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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Jul 02. 2021

내 눈을 사로잡는 것들

내향치의

별건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치 내 눈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다. 비 오는 아침 출근길에 앞서 가는 트럭의 바퀴에서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인도가 좁아지도록 머리를 한껏 내민 빨간 장미들. 그러다가 다시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것들은 사라지고 더 이상 없다. 진짜 존재하기는 했던 것인지 헷갈리곤 한다. 어렸을 때 보았던 <메트릭스>라는 영화가 기억에 각인되어 있나 보다. 전체적인 내용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현실이라 믿았던 현실이 현실이 아니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영화의 허구가 자꾸만 '어쩌면'으로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의 상상력에 자꾸 몰입되는 것이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처럼 조금 귀찮고 간지럽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내 걸음에서도 온몸의 근육의 움직임을 느끼고 숨이 가파오는 것을 느끼지만 또 어쩌면 꿈속이 마치 진짜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 순간도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세계관에 잠시 빠져든다. 내가 바라보는 눈앞의 일들에 자꾸만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나의 상상이 만든 허구 때문일까. 비 오는 날 잠시 땅속의 개미가 되어 보기도 하고 숨 막혀하는 지렁이가 되어보기도 하고. 아무리 상상이 자유라지만 너무 주변에 몰입하는 것은 나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텐데, 자꾸 몰입하기도 하고 자꾸 억지로 빠져나오곤 한다. 

현실과 허구의 불균형 사이에서 뭔가를 쏟아내고 싶은 욕구가 생길 무렵,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누군가는 새벽 4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한다지만 그리 거창할 것 없는 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지곤 했다. 그럴 때면 잠이 든 시간을 계산해서 억지로 눈을 감는다. 

글의 성격이 각기 너무 달랐다. 내가 쓰고 싶은 글들과 조금은 정제해서 써야만 하는 글들로 일단 구분을 지었다. 현란한 온라인 전쟁터가 피곤하다. 사람들도 점점 피곤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현란하고 화려한 글을 든 승승장구 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감았다 뜨고 다시 감았다 떴다. 글과 강의들이 넘쳐나는데 거기에서 선과 악을 따로 정의할 수 없는 그들의 의도를 보았다. 파는 사람은 자신의 물건을 팔았고 강의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커뮤니티에 가입시켰다. 운동하는 사람은 센터를 권했고 마케팅 연구가들은 자신의 회사에 컨설팅을 받으라고 했다. 목적이 달랐지만 비난할 수 없었다. 

나는 무언가 뜨겁고 단단하면서도 말랑거리는 내 명치 안의 것만을 내보내면 되었다. 안에서 밖으로 그것이 글이든 시각적인 요소이든 상관없이. 그래서 또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내 눈에 보이는 사물은 나의 눈을 사로잡은 의미 있는 그 어떤 것이 되어 있었다. 숨은 의도가 없는 날것의 현실이 그래서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언제까지 이 세상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잠깐 왔다 가는 것은 맞다. 마음껏 빌려 쓸 수 있도록 어름답게 세팅된 특수한 환경에 잠시 놓여서 이것저것 테스트를 받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작은 나는 그 이상 무엇이 될 수 있을까. 현실이 현실이 아니듯이 한걸은 한걸은 살포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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