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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Sep 04. 2019

저녁밥

자취 십 년 차, 혼밥러가 그리운 것은




 독립은 십여 년.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는 15년이 훌쩍 지났다.

 혼자 밥을 먹는 일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저녁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뇌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온다. '밥을 먹는다'라는 단어보다 '해결해야'한다니 내겐 이제 저녁밥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렸나 싶어 마음 한편이 씁쓸해진다.


 배달을 하거나, 도시락을 사 오거나,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가끔 요리도 하지만 언제나 먹는다는 행위에만 집중할 뿐 내게 집에서 먹는 저녁밥은 그저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서 그치고 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퇴근한 날에는 끼니를 거를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다고 밥을 굶으면 기운이 나질 않아 어떻게든 속을 든든하게 채우는데도 가슴 한편에 드는 공허함은 '먹는다'는 1차적인 행위로는 채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월요일에는 밥을 차리는 것도, 배달을 시키는 것도 힘들어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한 시간 내도록 고민했다. 먹어야겠다는 단어 외에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집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다. 포장할 것이냐는 사장님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홀로 덩그러니 방 안에서 떡볶이를 펼쳐 놓은 채 먹는 내 모습이 달갑지 않았다. 먹고 가겠다고 하자 먹고 싶은 만큼 알아서 떠먹고 다 먹은 후에 계산을 하라고 했다. 작은 그릇에 떡볶이 서너 개를 주워 담았다.


 점포 처마 아래로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리는 분식집 가판대, 나처럼 혼자 떡볶이를 먹는 사람들이 서너 명 서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먹는 사람, 단골인지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먹는 사람. 어떤 말도 오가진 않지만 집에서 먹는 것과는 다르게 '대화'가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집으로 향하는 내도록 비가 쉴 새 없이 내렸다.


 바람조차 없는 저녁, 가로등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비는 올곧게 사뿐히 별처럼 지상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지나치는 집집마다 밥 짓는 내음이 젖은 공기 사이로 스며든다. 퇴근한 누군가를 맞으며 가족이 차려주는 밥상일까, 아니면 퇴근한 누군가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밥상일까. 또는 부지런한 어느 누군가가 자신을 위한 밥상을 차릴 수도 있겠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득히 먼 기억에 사무쳐있는 그리운 계란말이의 고소한 냄새, 도마를 두드리는 경쾌한 소리, 압력밥솥의 증기가 춤추는 소리. 가족의 재잘거림이 오갔던 저녁 밥상.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따뜻한 밥에 국 한 숟가락을 떠 넣으면 위로가 되었던 온기로 가득한 시간. 매일이 아니더라도 가슴에 비가 스며드는 날만큼은 나도 온기 가득한 밥상을 받아 보았으면. 그러나 그런 온기를 바라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원룸촌의 쓸쓸한 골목.


 굳게 닫힌 철문을 열면 퀭한 어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방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 작은 아지트를 꾸미듯 신이 나서 린넨 테이블과 꽃, 캔들로 장식해 놓은 나의 작은 식탁. 하루를 내려놓는 긴 한숨과 함께 의자에 앉아 멍하니 식탁을 바라보니 이제야 알겠다.


 내가 그리워한 것은 밥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지친 마음을 안고 퇴근했을 때, 어두컴컴한 방이 아닌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주며 안아줄 엄마가 있었으면 했던 작은 소망을 매일 같이 품고 있었다는 것을. 전화조차 할 수 없는 이런 날,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등으로 양 눈을 비벼댄다.


 늦여름, 지독한 가을장마가 내 마음까지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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