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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Mar 02. 2020

2020년의 2월은 너무도 길었다

삭막했던 겨울의 끝, 이제는 녹아내리길.




31일까지 달력을 꽉꽉 채웠던 1월보다 2월은 너무 길었다. 

28일까지만 있었던 다른 해보다 단 하루가 길 뿐인데,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딘 느낌이다. (미안해 2월)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극적으로 우리가 살게 될 집을 계약하고, 

유쾌하지 않았던 늦은 상견례를 아슬아슬하게 마치고,

흔히 예비부부가 겪는 경제권 문제로 지독하게 싸우고 상처 받고 울었다.


그리고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다시피 나타난 전염병. 

청첩장은 박스에 담겨서 구석에 처박혀 버렸고, 즐거워야 할 결혼 준비는 비난과 수군거림 속에서 온전히 가족들이 걱정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전염병으로 강의는 죄다 취소가 돼서 갑자기 붕 떠버렸고

답정너인 최강 보스의 등장으로 일에 대한 의욕마저도 깎여 있었다. 


코로나 19가 이슈가 되면서 상견례 때 걸린 감기가 괜히 더 악화되는 기분이고

매일매일 열을 재면서 내가 확진자는 아닌지 의심하는 것도 지쳐갔다.


빙빙 돌려가며 결혼식을 피하는 친구들(이해는 한다만)

속상해하는 부모님, 힘들어하는 남자 친구를 보면서 내 선택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닌 건가 

자책도 하고 원망도 하면서 마음이 유독 그 어떤 겨울보다 차갑게 얼어붙었다. 


문을 듣는 가게들, 

치솟는 마스크와 소독제의 가격,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고, 원망으로 가득한 시선 속에서 

2월은 모두에게 너무도 힘든 계절이었다.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그러나 봄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찾아왔다.

길가에 핀 매화를 마주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 걸 알아챘다. 


흩날리는 매화 꽃잎 아래 우두커니 서서 내 마음이 스르르 녹고 있었다. 


불안을 증식시키는 매스컴 사이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다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들을 조금씩 주고받고, 

함께 이겨내자고 두 손을 꼭 잡으면서 잘 보내왔다. 


너무도 아팠던 2월이지만 잘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좀 더 강한 내가 되라고 세상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삶 속으로 떠밀어 버린다. 

그것은 좌절하고 주저앉으라는 말이 아니다.

여태 보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고 일어서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다.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던- 친구의 말처럼

이제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꽃을 피워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2월, 지독하게 길었다. 지독하게 추웠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봄이 온다. 

모두가 하늘에 핀 꽃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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