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치의
어색한 상황에서는 항상 웃곤 했다. 제일 앞에 위치한 대문니가 완전히 보이지는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는 웃고 있었다. 웃음은 나를 보호해 주는 무기였다.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에도, 공감하지 못했을 때에도, 수많은 자극에 몹시 피곤해 있을 때에도 대문니를 앞세우면 나는 안전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도 있었고 자리가 불편했던 내향인에게는 아주 좋은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넌 왜 그렇게 웃고 있냐. 혼자 재미난 일 있어?"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균형의 감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내향적인 아이의 프로그램이 엉키기 시작했다. 충분히 피곤했고 충분히 쉬고 싶은 상황에서도 애써 지은 웃음이었다. 노력의 흔적이었다. 아무리 먼 친척이고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여리고 어리고 늘 조용한 아이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뭐 큰 말은 아이였지만 당시의 내향적인 아이에게는 커다란 화살 같았다. 굳이 존재감 없는 사람에게 까지 돌아서면서 화살을 쏘아야만 했을까. 나라는 존재는 웃고 있어도 안되었건 걸까. 무표정보다는 웃음이 안전하다고 믿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민망함까지 더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웃음은 그저 가식이었고 비판받아 마땅했던 것일까. 민망함 속에 눈동자는 흔들렸고 사람이란 게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당한 저격이었다.
사실 나의 웃음은 반사적이었다. 결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자동 반사 시스템으로 프로그램된 안면 표정근의 수축의 향연이었다. '이렇게 해야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해야 무난하게 넘어가.'로 프로그램된 안면근은 시도 때도 없이 수축은 남발했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잠시의 브레이크가 걸렸다. 잘못된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인지한 것이다. 그 날의 그 표정과 말투는 내면의 무의식에 까지 각인이 되었는데 사소한 악몽에까지 출몰하는 등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나를 살살 괴롭혔다. 의식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무의식이 문제였다. 무의식이라는 우물은 너무 깊어서 바닥에 내 손이 닿지 않았다. 눈을 찌푸리고 보아도 그 속이 보이지 않아서 후레시로 켜보면 그저 안개만 비칠 뿐이었다. 그렇다고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용기는 없었다. 무의식이라는 곳은 그 이름 만으로 너무 무서운 곳이었다. 그냥 그렇게 두어야만 내가 안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잽싼 장난꾸러기 같은 실체 없는 그림자 같은 녀석이 무의식의 우물에서 들락날락하는 동안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모기보다 더한 녀석이다.
그 이후로 프로그래밍을 손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반사적으로 작동하던 안면 신경운동신경들은 강도를 조절했으며 뇌에서는 '사람을 가려가며 웃어라.' 명령을 보냈다. 웃지 말라고 한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대문니가 많이 섭섭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