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비아 킴 Oct 10. 2018

나는 아빠의 딸이니까요.

저는 아빠를 닮아갑니다.




 아빠는 나에게 '용무'가 있을 때만 전화를 건다. 소통이 서운한 사이는 아니지만, 일상의 시시콜콜한 것을 전하는 것은 늘 내 쪽이었기에 아빠가 전화를 걸 때면 괜히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걱정이 현실이 됐다. 근무 중 손목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수술을 해야 한단다. 아빠의 음성은 담담했다.


 직장을 다니는 딸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시려는 듯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환갑의 나이에 골절은 쉬이 넘길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서둘러 간호사인 여동생에게 연락을 취하고 내일 아침 일찍 아버지가 계시는 포항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날 학업 문제로 연차를 빼 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빠와 여동생과 몇 번 전화를 주고받고 나니 진이 빠져 더 이상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벌써 큰 일을 치른 것처럼 마음이 무겁다. 당장 닥친 몇 가지 일들을 일단락 짓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수술, 재활 훈련, 후유증. 그 외에도 행정적인 일에 서툰 아버지를 대신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 원만하게 처리되지 않을 것 같은 산재처리. 일을 그만두시면서 겪게 될 경제적인 문제, 나와 아빠가 겪을 불편함이 머릿속을 정신없이 떠돌았다. 몇 년 전, 엄마가 큰 수술을 할 때도 이렇게까지 걱정되지 않았는데 손목 골절로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는 꼴이라니, 엄마가 알면 서운해 하시겠지.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빠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두 분이 헤어져 지내신 지 어느덧 십오 년. 엄마에겐 친근한 형제도 있고, 외할머니도 아직 살아계신다. 그리고 엄마를 챙기는 살뜰한 두 동생이 있다. 반면에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부모님의 부재, 동생은 안중에도 없는 형제들 속에서 혼자였다. 균형이 안 맞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공간은 너무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십 대에, 그러니까 두 분이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아빠가 자신은 집도 자식도 다 잃었다는 말을 했단다. 늘 강해 보이던 아빠가 처음으로 약하고 외로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였다. 그 말을 계기로 첫째인 내가 아빠를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아빠와 살기 시작한지 십 년이 조금 흘렀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살가운 부녀관계는 아니었다.

 

 작은 집에서 지내는 불편함은 불만이 되고, 여러 원망들이 뒤섞여 서로를 힘들게 했다. 나는 아빠와 대화도 거의 주고받지 않고 자꾸 밖으로 겉돌았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진행된 교육을 통해 부모님과 나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여태 내가 품고 있는 불만이 나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어 왔는지를 깨달았다.

 그 이후 시도한 아빠와의 짧은 여행이나 등산, 산책들이 나와 아빠의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일보다 아빠가 살아온 길에 대해 많이 묻고, 아빠가 모르는 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아빠는 전보다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시점으로 온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함께 다닐 때마다 찍기 시작한 아빠의 모습. 카메라 렌즈 너머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가 아빠를 닮았다고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나와 나란히 걷지 않고 늘 먼저 혼자 걷는다. 그것이 편하시단다. 그런 아빠의 모습은 외로움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 같다.


 아빠는 늘 혼자 외로웠을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형제의 외면 속에서 자랐을 때도, 가족을 두고 멀리서 일을 할 때에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에도 줄곧 혼자였다. 혼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가 오래되면서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혼자가 익숙하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도 외롭다고 하신 적은 없지만 아빠의 뒷모습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외로움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젖어든다.


 정말, 아빠와 나는 많이 닮았다. 아니, 나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아빠를 점점 닮아간다. 산길을 걷다 작은 열매나 나뭇잎을 줍는 것도, 돌 위에 피어있는 이끼를 쓰다듬는 것도 모두 아빠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 있다. 아마 혼자 지내면서 느끼는 외로움도 이미 닮아버렸겠지.


 그건 어쩌면 아빠가 외로워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아빠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드리고 싶어서 내가 선택한 외로움이다.


 정말이지, 나는 아빠를 도통 내버려둘 수가 없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은 아빠의 딸이니까.





그러니 아프지 말고 얼른 나으셔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제일 마지막에 죽으려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