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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Apr 24. 2017

결혼한 친구를 둔다는 것

 




 이십 대 후반, 처음 결혼하는 친한 친구에게 결혼 괜히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라며 엉엉 울던 때가 어제 같다. 딸을 둔 아버지처럼 외간 남자에게 친구를 빼앗겼다는 생각은 물론, 친구가 나를 떠나간다는 상실감이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보다 결혼한 친구들의 수가 더 많아진 지금도 청첩장을 건네받을 때면, 유치하게도 '결혼해도 나랑 놀아줘야 해'라는 어린아이 같은 말을 툭툭 내뱉곤 한다. 아마도 내가 남들보다 유독 상실감을 크게 느끼기 때문일 거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회사 이야기나 남자 친구, 유행하는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던던 친구들의 주제가 시댁이나 그릇, 육아로 넘어간 이후로는 그녀들과 나의 세계에 금이 그어진 기분이다. 나와 함께 술로 밤을 새우던 친구들이 10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모임에 갓 걸음마를 뗀 2세를 데리고 나오는 모습은 때론 내 미래의 거울 같은 생각마저 든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낯선 세계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그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처녀 시절의 자유분방한 그녀들이 그립지만, 결혼에 대한 장점을 늘어놓으며 나에게 권유하는 것은 분명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대학교 근처에 한 친구가 신혼살림을 차리면서부터 출석 수업이 있는 날에는 종종 들리게 되었다. 남편이 일터에 있는 시간, 친구의 집에 방문한 나는 마치 친정에 온 딸 마냥 친구에게 응석을 부리게 된다. 집안일에 지쳐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을 텐데, 바닥에 드러누워 집밥을 달라고 조르는 철없는 친구를 위해 새 밥을 지어 준다. 자기는 먹을 사람 없다며 찬 밥을 먹으면서 내 밥그릇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잡곡밥을 가득 퍼주고, 손수 재 놓은 갈비까지 구워 상에 올려놓은 것을 보면 엄마가 차려준 집밥 같아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진다.


 

 또래에 비해서 엄마와 일찍 떨어져 독립했기에 집 밥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는 친구는 아마 더욱 마음이 쓰였을지도 모른다. 한 끼 밥을 차려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친구는 내가 온다는 말에 국이며 반찬, 과일까지 친정 엄마 마냥 바리바리 싸서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안 먹을 땐 냉동실에 얼려놓았다가 먹어도 된다며 나에게 몇 번이나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두 손 묵직하게 돌아오며 우정을 의심한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친구들의 결혼이 달갑지 않았던 건, 그녀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어 그 무리에서 배척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차마 못하고 있는 나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은 다행이면서도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그들의 대열에 서고 싶지만 그럴 자신이 없는, 그렇다고 영원히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마저 없었던 나에게 세상은 왜곡되고 삐뚤어져 보일 뿐이었다.


 

잊지마, 네가 어디에 있든, 이름이 어떻게 바뀌든, 넌 영원히 내 아들이야

 

 하지만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삶의 가치의 기준이 바뀐 것뿐인데 나는 왜 그것이 나와 멀어진다고만 생각했을까.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간다고 생각했을까. 그녀들이 어디에 있든,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영원한 내 친구들이라는 가장 기본 적인 것을 잊고 있었을까.   

 

 물론 결혼이라고 꼭 행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아닐 거다. 처음 느껴보는 육아의 고통, 나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 하지만 잃으면서 또 다른 행복을 얻어가며 살아가는 복합적인 것이 바로 결혼일 것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녀들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 주며,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것도 잘 안다.


 5월이면 또 몇 명의 친구들이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고 하나 둘 걸어 들어간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떤 상실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될 그녀들의 꽃다발을 차례차례 이어받으며 그 행복이 모두의 가슴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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