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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Nov 09. 2018

우리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가족의 슬픔과 외로움을 보게 된 순간, 관계의 꽃은 피어난다



 얼마 전, 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영혼의 편지)을 읽은 모양이다. 그녀는 고흐의 삶이 불쌍하다고 속상해했다. 나도 얼마 전, 러빙 빈센트와 영혼의 편지를 읽으며 몇 번 눈물을 흘리곤 했다. 책과는 거리가 먼 동생이 책을 읽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란 것은 책을 읽고 느껴진 자신의 감정을 보낸 것이다. 여동생은 고흐를 일생도록 지지해준 동생 테오가 대단하다며, 동시에 자신도 테오가 고흐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챙겨주겠단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났단다. 내가 종종 고흐같이 심한 자책(?)을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자신이라도 나를 챙겨 줘야 한단다.


 동생의 말이 기특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해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몇 년 전의 여동생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조차도 힘들었을 텐데, 시간을 돌려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실 나와 여동생은 처음부터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이십 대 초반, 집에서 독립을 하면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고, 놀러 온 동생이 무척이나 반갑고 좋아서 같이 살자고 권유했다. 동생도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이렇게 잘해주는 것이 기쁘고 좋았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챙겨서 나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너무 다른 생활 방식과 생각으로 마찰이 잦았고, 결국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 이미 나와 동생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어긋나 버렸다. 


 둘 사이의 갈등은 어디서 풀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매우 깊었다. 애정보다 미움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동생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기 힘들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다고 믿었지만, 아무 노력 없이 단순히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 해결사가 되어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관계 형성 자체가 비뚤어진 나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바꾸고, 대화를 시도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동생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날카롭게 대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서로가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도했다. 여동생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동생과의 좋은 관계 형성이었다. 거기에서 내가 이기고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그러나 나 혼자 노력한 것은 아니었을 거다. 여동생 또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나를 인정하는 말을 하기 위해 애쓰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게다가 열등감과 자책에 사로 잡힌 언니가 자신 대신 자신과 같은 또래의 후배들만 아끼고 집 밖으로 겉돌 때마다 자신이 느낀 슬픔과 이겨냈어야 할 외로움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동생의 아픔이 무엇인지 조금씩 이해하면서 내가 얼마나 철부지 같은 행동을 했는지 수없이 후회했다. 

 어째서 나는 내 슬픔과 외로움만 보려고만 했을까. 가장 가까운 가족 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보게 된 순간, 관계는 다시 새로운 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듯 몽우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꽃피는 아몬드 나무 / 1890/출처: wikimedia commons

 올 초, 나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을 집에 걸었다. 형제가 서로를 그리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그림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도 나에게 받은 상처로 가득하면서, 결국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동생이 고흐를 그토록 사랑해준 테오처럼 느껴진다.


 훗날, 내 여동생이 아이를 낳으면 축복과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동생에게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을 선물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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