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32주 수난시대(1)
1월 말. 30일까지 근무하기로 한 나는, 며칠만 근무하면 남은 2월은 내게 휴가일 거라 생각했다. 무리하지 않게 제주도 여행 일정도 잡아두고, 운동은 오전시간으로 바꾸고, 읽을 책과 미뤄둔 강의, 아기 맞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들 정리까지. 매일의 점심메뉴까지 차곡차곡 정리해서 야심 찬 3개의 계획표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
2주 전 30주 차 검진 때 자궁경부길이가 2.5cm 밖에 안되니 조심하고 쉬라는 의사 선생님 말대로 쉰다고 쉬었는데, 혹시나 해서 원래 토요일이었던 검진을 수요일로 당겨서 아무렇지 않다는 걸 빨리 확인받고 내 계획들을 최종 승인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좋지 않은 예감은 왜 적중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앞서서 일어난 많은 일들과 내가 해온 것 점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것을 내가 알면서도 회피했었다.
월 초에 남편 병간호, 고양이의 병간호로 무리를 했고, 나가지 않아도 될 꽃꽂이 모임에 거절 못하고 나갔고, 안 해도 될 집안일을 무리하게 했고, 자주 야근을 했다.
32주 차에 자궁경부가 2cm로 줄어있었고, 진통검사를 하는 30분 동안 아주 미약하게 3번의 진통이 잡혔다.(20 이하의 진통) 담당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32주에 2cm면 조기 진통으로 아이가 빨리 나올 수 있고, 아무리 인큐베이터에 들어간다 해도 엄마 뱃속에 있는 것보다 낫지 못하며, 3월 막주가 예정일인데 이대론 3월 초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했다. (나는 원래 3월 9일쯤 일찍 낳는 걸로 생각했기에 이상하게도 그 말이 선고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럼 자연분만도 가능하려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 내가 위기의식이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쉬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언제까지 출근이냐는 말에 이번 주까지라고 하니 당장 입원하라 하셨다.
너무 당황해서, 어엇- 저 그냥 일은 낼부터 연차 내면 되는데 입원은 안 하면 안되나요?라고 말했다가 의사 선생님이 못 쉬니까 쉬라고 입원하라는 거예요.라고 못을 박았다.
아, 안되는데. 우리 고양이 인사도 못했고, 입원 짐도 없고, 회사에 인사도 못했고, 자리 정리도 못해서 가져올 짐도 한가득인데. 어, 이건 아닌데.
저 하루만 저한테 시간을 주시면 안 되나요? 짐도 없고…
짐은 남편이 가져오면 되죠. 하루 시간이 더 의미가 있나요?라는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선생님 저는 하루가 귀한데요.
망연자실한 내 표정을 봤는지, 의사 선생님은 안 됐다는 듯이 웃었다.
엄마가 힘들 순 있는데, 아기를 위해서 엄마가 좀 희생해요.
그 말에 남편이 의사 선생님 말대로 하자고, 둘이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나는 졸지에 입원이 결정됐다. 여기서 내가 저항하는 게 의미가 없구나. 여기에 나는 없구나. 아기를 위해서 내가 희생해야 하는구나, 뭐,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ㅡ, 그렇게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거구나.라는 생각들에 파묻히며 간호사들이 시키는 대로 늦은 병원, 대부분의 사람이 퇴근해서 텅 빈 병동 여기저기를 검사지를 들고 돌아다녔다.
피를 6통 뽑는데, 갑상선 암 검사 할 때만큼이나 뽑네, 그런 생각도 하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심전도 검사 하면서 눕기도 하고, 접수대로 갔는데 병동에 자리가 없다. 오, 럭키비키, 집에 갔다 와도 되나? 이 생각을 했는데 원무과 직원이 분만실에 하루 있으란다. 오기에 병실도 없는데 내일 오전에 와서 입원하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가 또 한소리 들었다. 결국 여기저기서 쓴소리만 듣고 분만실로 질질 끌려갔는데 전날 걸린 코감기 때문에 짜증이 더 많이 치밀어 올랐다. 종일 코가 막히고 콧물이 줄줄 흘러서 숨도 못쉬겠는데 이렇게 건조한 병실에 있어야 하다니. 남편은 서둘러 짐을 가지러 집으로 갔고, 나는 분만실에 위치한 회복실 침대 구석에 눕다가 앉다가를 반복하며 제왕절개 후 회복하러 들어오는 산모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라보파라는 수축억제제 링거를 20 가트로 맞추고, 아기 폐성숙 엉덩이 주사를 놔주었다. 또 혈액 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높아져서 항생제 혈관주사도 함께 놔주었는데 워낙 혈관이 약해서 약이 들어가는 내내 핏줄이 쪼그라들듯 아팠다. 얼마 안 있다가 재채기와 함께 코피가 터졌는데 20분이나 멈추지 않아서 나도, 간호사들도 모두 놀랐다. 휴지로 막는 게 의미가 없어서 비닐을 얼굴 앞에 대고 코를 지혈하는데 입원복이며 여기저기 피가 흥건하게 묻어서 내 꼴에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피를 한 움큼 쏟고 나니까 두통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담당의가 그날 당직이었는지 상태를 보러 왔다. 내일 이비인후과 협진을 보자고 하고, 약 맞아보고 경과를 보자고 했다. 20 가트가 높은 수치인지 몰랐는데, (네이버 카페를 뒤지고 나서 알았다) 맞고 나서 그간 나를 괴롭히던 허리통증이 갑자기 경감돼서 가뿐해졌다. 아, 그간 허리가 아팠던 건 진통 때문인가. 침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는데 이건 뭐 배만 나왔지 앞으로 옆으로 굴러 굴러해도 아프지가 않아서 너무 신기했다.
남편이 짐을 가지고 와서 간호사에게 말하고 저녁을 먹고 오겠다고 했다. 나가진 못하고 1층 편의점에서 먹고 오기로 했다. 라면이랑 샌드위치 등을 풀어놓고 먹고 난 후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일러주고, 한 짐 싸 온 것을 들고 분만실 방 한 칸을 내주어 들어왔다. 옆 방에서 들리는 아기 심박수 소리, 수술하러 들어온 사람 목소리, 아기 소리, 분만하는 산모 소리. 모든 게 숙연해졌다. 얼마 전 본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의 한 장면 같고, 내가 곧 겪을 일이지만 너무 멀리 느껴지는 가상의 한 장면 같았다.
건조해서 히터를 끄고, 조금 춥게 자기로 했다. 어차피 코가 막혀서 제대로 자기도 어렵고, 병원 침대 자체가 너무 불편해서 이래도 저래도 자는 것 같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내 코피를 확인했고(진통이 아닌), 아침엔 병실에 자리가 나면 옮겨준다고 했다. 그러나 도통 잠을 잘 수 없었다. 아직 내 상황에 대해서 충분한 납득과 수용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날을 꼴딱 샌 담당 과장님이 당직을 끝내고 나를 보러 왔다. 신기하게 아프지 않다고 (집에 보내주세요 라는 뜻) 하니까 약을 달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아… 그래요…. 2주는 있어야 아기가 그래도 좀 안전하게 크는 거라고 철벽 치셨는데, 설마 나 2주나 여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라는 불안감이 생겼다. 아, 이게 아닌데. 정말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반갑지도 않은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애당초 병원이 쉬는 곳이 맞나?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지, 침대는 좁고 딱딱하지, 링거는 계속 맞고 있어야 하지, 수시로 오가는 간호사로 쉬지도 못하고, 건조한 공기는 감기에 좋지도 않은데? 이런 의문이 가득 오가는 가운데, 나는 한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인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