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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Apr 29. 2021

그냥 별이 좋아요.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9살 때인가, 별자리 이야기(흥신/이연수 엮음) 책에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접했다. 


 맙소사 하늘에 떠 있는 건 그냥 별, 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별과 달에 이야기가 있다니. 나는 그 수많은 이야기와 뒤얽혀 살면서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니!

손전등을 들고 매일 옥상에서 그 책을 펼치고 별자리를 맞춰보겠다며 끙끙거렸던 9살의 소녀. 그런 내게 천체학자라는 꿈이 생겼다.

 며칠 뒤 할머니를 졸라 서점에서 성도라는 것을 처음으로 샀다.  파랑과 빨강 셀로판지가 붙은 안경이 부록으로 들어가 있는 성도였는데 안경을 쓰면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성도, 물론 그때 내가 구매한 건 어린이용


 하늘의 별과 내가 보는 책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던 어느 날. 어떤 지구물리학자의 인터뷰 기사에서 수학을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었고, 나는 수학을 지지리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꿈은 그저 꿈이라는 걸 깨닫고 일찍 포기했다.


 아마도 그 인터뷰 기사를 읽지 않았으면 나는 이공계의 길을 걸었을까.




 무척 실망하며 천체학자 꿈을 접었을 때도 나는 창문 밖을 내다봤다. 내 방은 동쪽 정면이었고, 앞에는 바다, 그리고 산이 마주하고 있어 해가 뜨는 것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다. 천체학자가 못된다는 것과는 별개로 하늘에 있는 것들과 마주할 때는 경이롭기만 했다.


 

 어린 나이에도 매일 일찍 일어나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며 궁금해했다. 

 왜 오늘은 여기서 이 시간에 뜨고 내일은 왜 저기서 이 시간에 뜨는 걸까. 뜰 때는 오렌지 빛이었는데 왜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저렇게 눈도 못 뜰 정도로 빛나게 되는 걸까. 달빛은 왜 이렇게 밝을까. 달에는 왜 흔적이 있을까. 이런 모든 호기심들을 갖고 초등학생 고학년 때는 과학실과 자료실에 처박히다시피 살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돼서 지구과학을 배운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것도 잠깐. 선생님은 이건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보고 시험에 나올 것만 체크해 줬다. 그리고 암기. 다시 지구 과학을 배울 일이 없었다. (저기요 선생님?!)



 고 3 말미에 우연찮게 부천동(부산 천체 동호회)에 나가게 됐다. 전문적인 장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분들 속에서 성적도 낮은 문과생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감탄뿐. 그때 처음으로 망원경 너머로 세상을 봤고, 내가 보던 사진과 망원경에서 보이는 행성은 달랐다. 작고 앙증맞은 토성은 점토로 만들고 어린애가 서투르게 하지만 정성스레 색칠한 것처럼 생겼다. 그 주변으로 토성의 위성들이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퍼져 있었는데 내게 그걸 보여주던 분은 나도 그런 줄 아셨는지 멋쩍게 웃으시며 원래 처음엔 실망하기 마련이라 했다.


나사 제공 이미지. 이렇게 보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안 보인다....,



 실망이라뇨!

 그날 밤, 10인치 돕에 지칠 줄도 모르고 붙어 있었다. 그냥 광활한 우주를 가로질러, 그들과 내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에 마냥 행복했다.


 기회가 좋아서 몇 번 관측회를 따라갔다. 보현산 천문대에서 은하수를 맞이할 때 M10을 보고 작은 알사탕에 붙은 별가루 들을 보면서 싱긋싱긋 웃고, M45를 보며 우리 은하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월성 천문대에서 NGC 4565를 봤을 때. 한 여름날 페가수스 유성이 쏟아져서 하늘에 화구가 번쩍이던 그때.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은하의 엄청난 움직임. 옥상에 설치된 거대한 망원경으로 머리털 자리의 나선은하의 팔이 춤추는 미묘한 떨림을 봤을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울림, 감동과 동시에 슬픔이 밀려왔다.

 

물론 이렇게 안 보이지만, 망원경이 워낙 컸고... 그래도 간접적으로 그 나선팔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멀고, 이렇게나 거대한 것들이 세상에 무척이나 가득한데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도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였기에.





 지금은 관측을 나가지 않는다. 사는 게 바쁠수록 하늘을 보는 게 어려워지고, 무엇보다 뚜벅이가 망원경을 사고 관리하고 이동하는 게 좀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님, 어쩌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서 발걸음을 못했던 걸 수도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우주인이 되고 싶다. 우주인이 될 능력을 갖고 싶다. 행여 거기에 발을 딛지 못한다 해도 우주 탐사에 기여하는 사람이고 싶다. 늘 별과 우주를 가까이에 두고 그저 누구도 해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꿈꾸고 살고 싶다.


 

 이 책은 별이 좋아서 선택했다기보다는 내가 가지 못한, 그러나 무척 가고 싶었던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별과 늘 가까이하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갈까. 

 나도 그녀가 잠시 바랐던 것처럼 천문대에 숙소를 두고 우적우적 초코파이를 먹으며 하늘의 별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스타트렉을 돌려보고 별빛을 받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관측회에 갈 때마다 그런 것들이 좋았다. 밤새 필드에서 풀벌레 소리를 듣거나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하늘이 걷힐 땐 감탄을 내지르고, 조용히 별을 보고 다른 세계와 가까워졌던 시간. 서투른 내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또 차근차근 넘어지지 않게 가르쳐 주셨던 고마운 분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마음. 목이 빠질 것 같지만 별빛이 눈에 콕콕 새겨질 때마다 내 가슴에 희열이 가득 찼던 순간들.  



 저자의 글 중, 선생님이었던 중년 아저씨가, 그리고 노교수가 소년처럼 반짝 거리는 눈을 보인다는 말에 나는 몇몇 부천동 회원님들을 떠올렸다. 그저 "좋아서요"


 그분들도 그게 전부였다고 했다. 어릴 때 본 코스모스로 시작해서 별을 늘 곁에 두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 일반인이 보기엔 "에이, 이게 별이었어?"라고 핀잔을 줄 법한 별들을 보고 "정말 앙증맞고 예쁘지 않아요? 자세히 보면 계속 반짝거려요"라고 하면서 그 가치를 알아보던 분들. 사진보다 안시 관측을 고집하면서 광활한 하늘에 펼쳐진 별 그 자체를 사랑하며 반사 망원경을 차에 싣고 다니며 내게 성도를 다시 알려준 분들. 그분들은 별뿐만이 아니라 지구,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들 눈에는 늘 별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잘 지내고 계실까.

 전 회장님이 베일 성운을 가르쳐 주며 "선아 씨 결혼할 때 이 베일 성운을 쓰고 가면 참 좋겠네"라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면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베일 성운, 백조자리


 복잡한 천문학자의 삶을 이해하기보다 그저 그녀가 얼마나 우리와 같은 사람과 가까운지, 까마득한 몇백 광년의 별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그저 함께 하는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는 걸 알게 해 준 책.


 그리고 별처럼 소중했던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을 꺼내게 해 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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