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후보자들의 에세이에서 알게 된 몇 가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예비 승진자 교육에서 참석자들에게 오시기 전 드리는 과제가 있다.
고객과의 대화가 주된 업무인 고객센터는 ‘말’이라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 고객과의 대화에 대한 고민은 누구보다 깊다.
반면에, 함께 뒤엉켜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최근에서야 그 중요성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몇 년에 걸쳐 코칭이나 대화법 등에 대한 교육을 사내에서도 많이 진행했다.
다행이게도 리더를 앞둔 분들에게 사내 대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과정이 생겼고, 나는 오시는 분들이 평소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했다.
성공한 대화법도 좋지만,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할 때 불편함을 느꼈는지 파악해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다 몇 가지 알게 된 점이 있다.
이 과제를 처음 드렸을 땐, 불편한 대화를 야기한 상대방은 주로 상사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신입사원이나 직속 후배와 나누는 대화에서 더 큰 불편함을 느꼈다. 후배에게 이런저런 지적을 하는 위치에 이르렀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싫어했던 상사처럼 꼰대가 되어간다는 찝찝함을 느낀다는 것.
내 예상 범주에 계신 분들은(상사에게서 대화의 불편함을 느끼는) 리더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관리직을 병행하고 계셨다. 상사와의 대화가 불편했던 건 아무래도 좀 더 상사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잦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상담사 때와 달리 다루는 문제의 무게와 책임이 무겁다 보니 대부분 예민한 상태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과제에서는 후배와 대화를 나눌 땐 주로 내가 말하는 입장이라면, 상사와 대화를 할 때는 주로 듣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말할 것도 없이 실제로 중간관리자가 되면 이 두 가지 모습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잦고, 그러다 보니 ‘대화의 정체성’에서 극심한 혼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과제가 나와 그분들이 처음 만나기 전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내주신 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
요청드린건 불편한 대화 상황에 대한 기술이었으나, 실패를 극복한 영웅담을 제출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써 주시길 몇 번 권유하긴 했지만 내가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는 자책이 든다. 대부분의 플롯이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고, 그로 인해서 모든 것이 개선되었다는 점인데, 이 과제 또한 자신의 인성이나 리더십을 평가받는다는 프레임이 작용한 것 같다. 결국 그 분들이 선택한 건 대화가 아닌 자신이 가진 리더십 자질에 대한 좋은 평가였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조급함이 대화의 시도마저 차단하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그러나 이런 프레임과 나의 어설픈 대화 시도 속에서도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자신을 노출한 분들이 계신다. 그분들에게서는 진정성 리더십을 잘 발휘하실 멋진 가능성이 보인다. 안전하지 않은 조직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기가 정말 쉽지 않을 텐데, 자신의 실패를 진솔하게 담아낸 서툰 문장에서 나는 겸허해진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언어의 유려함이 아니다. 진정성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단단한 용기다. 그리고 그건 단연 리더의 대화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내가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