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2주, 수난시대(2)
병실은 6인실로 배정받았다.
어제 오후 늦게 나를 나무라던 원무과 직원이 출산한 것도 아니니 1인실 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배정한 곳이었다.
사실 6인이든 1인이든 상관없었는데, 여긴 왜 나에게 아무도 묻지 않고 결정 내리는 거지? 왜 나는 어제부터 [내 일]에 대한 결정권에서 소외되는 거지?
입원한 병원은 예전에 암 수술부터 뭐 자질구레한 걸로 이번이 세 번째 입원이라 낯선 환경은 아니었다. 통합 간호 병동이라 도와주실 이모님들도 계시고, 간호사들도 친절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어제부터 내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내 속을 긁어댔다. 나는 병실이 아닌 (원래대로라면 제주도의) 호텔에 체크인하고 싶었는데, 간호사의 여러 질문에 대답해 주고 나니 진이 빠졌다.
매일 오전 8시 30분에서 9시 30분 사이가 회진이라고 하니, 그때 담당 과장님께 퇴원을 물어봐야지. 병실은 너무 건조했고, 남편이 가져다준 가습기를 틀어도 소용이 없었다. 집에 있던 가열식 가습기가 그리웠다. 겨울과 환절기마다 호흡기 질환으로 심하게 고생을 하니, 건조한 공기에 너무 예민해졌다. 이러다 하기도 감염으로 넘어가서 후두염이 돼버리면 복압이 오르게 계속 기침을 몇 달간 달고 살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기를 옮겼을 것 같은 몇몇이 떠오르며 너무 원망스러웠다. 어제처럼 코피가 콸콸 쏟아질 것 같아서 세게 풀지도 못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고 보니 라보파의 부작용으로 심박수 상승, 혈압 상승, 당 수치 상승, 호흡곤란, 두통, 어지러움 등등이 있다는데 거기에 코감기까지 겹쳤으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침대에 누우니 머리가 더욱 아파졌고, 압통까지 느껴져 누울 수가 없었다.
와, 이런 고통이 내게 왜 생긴 거지? 왜 내가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지? 난 감기도 정말 조심하고, 복압도 조심하고, 무리도 안 했던 것 같은데 대체 왜지? 온갖 불안과 짜증, 분노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차라리 감기라도 걸리지 않았으면 내가 이런 생각들을 덜 했을까? 약이라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면 오히려 내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대체 이번 1월은 내게 왜 이렇게 시련인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리고 왜 아무도 나의 고통이 아닌 아기를 위한 희생만 언급하는 거지?
남편도, 아기도, 회사도, 모두 원망스러웠고 나 자신의 연민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한차례 원망을 하고 나면 죄책감과 수치심, 자책감이 동시에 밀려왔고 당장이라도 손등에 꽂힌 바늘을 뽑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혹여나 아기가 아팠을 때 내가 이 모든 상황을 후회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내 발목을 붙들었다.
이참에 휴식이라 생각해,라는 말이 너무 끔찍했다.
이게 어떻게 휴식이란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뭐든 집어던지고 싶었다. 네가 내 입장이 되어봐. 어쭙잖은 위로랍시고 그런 말 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쏟아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좋게 생각해도 되고, 그게 더 유리할 것이고, 어차피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없는데 왜 자꾸 화만 내는 걸까.
방어기제를 아무리 돌리고 돌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었다. 퍼붓고 싶었다. 누구라도 한 명 타깃을 만들어 이유 없는 복수라도 하고 싶었다. 그 안의 내가 너무 무력했다. 그리고 많이 고통스러웠다.
엄마니까 당연한 거야, 엄마니까. 희생해야 하는 거야, 엄마니까. 이런 말들이 나를 옥죄어왔다.
그런 말을 들을수록 임신이라는 것이 고통이고, 희생이며,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사라져 갔다.
아ㅡ 나는 모성애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구나. 아이를 가진 것도 충동적인 행위였구나. 내가 아무 대책도 사랑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구나. 내가 그냥 중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구나.
많은 것이 씁쓸했다. 아무도 내 고통을 이해해 주지 못하니,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말로 쏘아붙였다.
너무 아파, 잘 수가 없어. 힘들어. 괴로워. 내가 느끼는 고통을 너도 한번 느껴봐. 이 얼마나 유치하고, 비참한 방법인가. 그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너 때문에 아파. 근데 왜 너는 왜 안 아픈 거야? 왜 너는 멀쩡히 네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일차원적인 분노를 정제 없이 쏟아부었다.
크게 후회할 걸 알면서도 멈추지를 못했다.
이비인후과 협진에서 받은 1세대 항히스타민을 먹고 난 후에야 기절하듯 잠시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옆자리 침대의 사람도 흐느끼고 있었다.
산모들이 모인 병동은 그랬다.
누군가는 흐느끼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좌절하고.
아이를 갖고 낳는다는 그 일로 인해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하면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고통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