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치의 장지혜 May 20. 2021

대문니 소환

내향치의

어색한 상황에서는 항상 웃곤 했다. 제일 앞에 위치한 대문니가 완전히 보이지는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는 웃고 있었다. 웃음은 나를 보호해 주는 무기였다. 잘 알아듣지 못했을 때에도, 공감하지 못했을 때에도, 수많은 자극에 몹시 피곤해 있을 때에도 대문니를 앞세우면 나는 안전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속담도 있었고 자리가 불편했던 내향인에게는 아주 좋은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넌 왜 그렇게 웃고 있냐. 혼자 재미난 일 있어?"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균형의 감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내향적인 아이의 프로그램이 엉키기 시작했다. 충분히 피곤했고 충분히 쉬고 싶은 상황에서도 애써 지은 웃음이었다. 노력의 흔적이었다. 아무리 먼 친척이고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여리고 어리고 늘 조용한 아이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뭐 큰 말은 아이였지만 당시의 내향적인 아이에게는 커다란 화살 같았다. 굳이 존재감 없는 사람에게 까지 돌아서면서 화살을 쏘아야만 했을까. 나라는 존재는 웃고 있어도 안되었건 걸까. 무표정보다는 웃음이 안전하다고 믿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민망함까지 더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웃음은 그저 가식이었고 비판받아 마땅했던 것일까. 민망함 속에 눈동자는 흔들렸고 사람이란 게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당한 저격이었다.  

사실 나의 웃음은 반사적이었다. 결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자동 반사 시스템으로 프로그램된 안면 표정근의 수축의 향연이었다. '이렇게 해야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해야 무난하게 넘어가.'로 프로그램된 안면근은 시도 때도 없이 수축은 남발했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잠시의 브레이크가 걸렸다. 잘못된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인지한 것이다. 그 날의 그 표정과 말투는 내면의 무의식에 까지 각인이 되었는데 사소한 악몽에까지 출몰하는 등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나를 살살 괴롭혔다. 의식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무의식이 문제였다. 무의식이라는 우물은 너무 깊어서 바닥에 내 손이 닿지 않았다. 눈을 찌푸리고 보아도 그 속이 보이지 않아서 후레시로 켜보면 그저 안개만 비칠 뿐이었다. 그렇다고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용기는 없었다. 무의식이라는 곳은 그 이름 만으로 너무 무서운 곳이었다. 그냥 그렇게 두어야만 내가 안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잽싼 장난꾸러기 같은 실체 없는 그림자 같은 녀석이 무의식의 우물에서 들락날락하는 동안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모기보다 더한 녀석이다. 

그 이후로 프로그래밍을 손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반사적으로 작동하던 안면 신경운동신경들은 강도를 조절했으며 뇌에서는 '사람을 가려가며 웃어라.' 명령을 보냈다. 웃지 말라고 한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대문니가 많이 섭섭할 뻔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침 기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