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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Apr 08. 2020

어머니들의 밥상

따뜻한 집밥에 담긴 마음


 나는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다. 밥을 차리고 요리를 하기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거나 외식을 택한다. 삼시세끼를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겁을 했다. 요리 레시피는 독해가 안 된다. 장면을 봐도 이해가 안된다. 우리 가족은 나를 빼고 모두 손맛이 뛰어나고 요리도 잘하는 편이다. 요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다가 믹서기 뚜껑도 안 닫고 고추 양념을 갈다가 집안을 고춧가루로 초토화를 만들었다. 난 주방 출입 금지다.


 그래서일까. 내겐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없다. 맛집을 찾는데 관심도 없고 크게 비위가 상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 내가 고집하는 건 단 하나다. 바로 갓 지은 찰진 밥이다. 요리도 못하면서 감히 새 밥을 바란다고 핀잔을 듣지만- 내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건 시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



 난 청소년 시절 친구들에게서 밥을 많이 얻어먹었다. 집이 가난해지고 부모님이 일찍 결별하면서부터 집에서 밥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잘 되질 않았다. 엄마 흉내를 내는 것이 엄마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드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집에도 잘 들어가질 않았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늘 주눅이 든 상태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울 때면 친구 하나가 날 자기 집으로 종종 데려갔다. 그러면 친구 어머니는 내가 밥이라도 굶을까 걱정하셨는지 꼭 갓 한 밥을 챙겨 주셨다.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 자란 은정이라는 친구의 어머니도 나를 꼭 밥을 먹여서 보냈다. 저녁이 되면 함께 밥 차리는 걸 돕게 하셨고, 나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서린 밥상에 그녀의 가족들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십 대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친척과 친구들이 등을 돌렸다. 또 누가 내게서 등을 돌릴지 몰라 잔뜩 세상을 경계하고 살던 내게 어머니들께서는 늘 따뜻한 밥으로 날 응원하곤 하셨다. 새하얀 윤기가 흐르는 찰진 밥알은 서로 뒤엉켜 있었고, 된장국의 재료는 서로 뒤섞여 있었다.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면 이방인에서 식구가 된 기분이었다.


예전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태진아가 친구를 찾으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가난한 어린 시절, 자신의 곯던 배를 채워주고 밥을 챙겨주었던 친구. 그때의 밥은 분명 그에게 허기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공허한 자신의 마음까지 채워주는 영혼의 양식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어머니들의 밥상에 감사했던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사람에게서 거절당할 거라 의심하며 두려워하는 내게, 엄마의 부재가 너무도 컸던 내게, 어머니들의 밥상은 유일한 온기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결혼식을 올리면서 친구의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참석하지 못하신 분께선 친구를 통해 소식을 전하셨다.




 크면서 얼마나 힘든 시기를 보냈냐고, 잘 커줘서 고맙고 장하다, 행복하게 잘 살아달라는 말씀에 가장 힘든 시간 내 공허한 마음을 다독여 주셨던 따스한 밥상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세상을 향해 끝까지 원망의 시선을 던지지 않고 일어서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머니들의 따스한 밥에 실린 사랑과 응원 덕분일 것이다.


 이방인을 식구로 맞이해 주신 그 마음이 오늘의 나를 살게 했다. 그리고 감사한 축복의 날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나도 누군가에게 아무 대가 없이 오로지 사랑으로 가득한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되길. 어머니들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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