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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only living boy Apr 02. 2019

사랑 여행기 [쿠알라룸푸르 편] 하

Kelip Kelip [반짝반짝] 반딧불이를 뜻하는 말레이 어.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또 아꼈다. 그런 날들만 내 인생에 가득하다면, 나는 부러움이란 단어의 느낌을 점차 잊어갈 것이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일까? 그곳이 쿠알라룸푸르일 수 있을까?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보든 그것이 그리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내가 어떤 기분으로 무엇을 보는 가가 사실 전부를 결정한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와 함께 낯선 이국 땅에 서 있었고, 어쩌면 난생처음으로 겪는 강렬한 행복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함께 반딧불이를 보러 갔다. 그녀는 반딧불이를 보러 가고 싶어 했고, 나는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함께 보고 싶었다.

 반딧불이가 많이 출몰한다는 셀랑고르 강은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두 시간 가량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곳에 있다. 강가의 맹그로브 숲에는 치즈맛이 난다는 희귀한 나무가 자생하는데, 반딧불들이 그 맛을 좋아하여 그곳에 모여 산다. 

 반딧불 투어의 친절한 가이드 아저씨가 그곳까지 우릴 안내했다. 나는 투어라면 질색하는 여행자이지만 그녀는 반딧불을 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정말 그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유력한 관광지에서 15분간 내려 사진을 찍는 일이 반복되었고, 고된 기다림 끝에 우리는 반딧불을 보러갔다. 다른 곳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머릿속에 찍어 놓은 사진은 오로지 반딧불 강가의 사진뿐이다.


 셀랑고르 강은 신비로운 힘의 중심이다. 강의 힘은 물살을 타고 흐르며 큰 물길을 만들어 내는데 강은 그 힘을 잡아먹으며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얻었다. 어둔 밤 달빛 아래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셀랑고르 강가의 모습에 유혹된 반딧불이들.

 나는 라오스 사람들이 말한 강의 이름을 기억한다. 라오스 사람들은 강렬한 힘으로 용처럼 흘러나가는 물살을 가리켜 "용의 길"이라고 불렀다. 만약 반딧불이가 모여 사는 쿠알라룸푸르의 강이 한 마리 용이라면, 그건 꼭 껴안고 싶을 만큼 부드러운 용이다. 


 나룻배를 타기 위한 선착장에는 반딧불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달빛에 의지해 좀 더 깊숙하고, 어둑하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다 보면 반딧불들이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딧불은 시끄럽고 화려하고 냄새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밝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둠이 내린 강가엔 무수한 모기들이 기다리지만 모기 기피제 같은 것을 뿌려서도 안 된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그건 반딧불이의 사정이고,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작열할 듯 터지는 플래시의 불빛 앞에서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반딧불들을 보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아주 조용히,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칙칙한 옷을 입고 반딧불이 앞에 섰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면 누군가가 싫어한다고 하는 요소들을 없애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 사람이 정리되지 않은 삐죽한 코털을 혐오스러워한다면, 코털을 깨끗이 깎고 나서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 좋다. 그러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하든지, 어떤 흥미로운 대화를 하든지(그것 자체도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는 당신을 싫어할 것이다. 


 섬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나룻배엔 나와 사랑하는 그녀와 뱃사공만이 올라타 밤의 강을 가른다. 뾰족한 배의 꼬리에 앉은 뱃사공의 노 젓는 소리 말고는 주위가 고요하다. 여기저기 반딧불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나룻배들이 떠다닌다. 나는 뱃사공에게 다른 배들과 떨어져 더 깊숙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주도록 요구한다. 무뚝뚝한 뱃사공은 무심히 노만 젓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멋진 남성의 표본.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어?" 뱃머리에 앉아 있는 그녀가 머리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본 것 같은데." 내가 대답했다. 

 "어디서?"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고개를 다시 돌려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본 적이 없는 거지. 그럼 오늘 보는 반딧불이가 살면서 처음으로 보는 반딧불이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오빠도 나도 처음으로 같이 보는 반딧불이야."

  기쁜 나머지 뒤에서 그녀를 껴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배가 전복될 위험이 있어서 가까스로 참았다. 

 "그래. 우리 둘 다 오늘이 처음으로 보는 반딧불이를 보는 날이네. 그럼 앞으로 언제 어디서든 반딧불을 봐도 그건 처음이 될 수 없는 거야." 내가 말했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빠가 까먹지만 않는다면."

 "그러진 않을 거야."

 "한번 두고 보자."

 정신을 차리니 우리가 탄 나룻배는 이미 세상과, 다른 나룻배들과 멀리 떨어져 우리만 아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 어서 반딧불들을 만나기를 고대했다. 배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맹그로브 나무 숲 사이를 미끄러져 나갔다. 곧 어느 우거진 수풀들 사이에서 반딧불이 보일 것이다.

 반딧불이들은 멀리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달빛이나 별빛이 반사되는 빛인지 반딧불인지 잘 구분이 안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룻배의 뱃사공은 할 수 있는 한 배를 수풀림 가까이로 붙여준다. 어느 정도 거리가 붙으면 트리에 갑자기 불이 켜진 것처럼 사방에 빛이 반짝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반딧불들이 날아다니고 어둠 속에서 그들의 엉덩이에 붙은 빛이 춤추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날 바람이 멎은 장소에서 눈송이가 하늘하늘 거리는 것처럼 고요하고 단순한 기쁨.

 어느 장면을 보고 느꼈던 기쁨은 사실 어떻게 묘사하기가 어렵다. 아름다운 반딧불이의 빛이라고 말할 순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떻게 아름다운지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그저 '정말 아름다웠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아쉽다. 그러니 서로 상상력을 요한다. 

 어두운 밤, 호수같이 넓은 강, 곳곳에 떠 있는 수풀림, 수풀림에 점점 가까이 붙으려 다가가고, 까만 숲을 둘러싸고 일제히 밝혀지는 빛,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호흡하듯 불빛이 꺼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하는 고 귀여운 반딧불의 엉덩이,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 살며시 손을 겹쳐 내 손안에 담은 반딧불이.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 반딧불이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기뻐하며 말했다.

 "불쌍한 반딧불이를 잡으면 어떡해!"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손과 손 사이에 소중히 가둬놓았다. 
 사람은 가끔씩 너무 기쁘면 말과 행동이 반대로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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