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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Oct 11. 2018

죄책감

아버지를 홀로 수술받게 한 어느 날.



 아빠, 토요일에 다시 올게요.

 그 말을 내뱉는 내가 싫어서 서둘러 여동생을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홀로 병원 침대에 앉아 우리를 배웅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흙빛이었고 평소보다 주름이 더 패여 보였다. 작년에 암 수술을 받은 여동생은 수술 직후의 혼자가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수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나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일어선 것이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야위고 마른 아버지를 홀로 수술을 받게 한 이기적인 내 모습이 보였다. 꼴도 보기 싫어져서 고개를 숙였다. 마음이 끔찍했다. 이성 뒤에 죄책감과 함께 찾아오는 감정은 왜 이토록 괴로운 걸까.



 아버지의 손목은 어지간한 여자 손목만큼이나 가늘었다. 그 팔로 우리를 여태 키워왔다. 그 세월이 무색할 만큼 사건은 순식간이었다. 아버지는 그 날의 업무를 마무리하던 중 휘감겨 있던 밧줄이 강하게 풀리며 그 반동으로 손목이 부러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심각하게 다치셨어요. 

 의사가 그렇게 말하며 X-Ray와 CT 사진을 몇 개 보여주었다. 다른 사진들과 비교해 주며 말했다. 부러졌다기보다는 손과 팔을 연결하는 뼈가 짓이겨져서 내부에서 이을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의사는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좋지 않은 상황을 설명했다. 뼈 조각이 돌아다니거나, 평생 관절통이 따라다니거나, 이 전과 같은 생활은 불가능할 거라는 등의 불행한 미래를 예견하듯 말했다. 동시에 그것들은 어떤 가능성일 뿐이지만, 떨쳐 낼 수는 없다는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그 외의 여러  비극들을 이제 우리가 떠맡아야 하는 몇 개의 서류에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 사인하면서 이 비극이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병실로 다시 올라가며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 속에서 감도는 불안과 긴장감을 모두 고스란히 가슴에 떠안고 있었다. 

 

 그래도 어떤 분노나 원망은 일지 않았다. 분노나 원망은 독기가 되어 모두를 병들게 할 뿐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에 이리저리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어떤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뒤섞여 혼재된 상태에서 근본 원인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최우선일 것이다. 아버지를 간호하고, 재활을 돕고, 내 일상이 흐트러져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다. 여태 살아온 날들이 그랬다. 내가 상황과 감정에 휩쓸릴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들을 놓쳐왔고, 후회 속에 빠지는 일들을 반복해왔다.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어렸고, 연약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를 먹었고, 나를 조금씩 강하게 연단해 왔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서 바른 선택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무언가를,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마음을 위로하고 해야 할 일들을 놓지 않고 싶다. 


 수술을 하실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으나, 응급 환자로 인해 아버지의 수술이 뒤로 미루어졌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일상을 유지해야만 했기에, 우리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떠나고 난 후, 아버지는 결국 혼자 수술을 받았다. 그날 저녁 수술이 끝났고, 괜찮다고 전화가 왔다. 마음이 조금 놓여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상황을 전한 후 일찍 누워 잤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어지간한 통증은 말하지 않고 참아내시는 분이 아프다는 말을 하실 정도면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 걸까.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가느다랗던 아버지의 손목은 간데없고 투박하게 둘둘 말려 있는 붕대 위로 몇 개의 철심이 박혀있었다. 링거 바늘 사이로 새어 나온 피 때문에 붕대 한 쪽이 검붉었다. 얼얼한 통증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진통제를 꼭 맞으시라고, 밥을 잘 챙겨 드셔야 회복이 빠르다고, 한 번 더 토요일에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회한들 소용없지만 왜 더 오래 있어주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더 미워졌다. 지하철 창문에는 이기적이고 못난 얼굴을 한 내가 보인다. 회사에서는 내가 집중해서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없었다. 생각이 사방으로 분산되자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데도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눈 밑이 퀭했다. 몇 잔의 커피를 연거푸 마시거나, 어려운 책들을 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머릿속에 빈틈이 생기는 걸 허용해선 안 되었다. 

 울적한 기분이 채 가시질 않아 직장 동료에게 술이나 마시자고 했지만, 다음으로 약속을 미루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만 했을 뿐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던 나를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고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결말을 만들어 내는 건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이것이 나는 행복이고,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길 바라며,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불쑥 겨울이 찾아온 것 같은 저녁 퇴근길,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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