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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only living boy Mar 16. 2019

사랑 여행기 [기획 편]

누구나 이야기하고 싶은 단 두 가지. 여행과 사랑.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뭘 하고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이 가장 좋은지 생각해봐. 무엇을 하고 난 후 기분이라든지. 이 짧은 인생에서 아마 그걸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다녀온 장소들. 

 홍콩이나 휘슬러, 멜버른이나 하노이와 같은 유명한 장소에 대해 나도 여러 가지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마음을 먹고 기억을 더듬은 다음, 거기에 조사한 내용을 더한다면 여행 잡지 글처럼 그럴싸한 소개글을 쓸 수도 있다. 보루네오의 데라완 섬이나 캄보디아 바탐방과 같이 덜 유명하다거나 사람들이 찾아가기 힘든(굳이 찾아가지 않는) 곳에 대해서도 굉장히 놀라운 곳인양 소개할 수 있다. 반드시 가봐야 할 볼거리와 꼭 찾아 먹어봐야 할 먹거리에 대해 상세 서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것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그러니 아마 전하려고 해도 별로 특출 나지도 재미있지도 않을 것만 같다.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같은 도시를, 같은 공간을 찍었다고 해도 어떤 영상은 홍콩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가 되었고 다른 영상은 [중경삼림]이 되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든 모두 시각차가 있고 그걸 전달하는 과정에서 표현 차가 있다. 가령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이라면 거기엔 서울에 관한 1000만 개의 필름이 있다. 단 하나의 비정상적인 일치도 없이, 당신과 같이 사는 사람이든 가장 친한 친구든 사랑하는 애인이든 잠깐 동안 장면이 겹칠 뿐, 사실 우리 개개인은 자신만의 유일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

 당신이 매일 다니는 길, 자주 가는 곳, 언젠가 들렀던 곳에서부터 만났던 사람, 곳곳에 남긴 기억들, 추억들, 보고 듣는 모든 것은 당신만의 것이다. 

 상상해보곤 한다. 나란히 놓여 저 끝까지 뻗은 1000만 개의 선로. 다른 동승자도 없이 오로지 나만 탑승한 열차가 그중 하나의 선로를 달리고 있다. 옆에서 달리는 열차에도 나처럼 앉아있는 누군가가 있다. 잠깐 동안 서로를 알아보지만 열차는 이제 각자 다른 길로 빠진다. 


 처음부터 그 여행이 2000일이 넘게 계속될 계획이었다면 엄두가 나질 않아서 출발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일주일이 넘어가는 계획엔 장담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싫증을 잘 내었고 참을성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살아오며 대단한 장기 계획(누군가에겐 초단기일지도 모른다)을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싫증을 잘 내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표현) 대학교도 어렵사리 들어가 뒤돌아볼 것도 없이 그만뒀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으나 중요한 사실은 항상 내 안엔 싫증이 남과 동시에 새로운 계획이 들어서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잘못된 소비엔 관대했으나 허비엔 굉장히 적대적이었다. 언제나 뭔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분명히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어떤 물건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밥 먹듯이 쉽게 가져다 버린다.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상황이 오기도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다. 싫증을 잘 내는 인간이 반성도 잘하게 되면 그 모순으로 인해 정신이 돌아버려 연명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반성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와 다닌 2000여 일간의 여행은 어찌 보면 내가 자신을 극복한 하나의 사례다. 그리고 모두 다 지나간 지금, 나는 눈을 뜨면 반성을 시작하여 눈을 감을 때 그것을 끝낸다.  


  내가 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여행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그 어떤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날들,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사랑스러웠던 우리가 있다. 

 그래서 오로지 내가 본 것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나만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들. 내가 사랑했던 방식의 이야기. 그것들을 내가 가진 낮은 목소리와 특유의 말투로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다.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많이 다녔고,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해서 꾸준히 만났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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