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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Sep 02. 2019

여름이야기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 사이에서

 여름 이야기는 여름이 지나야 비로소 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면서 8일 30일, 31일을 마지막 여름 바람에 실어 보냈다. 


 8월 마지막 주, 박영준 질문술사님을 통해서 알게 된 계절 돌아보기를 동료 강사들과 함께 할 기회가 생겼다.



 나와 동료들의 거리는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해서 솔직한 마음까지는 다 써 내려가진 못했지만 혼자만의 여름이 아닌 함께한 여름을 돌아보는 이점도 있었다. 각자의 여름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채로운 시간을 보내왔던가. 


 지난 6월, 여름을 맞이하면서 썼던 글을 돌이켜 보면 쓸쓸히 봄을 보내며 여름 속에 젖어들었는데, 가을은 또다시 성큼 내 앞에 다가와 문을 두드린다. 


 2학기는 벌써 시작해서 8월의 마지막 날엔 온종일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귀가 후, 두 달간 미루어 두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달리는 내내 두 뺨을 스치는 바람에는 더 이상 여름의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젖은 흙내음과 크게 자란 나무와 잡초가 토해낸 숨결이 뒤섞인 바람은 히말라야 산 중턱의 바람을 연상하게 했다. 한낮에 머물러 있던 여름도 이젠 열기를 잃었다. 풀벌레 소리가 더욱 커지는 건 여름이 떠나가고, 가을이 오기 때문에. 이별과 만남을 함께 노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여름은 온통 로마와 토스카나, 피렌체로 도배되어 있었다. 기대 없이 시작했던 여행은 귀국 후에도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여행이 끝난 지 약 석 달이 되어가는데도 가슴이 떨리게 만들었던 판테온의 광명 아래 서 있는 것만 같다. 



 그 빛의 영향일까. 정신없이 바빴던 6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쳐내면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성적표를 받았다. 나는 종종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곤 하는데, 그 속의 나는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도 잘 치는 우등생이다.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미련 때문에 이런 꿈을 꾸겠거니, 그래서 다시 시작한 공부인데 시험을 치고 학위를 따기 위한 공부가 되어버렸다. 성적이 잘 나온 것은 순전히 시험 치는 요령과 수업 짜는 요령이 생긴 탓이다. 토요일, 양조위를 닮은 교수님의 마케팅 조사 수업을 재수강으로 들으면서 배우는 기쁨을 느꼈다. 나도 강의를 하는 사람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강의식으로 6시간을 풀어나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교수님의 역량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수업을 끝내고 학교를 걸어 나오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여유 시간이 일상에서 주어진다면 깊게 공부할 수 있을까? 일을 잠시 쉬고 공부에 전념을 해 볼까? 고개를 저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 한 들 공부에 몰입하지 못할 성격이다. 직장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2학기 수강신청을 하면서 총 21학점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래도 올해 졸업은 못한다. 구멍 난 학점을 메꾸기 위해 프라임칼리지로 계절학기를 신청했지만, 온라인으로 학습하기가 영 쉽지 않다. 과제를 하는 것 외에 공부를 하지 않았고, 더위를 핑계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어디 책뿐이겠는가. 날씨를 탓하며 운동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주말엔 집에 드러눕기 일쑤였다. 주말에 집에 있는 걸 가장 한심하게 생각했던 내가 침대 위에서 한 발짝도 내려오지 않는 날이 있다니.


그래. 난 사실 게으른 사람이다. 바쁘게 살아온 것은 순전히 열등감 때문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는 날이 많을수록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느낀 건, 아무리 쫓아가고 뛰어도 그들과 나의 간격을 좁힐 수 없다는 것. 나와 당신들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좁히려 해도 좁힐 수가 없다는 것. 그걸 깨달은 건 한 교육에서 치열하게 애쓰는 이들을 만난 후였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자신의 모습을 잃은 채 '내가 누구인지'를 잊고, '타인이 바라는 나'를 기대한다. 타인의 인정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과도 같아서 이미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데가 없는데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우게 된다.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꾸 쏟아붓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건 자화상이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속에서 나를 보고, 부서지고 흩어지며 성장한다.



지치는 관계만 있었던 건 아니다. 얼굴 한 가득 행복을 주는 만남과 함께라는 것도 분명 존재했다. 단지, 힘든 관계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 뿐... 


 올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나를 지치게 만든 '사람' 그리고 '관계'. 여름 내도록 많은 교육과 모임으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왔다. 함께하는 기쁨도 느꼈지만, 동시에 깊은 갈등과 해소되지 않는 에너지의 고갈에 시달렸다. 관계가 취약하다는 걸 느낀 몇 년간, 관계에 있어서 애써 노력한다고 생각했으나 중력의 힘을 무시할 순 없었나 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의 다툼에서 서로가 큰 상처를 받았고, 갈등의 골이 깊었던 동료와 여전히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나는 배웠으니까, 넓은 아량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릇이 넓은 사람인 척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나. 



 사소한 말 한마디가 트리거가 되어서 서로가 나쁜 감정을 모두 서로에게 쏘아댔다. 내가 쏜 총성이 그대로 내게로 돌아왔다. 가까운 시일 내에 동시에 발현된 사건은 상처를 추스르고 아물게 하는 시간마저도 가지지 못했다. 햇살이 뜨겁게 내려쬐던 어느 날, 나는 친구를 만난 후 범어사에 내려달라고 했고 인적 드문 시간에 홀로 팔상전에 앉아 있었다. 



 선풍기도 없이 온전히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바람만으로 이마의 땀을 식히면서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한눈에 담은 채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억울한 마음이 분노와 슬픔으로 새어 나오면 바람은 내 가슴에 스며들었다. 고요함과 평온이 가슴속에 내려앉으며 나와 타인의 세계가 얼마나 먼지, 그리고 그 연결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맺혀있는지 느끼면서 나도 그대들도 불안정한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느껴지는 것을 실천한다는 건 쉽지 않다. 내 안에 있는 트리거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그리고 타인이 쏘아낸 방아쇠에서 오는 고통을 나는 어떻게 가라 앉히고 평온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늘 나를 돌아보게 해 주시는 담당님의 멋진 글귀 선물. 이렇게 내 주변에는 과분할 만큼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다... 관계는 다 나의 문제인 것인가.



 언제나 모순적인 삶이다. 내 마음을 다스렸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관계의 문제는 제자리걸음이다. 나아가다가 상처 받고 돌아오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다. 


 가득 채우기만 했던, 그래서 서로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많은 다툼이 일어났던 여름. 

 더욱 아쉽지만, 부질없지 않은 이유는 그릇의 한계를 느끼고, 그릇의 크기를 키워 나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여름. 나는 어떤 열매를 품은 꽃을 피웠는가. 




 열린 창문 사이로 풀벌레의 노래와 더불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덧 나는 가을에 발을 내디뎠다. 순식간에 또다시 가을은 가고 겨울이 찾아오겠지. 

 낙엽이 내 발 앞에 소복이 쌓이기 전, 나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 그리고 열매가 지고 나면 어떤 씨앗을 품은 새해를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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