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입원 생활, 마음을 정리하기

임신32주, 수난시대(3)

by 올리비아 킴



가습기를 끝까지 틀어놓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건을 걸어놓고 잠에 들었더니 전날보다는 좀 더 잔 것 같았다. 어떤 입원이든 2-3일차까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갑상선 수술할 때도 3일차까지는 통증과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를 걱정하는 모두에게 예민하게 화살을 쐈던 것 같은데, 오늘이 그 3일 차이구나. 가져온 일기장은 감사 일기가 아닌 원망과 하소연을 설명하는 단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내가 반드시 이 상황을 바꾸고 말리라. 단단히 결심하며, 반드시 내 감정을 정리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코칭을 신청했다.

운이 정말 좋았는지, 내게 꼭 필요한 코칭을 해주시는 분을 만났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 생각들을 눈앞에 객관적으로 펼쳐놓고 내가 왜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지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게 해줬다. 수요일부터 나를 괴롭혔던 ‘내 선택’에 대한 상실, ‘납득할 수 없는 희생’, 내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책임감’ 이런 것들이 내 중요한 가치를 훼손했고,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두려움, 그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 같은 내 핵심감정을 뒤흔들고 있었다.




내가 쉬면서 뭘 하려고 했더라. 미뤄둔 라캉 강의를 듣기로 했고, 블로그를 쓰기로 했고, 쌓아둔 책을 읽기로 했고, 가벼운 운동, 고양이와 시간 보내기, 아기 맞이 준비하기, 친정집에서 빈둥거리기, 남편과 근교로 놀러 다니기, 퇴직한 동료들과 차 마시기- 이런 것들이었구나. 몇 개를 들여다보면 사실 지금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강의나, 블로그, 독서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모두 할 수 없다고 커다란 카테고리에 묶어서 생각했었다. 이렇게나 편파적이다. 감정에 휩쓸리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된다.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을 [특정 공간]이라는 곳에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코치님은 내가 퇴원한 후 어떤 모습이길 바라냐고 물었다. 할 일을 그래도 해냈고, 내게 주어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을 잘 보냈다고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적어도 위에서 하지 못한 고양이와 시간 보내기, 아기맞이 준비하기, 친정집에서 빈둥대기, 남편과 근교로 놀러 다니기- 이런 것들만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머릿속이 한결 맑아진다. 이 와중에도 방법을 찾으려는 나, 칭찬해 주자.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감정이 진정되지 않으니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정리 좀 됐으니 남편한테 짜증을 덜 내야 할 텐데. 결국 그날 밤에 또 코감기가 엄청 심하게 몰려왔고, 그 와중에 남편에게 또 밉다는 둥 히스테리를 부렸다. 병원이랑 남편 직장은 대중교통으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인데 평일에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물론, 남편도 많이 힘든 것을 누구보다 안다. 아내의 히스테리도 받아줘야 하지, 야근하고 집안일해야 하지, 아직 친하지 않은 고양이 아침저녁으로 약도 먹이고 간식도 먹여야 하지, 이 모든 것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나도 잘 알지만ㅡ 가슴에 쌓아두기가 너무 힘들었다. 밤늦게까지 남편을 달달 볶고 나서야 나도 한참 후회하고 속상한 마음에 잠에 들었다.

그날 병원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클래식 FM을 틀었다. 최은규의 실황음악이 진행되는 시간이었는데, 브람스의 현악기 4중주가 흘러나왔고, 익숙한 선율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집에서는 24시간 틀어놓는 채널인데 병원에 오고 나서는 음악 한 번 들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곡은 달라도 늘 듣던 이들의 음성과 선율이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다음날에는 평일엔 거의 들을 일 없는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을 틀었는데 이렇게 안정이 되는 건가,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 저녁에는 당신의 밤과 음악을 자기 직전까지 듣기도 하고, 토요일 심야에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이 꿈에서 흐를 때까지 이어폰을 빼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깨곤 했다. 익숙한 [공간]의 음악이 내게 주는 안정감을 크게 깨달았다. 다음부턴 마음이 혼란할 때 꼭 KBS KONG을 재생하리라.

토요일엔 나랑 오래 일했던 실장님이 병문안을 와주셨다.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와 병원 밥이 맛이 없을 거라며 직접 반찬까지 하셔서 챙겨오셨다. 살면서 병문안은 처음이어서 (가족도 남편도 여태 어떤 수술이든 내가 입원한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었다!!) 생소하기도 하고 간질간질한 느낌도 들었는데 갑자기 회사를 나가지 못한 내게 주지 못한 선물이라며 출산 선물까지 챙겨와주셨다.



10년 전의 나는 화가 많았구나 :)



무엇보다 남편과 통화 말고는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한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너무 값졌다. 실장님도 디스크로 오래 입원하셨던지라 병원 생활의 무료함과 피폐함을 잘 이해해 주시면서 회사에서 있는 재미난 이야기도 해주셨다. 찾아와주신 그 걸음이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사흘 만에 배가 더 많이 불러서 (애가 큰 건지, 내가 살찐 건지 이젠 구분도 안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나를 응원해 주셨다.

엄청난 환기였다. 밖의 날씨도, 식사 시간이 아니면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는 병동에서 외부 세계와 접촉한 그 순간은… 뜨거운 열탕에 있다가 얼굴로 시원한 바람을 맞는 상쾌함과 맞먹었다. 자리에서 올라오자 전 직장 동료였던, 친한 오빠가 때마침 병원 옆에 이발하러 왔다며 과일을 사들고 찾아왔다. 무슨 날인가. 원래 30일 날 저녁에 옛 직장 동료들과 만나서 놀기로 했는데 내가 입원하는 바람에 아무 약속도 잡지 못했었다. 애써 들러준 마음이 고마웠다. 오빠는 남편이 오기 전까지 기다려주기로 했고, 남편이 도착해서도 잠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헤어졌다.



남편은 내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한 말을 듣고 치킨을 사 왔고, 내가 부탁한 아이패드를 챙겨왔다. 그날 아침부터 엔진오일 교체, 고양이 병원, 집안일… 정말 많은 일을 해서 쉴 틈 없이 하루를 보냈을 텐데 전날 밤 내가 그를 달달 볶았던 걸 생각하니 미안해서 울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해해 줘, 감기는 네가 옮겼잖아) 병원에서 주는 침구는 영 낮아서 옆 잠 자기가 어려워 베개를 챙겨왔다. 통조림이나 김, 우유, 이런 것들을 챙겨오고 내가 병원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많은 것들을 챙겨왔다.


남편을 보니 집에 더 빨리 가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처음 임신했을 때부터 햇살이와 나는 친하지 않고 데면데면해서 가족이라는 느낌이 덜하기에 남편과 김 꾸우 씨가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아, 언제부터 [공간]에 대한 집착이 이토록 강해졌나. 그의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이제 이 사람이 힘들어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적어도 내 걱정은 하지 않게 만들어야지. 내일부터는 내가 해야 할 일에 좀 더 집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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