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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치의 장지혜 Dec 31. 2021

퇴근길 낯선 광경

내향치의

어제 퇴근하면서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 


날은 어둑한데 곳곳에 쓰레기와 비닐 봉지들이 도로를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많았다. 축제가 끝난 자리의 지저분하고 쓸쓸한 흔적 같은 느낌이었다. 남은 여흥을 즐기려는 듯 봉지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었다. 가로등과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는 조명이 되어주는 듯했다. 


아마도 어떤 트럭에서 떨어진 쓰레기들이었을 것이다. 문 앞에 펼쳐진 광경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부정하고 싶었다. 그 봉지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잔뜩 약을 올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시 깨끗해지겠지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심란했다. 어쩔 수 없이 밟고 지나가야 하는 봉지들에서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거리의 사람들도 도로를 꽉 채운 자동차들도 모두 그 비닐봉지들이 보이지 않는 듯이 평상시처럼 움직이고 행동하고 있었다. 단지 평상시에 볼 수 없는 광경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저 움직이는 봉지들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묘사하는 폐허가 된 지구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폐허와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인류. 이런 류의 슬픈 공식이 떠올랐던 걸까.

눈앞에 펼쳐진 어떤 현상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나의 뇌는 다시 진정 모드로 넘어가기 위해 풀가동되고 있었다. 이 정도의 현상조차 불편하단 말인가. 환경운동가도 아닌 내가 일종의 질서가 무너지는 모습이 불편한 건 어떤 마음일까. 인류애인가.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인가. 지저분함이 싫은 걸까. 오지랖일까.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까. 조금은 궁금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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