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낭시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
나는 연인 외에 친한 친구나 또는 직장 동료에게도 '자기'라는 호칭을 붙이곤 한다.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런 호칭을 붙인다는 것이 이상해 보이는 건 어린 시절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갓 입사했던 나는 기존의 틈에 섞이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이방인이었다. 그 속에서 '자기야'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른 한 선배가 있었다. 연인도 아닌 직장 후배 사원에게 '자기'라니. 낯설고도 이질적인 단어의 사용은 지적받아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전해지는 단어의 어감과 느낌이 나를 그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종종 '자기'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자기라는 말은 왜 이토록 특별하고, 유독 사랑하는 존재에게 덧붙이려 하는가.
자기라는 단어의 어원을 프랑스의 철학자 장 뤽 낭시는 자신의 책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chérir(애지중지하다, 지극히 사랑하다)'라는 동사는 'cher(사랑하는, 아끼는, 귀중한, 값비싼)'와 같은 어원을 갖습니다. 즉 'chérir'는 누군가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단어가 '자비 charité'와도 같은 어원을 갖는다는 사실에 놀라실 겁니다. 이 두 단어 모두가 라틴어의 carus(귀한, 사랑스러운), 즉 'cher'에서 유래합니다.
제가 '자기'라고 말할 때, 이것은 최상급을 표현합니다. 즉, 가장 강한 표현이지요. [자기는] 공손함을 표현하는 언어로서 친애하는 누군가를 뜻합니다. '친애하는'이란 '저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혹은 '저는 당신에게 가치를 부여합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형된 의미에서 벗어나, '자기'라는 표현은 내가 절대적으로 최상으로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 즉 유일하고 비교할 수 없는, 모든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를 부여하는 그 혹은 그녀를 말합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습관처럼 입에 붙어 있던 있던 '자기'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누군가 가르쳐 준 것처럼, 또는 태고의 본능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부를 때 '자기'라고 칭해 왔던 모양이다.
오늘 친애하는 상대방에게, 절대적으로 최상으로 지극히 사랑하는, 유일하고 비교할 수 없는, 모든 가치를 넘어서는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하는 존재에게 그 마음을 담아 '자기'라고 불러본다면 존재의 소중함이 더욱 깊이 다가오지 않을까.
도서 출처. 장 뤽 낭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