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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Jun 10. 2021

안과 밖

내향치의

이번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도대체 치아 안에는 왜 신경이 존재하는 것일까? 일생동안 재생이 일어나지 않는 딱딱한 조직, 그리고 그 안에 엉뚱하게 자리 잡은 신경이라는 존재. 뿌리 끝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구멍을 통해 가느다란 신경과 혈관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과연 그 쓰임은 무엇일까. 다른 조직과는 다르게 탈이 나서 부어도 갑옷처럼 딱딱한 치아라는 표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부을 수가 없다. 오히려 자기 자신만 무한한 압력으로 압박한다. 그것이 신경으로 직접 전달되어 참을 수 없는 아픔, 치통을 유발한다. 안이 부드럽고 겉이 딱딱한 존재. 딱딱하지만 나름 부드러움을 품고 있다고 생색을 내고 이는 건지도 모른다. 

안과 밖이란 경계가 어쩜 그리 명확하지가 않다. 규정을 위한 경계가 문드러져 있다. 흔히 인간의 피부를 겉이라 하고 소화기관을 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안이라고 하는 것도 겉의 일종이다. 겉과 안이 이어진 채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는 거대한 도넛의 형태이다. 도식화했을 때 과연 안과 밖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사고로 구강 내 조직을 잃었을 때 피부 조직을 이식하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이질감이 있다. 타액으로 항상 촉촉하게 적셔져 있는 붉은색의 구강 조직이 뽀얗고 털이 숭숭 박혀있는 피부 조직과 다름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착이 될수록 그 다름은 점점 무뎌진다. 서로가 서로를 닮아 간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단단한 뼈가 안에 있고 부드러운 피부가 겉에 있는 동물과 단단한 뼈 자체가 밖에 있는 갑각류가 서로를 부인할 수 있을까. 안과 밖이 뒤집어졌다고 진정 뒤집어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글러브를 뒤집어 까듯이 한판 뒤집으면 끝나는 단순한 게임이었던 걸까. 우리가 는으로 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닐 수 있다. 안으로 안으로 작게 작게 미시적으로 파고들어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미시적인 세계가 아주 정교한 규칙으로 펼쳐져 있고 밖으로 밖으로 거대한 우주를 향해 봐도 비참하리만큼 거대한 규칙의 세계가 있다. 그 둘이 정녕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너무 똑같은데 거참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치아 안에 신경도 어떤 이유 있는 외침이려니 그저 그렇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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