을 치르고 인도인처럼 이마에 빨간 티카를 칠하고 가트를 걷는다. 정성 어린 축복을 받고 가족들의 안녕까지 빌었으니 새해는 희망의 한 해가 될 게 뻔하다는 데 생각이 닿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여행이란 장님이 코끼리 만지고 지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코끼리는 맞는데 코인지 다리인지 확신이 없다. 코끼리라는 실체를 맞닥뜨려 보았다는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한 번 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을 것들 천지다. 나그네의 환상을 그렇게 한 번씩 하얗게 날려버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꿈을 꾸고 몽상을 하고 나의 시야에 보이는 것들로 보이지 않는 이면을 추정하고 임의로 해석하면서, 여행은 계속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갠지스는 수천 년을 그곳에 흘러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